本草房/운림의 식품과 의학

산죽

초암 정만순 2018. 5. 6. 15:05



산죽



선비정신의 표상, 대나무를 말하다


  지실 탱자 어린탱자 돌복숭아 질경이 차전자 부처손 조릿대  




맹종대. 마디에 테가 하나씩 생기고 잎이 좁고 짧으며 마디 사이가 짧고 줄기가 굵다.

 


대는 줄기와 잎이 아름답고 깨끗하여 사람들한테서 사랑을 받는다. 대는 그 성질이 맑고 차고 푸르고 곧다. 청아하고 고고한 품위와 맵시, 매서운 추위 속에서야 오히려 돋보이는 짙푸른 기개(氣槪), 깨끗하게 안을 비워 두는 결백함 등의 이 모든 성질들이 절개와 청렴(淸廉)과 결백(潔白)을 생명과 같이 여기는 우리 옛 선비와 같다. 우리나라는 선비의 나라이고 그 선비정신을 상징하는 나무가 대나무다. 그런 까닭에 대는 시인, 묵객(墨客), 학자, 화가들이 즐겨 예찬하였다. 대의 청담, 한아(閑雅)한 기운은 군자의 품위가 있어 청정 고결한 마음과 가장 잘 어울렸다.
대문장가이며 대 그림을 잘 그려서 유명하였던 소동파(蘇東坡)는 고기를 안 먹고 살 수는 있어도 대가 없이는 살 수 없다고 하였다. 고기를 안 먹으면 몸이 마를 뿐이지만 대가 없으면 마음이 저속해진다는 것이다. 대에는 고요한 선미(禪味)와 아울러 치열한 정신미가 있다. 우리 선조들의 대쪽같이 곧은 절개와 반석 같은 선심(禪心)을 키워준 것은 대나무가 아니었을까.


    

   굳고 곧음이 대〔竹〕의 덕
   곧고 곧은 성품으로 몸을 세우다.           分水固固以樹德 竹性直直以立身
   마음을 비워둠은 대의 길                      竹心空空以體道 分節貞貞以立志
   맑고 깨끗하게 뜻을 세우다.                  故君子樹之 
   하여 군자는 대를 심는다.
                 -백낙천 <양죽기(養竹記)>


 


산죽(山竹)  


 기후에 대한 적응력 뛰어난 ‘세한삼우' 


대는 편의상 나무로 분류하지만 따지고 들면 나무로 보기도 어렵고 풀로 보기도 어렵다. 해가 갈수록 줄기가 굵어지는 것을 나무로 분류하고 땅 위에 난 부분이 해마다 말라죽는 것을 풀로 치는데, 대는 그 어느 쪽에도 넣을 수가 없다. 그래서 나무도 풀도 아닌 것〔非木非草〕이라 했고 거꾸로 된 풀이라고도 하여 한자로는 풀 초(草)자를 거꾸로 하여 대 죽(竹) 자를 쓴다는 말도 있다. 그래도 따지기를 일삼는 사람들은 대를 틀림없이 풀이라고 주장하기도 하고 틀림없이 나무라고 우기기도 하는데, 그들이 아무리 떠들어도 대는 그냥 대일 뿐이다. 그저 나무 같은 풀이라든지 풀 같은 나무라고 해 두자.
대는 열대성 식물로 동남아시아를 중심으로 아프리카, 남,북미 대륙에서 나고 유럽과 남극대륙에는 없다. 원래 자생지는 수마트라 섬과 하와이와 폴리네시아의 여러 섬들이라고 생각되고 온대지방의 대는 사람이 가져다 심어 추운 기후에 적응시킨 것으로 본다. 우리나라에서는 대숲에 눈이 쌓인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는데 열대와 한대가 함께 어울려 멋진 조화를 이룬 풍경이다. 열대성 식물인 대가 소나무, 매화와 함께 세한삼우(歲寒三友)로 지칭되는 것을 보면 대가 기후에 대한 적응력이 매우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가장 빨리 자라는 식물 


대는 종류가 많아 전세계에 50속 1천2백종쯤이 자라는데 우리나라에는 19종을 가꾸고 있으며, 임업시험장에서 시험재배중인 것까지 합치면 70종쯤 된다.
대는 줄기가 단단하고 듬성듬성 마디가 있으며 매끄럽다. 줄기 속은 비어 있고 막힌 부분은 마디를 이루며 마디에서 잔가지가 2~5개씩 난다. 땅속줄기는 옆으로 뻗는데 땅윗줄기와 비슷하지만 마디가 짧고 마디에서 실 같은 뿌리와 순이 난다. 잎은 길고 뻣뻣하며 매끄럽고 끝이 빠르며 잎자루가 짧다. 전체에서 청랭한 기운이 돌며 느낌이 깨끗하다.
대는 가장 빨리 자라는 식물의 하나다. 보통 나무보다 무려 2백배나 빨리 크는데, 5월 중순에서 6월초에 죽순이 올라오기 시작해서 30~50일이면 성장을 끝내고는 더 크지도 굵어지지도 않는다. 대신 해가 지날수록 줄기가 단단해지고 색깔이 누렇게 변해간다. 맹종죽(孟宗竹)은 하루에 1미터 넘게 자란 것이 관측된 적이 있는데, 대의 놀라운 신장력은 뿌리에서 여러 해 동안 저장해둔 영양물을 한꺼번에 밀어 올리기 때문이다.
대나무 순은 땅속줄기의 마디에서 난다. 이 마디에는 눈(芽)이 하나씩 있어서 죽순으로 올라오기도 하고 땅속줄기로 뻗어나가기도 한다. 죽순은 3~5년쯤 된 마디에서 나며 땅속줄기가 굵고 실할수록 영양을 많이 저장하고 있어 굵은 죽순이 난다.




2세를 위해 몸 바치는 헌신적인 나무 


짧은 기간 안에 자람을 끝내고 나면 대는 열심히 햇볕을 받아 탄소동화작용을 해서 영양분을 땅속줄기로 보내서 저장한다. 다른 식물은 대개 잎이 생산한 양분으로 줄기를 굵게 하고 키를 늘리지만 대는 다음 세대를 키우기 위해 모두 땅 속으로 보내버린다. 그러므로 대줄기는 해가 갈수록 노화하여 색이 누렇게 되고 7~10월쯤 되면 말라서 죽는다. 3~5년 동안 열심히 비축을 해서 죽순 하나를 밀어 올리는데, 2세를 위해 몽땅 자신을 투자하는 헌신적인 정신을 가진 나무라고 할 수 있겠다.
충정공 민영환 선생이 자결한 뒤, 피에 젖은 옷을 보관한 골방에서 대나무가 마루 틈을 뚫고 올라왔다고 하는데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본다. 옛날 중국에서는 죄인을 처형할 때에 자라고 있는 죽순 위에 올려놓아 죽순이 몸을 뚫고 올라오게 했다고 한다. 일본의 선사 료칸 화상(良寬和尙)도 사람이 들어올리기도 힘든 마룻장을 들어올리고 솟아오르는 죽순을 보고 마룻장을 뜯어내어 대나무가 자라게 했다는 얘기가 있는데, 그만큼 죽순이 올라오는 힘이 강하다.
대의 꽃을 본 사람은 드물다. 그만큼 대 꽃은 보기가 힘들다. 대 꽃은 벼나 보리의 꽃과 비슷하며 엷은 녹색이다. 그런데 벼나 보리의 꽃도 자세히 본 사람이 많지 않을 것이다. 대나무는 일생에 한 번 꽃이 피고, 꽃이 피고 나면 말라죽는다. 대숲 전체가 말라죽는 것이 보통이나 일부분만 말라죽기도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해방 후에 대 꽃이 피어 대숲이 말라죽어 대밭이 많이 사라졌다.
대 꽃은 60년, 또는 1백년, 1백20년 만에 핀다는 말이 있는데 언제 왜 대 꽃이 피는지는 아직 잘 모르고 대여섯 가지의 학설이 있다. 일정한 수명이 있어 주기적으로 핀다는 것, 땅 힘이 약해지고 영양이 부족하여 더 이상 죽순을 내기 어려울 때 핀다는 것, 대나무 자체의 생리변화에 따른 호르몬 분비로 꽃이 핀다는 것, 또는 병충해로 인한 피해와 기후의 변화, 유전, 태양흑점이 많아지면 꽃이 핀다는 얘기까지 다양한 주장이 있는데, 위의 여러 가지 요인이 복합된 것이라는 말이 맞을 것이다.




백년 만에 꽃피는 인내력 강한 식물 


대 꽃은 대숲 전체와 그 부근의 대숲이 한꺼번에 피기도 하고 한 부분이 피기 시작하여 2~3년 내에 전체 대숲으로 퍼지기도 한다. 꽃이 피고 나면 보통 대밭 전체가 말라죽지만, 드물게는 뿌리가 죽지 않고 살아남았다가 2년 후에 새 죽순이 올라와 새로운 대밭을 만들기도 한다. 대나무 외에 꽃을 보기 힘든 식물로 용설란(龍舌蘭)이 있는데 이 식물은 1백년 만에 꽃이 피고 꽃이 피고 나면 말라죽는다. 그래서 ‘세기(世紀)의 식물’이라는 별명이 있다.
대는 볏과에 딸린 식물이므로 꽃은 물론 열매까지도 보리나 밀처럼 생겼다. 우리나라의 대나무는 열매를 잘 맺지 않지만 따뜻한 지방의 대는 열매를 잘 맺고 우리 나의 조릿대도 열매를 맺는 일이 있다.
대의 열매를 죽실(竹實), 죽미(竹米), 야맥(野麥) 등으로 부르는데 찰기〔粘性〕가 있고 맛은 수수와 비슷하며 떡이나 밥을 해 먹으면 맛이 괜찮다. 한라산이나 지리산 속에서 사는 사람 중엔 산죽(山竹) 열매를 모아서 식량으로 삼는 사람들이 드물게 있다. 그걸로 술을 빚기도 하고 국수를 만들어도 먹는다. 몸을 가볍게 하고 기운을 돋군다는 옛 기록도 있는데 대 열매를 구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한라산이나 지리산 등 남쪽의 조릿대 숲은 몇 십년 마다 꽃이 피어 모두 말라죽고는 열매가 떨어져 새 대밭이 만들어지곤 한다.




귀한 죽실은 봉황의 먹이 


옛말에 봉황은 배가 고파도 아무 것이나 먹지 않고 다만 대나무 열매만 먹는다〔鳳飢不琢粟 所食唯琅?〕고 했다. 봉황은 곤륜산(崑崙山)에 살며 황하(黃河)의 물을 마신다는 귀한 새다 이 새가 대나무 열매만 먹고산다는 것은 그만큼 귀하기 때문이다. 봉황은 본 사람을 만날 수 없으니 잘 모르나 세계적으로 희귀한 동물인 귀여운 곰 팬더는 대숲에 살며 대나무만을 먹는다. 오스트레일리아의 상징인 코알라 곰이 유칼리나무 위에서 살며 유칼리만 먹고  살듯이 한가지 나뭇잎만을 먹고사는 짐승이 있다.
대는 크게 나누어 열대와 아열대에서 자라는 남방(南方竹)과 온대에서 나는 북방죽(北方竹)이 있는데, 남방죽은 우리나라에 나는 북방죽과는 크게 다르다. 남방죽은 한 다발로 크게 모여서 나고 북방죽은 드문드문 하나씩 난다. 북방죽인 우리 나의 대숲은 사람이 마음대로 들어갈 수 있지만 남방죽은 그 속에 사람은 커녕 고양이도 들어갈 수 없다. 남방죽의 땅속줄기는 양끝이 가늘고 가운데가 굵어서 고구마같이 생겼으며 줄기와 잎도 우리나라의 대처럼 맑고 깨끗한 느낌이 들지 않는다. 요즘 우리나라의 고급 음식점에서 이 남방죽으로 만든 젓가락을 많이 수입하는데, 한 번 쓰고 버릴 것을 비싼 값을 주고 다른 나라에서 사 오는 것은 지나친 낭비가 아닐는지? 남방죽은 탄력이 적고 단단하지 못하여 죽재로서의 가치도 북방 죽보다 훨씬 떨어진다.
우리나라에서 자라는 대나무중 대표적인 것으로 맹종대, 왕대, 솜대, 오죽, 이대, 조릿대 등이 있다. 맹종대〔孟宗竹〕는 대나무 중 가장 굵게 자라는 것으로 지름이 20센티미터가 넘는 것도 드물지 않다. 그러나 키는 왕대보다 작으며 마디가 짧고 잎이 작아서 여느 대보다도 섬세하고 아름다운 느낌을 준다. 마디에 테가 하나씩만 생기며 죽피(대나무를 싸고 있는 껍질 -죽순이 자라면서 곧 떨어진다)는 녹색이며 흑갈색의 반점이 있다. 죽순의 맛이 좋아 식용죽 이라고도 하며 죽순을 통조림으로 가공하여 시중에 내놓기도 한다. 중국 원산으로 우리나라에는 1898년 일본에서 들어 왔으며 남쪽 해안 가까운 곳에 많이 심는다. 거제도 하청면이 유명한 맹종죽 산지다.




‘맹종죽'은 효자에서 딴 이름 


옛날 중국에 맹종이라는 사람이 효심이 뛰어났는데 늙은 어머니가 병이 들어 다른 음식은 모두 마다하고 꼭 죽순요리를 먹기를 원했다. 맹종은 눈 쌓인 대밭에 꿇어앉아 죽순이 솟아나도록 천지신명께 밤낮 빌었더니 맹종의 효심에 하늘이 감동했던지 눈밭에서 죽순 몇 개가 솟아 올라왔다. 그 후로 맹종죽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대의 왕은 역시 이름 그대로 왕대다. 왕대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흔한 것으로 대나무 중에서 키가 가장 높게 커서 높이 30m에 이르는 것이 있다. 마디 사이가 길고 마디에 테가 두개씩 있는데 아래쪽에 있는 테가 조금 더 크다. 죽피는 엷은 갈색이며 죽순은 맛이 약간 쓰므로 고죽(苦竹)이라고 한다. 왕대는 탄력성이 좋고 가공하기가 좋아서 용도가 가장 널고 다양하다.
솜대는 담죽(淡竹), 또는 분죽(粉竹)이라고 하며 껍질(죽피)에 반점이 없고 마디 사이가 짧은 편이고 왕대보다는 줄기가 가늘다. 추위에 강한 편이어서 우리나라 중부지방까지 자랄 수 있으며 광주리, 바구니, 우산대, 부채살감 으로 가장 좋다.
화살을 만드는 시누대〔失竹〕는 오구대 또는 이대라고 하며 제주도와 남부지방에 나고 엷은 갈색 껍질이 줄기를 싸고 있다. 붓대나 화살, 담뱃대를 만들기에 좋으며, 키 5m쯤, 지름 5~15mm쯤 크는 좀 작은 대로 울릉도에도 많이 난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넓은 면적에 걸쳐 나는 것은 조릿대〔山竹〕다. 조릿대는 중,남부의 산 수림 아래서 나며 키 1~2m, 지름 3~6mm쯤 되는 가장 작은 대나무다. 조리나 소쿠리 등을 만들며 한라산과 지리산 고운동이 명산지다. 지금은 조릿대를 베어 이용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 조릿대 잎으로 차를 끓이면 적당히 단맛이 나는 차가 된다.


 


이율곡 선생은 ‘오죽헌'에서 태어나 


오죽(烏竹)은 이름대로 줄기가 검은빛이 난다. 흑죽(黑竹)또는 자죽(紫竹)이라고 부르며 죽순이 난 첫해에는 줄기가 푸른빛이지만 해가 갈수록 검게 변해간다. 그늘에서 자랄수록, 오래 묵을수록 줄기가 검다. 명대(明代)의 이름난 화가 문징명은 이 오죽을 자줏빛으로 많이 그렸다. 이율곡 선생이 나신 곳이 오죽헌인데 집 뒤에 오죽이 있다. 추위를 잘 견디고 키도 20m까지 꽤 높게 큰다. 오죽에 얼룩이 생기면 얼룩대〔斑竹〕라고 한다.
대에는 변종이 많다. 줄기에 거북등 껍질무늬 같은 마디가 생기는 귀갑죽(龜甲竹)도 있고 줄기가 구불구불 자라는 것도 있다. 네모난 대도 만들 수 있는데 죽순이 올라올 때에 사각형 틀을 만들어 세워 두면 틀에 맞추어 자라는 것이다. 틀을 만들기에 따라서 삼각형이건 오각형이건 마음대로 만들 수 있는데, 사람은 재미로 할 수 있지만 대나무는 얼마나 괴롭겠는가. 갓 낳은 거북이의 몸통 가운데를 실로 묶어두면 자라면서 호리병박처럼 생긴 거북이가 된다. 인도네시아에서는 아이를 낳으면 야자열매를 반으로 쪼개서 그 껍질 속에 머리를 넣어서 잠을 재우므로 그 나라 사람들의 머리 모양이 하나같이 야자열매처럼 생겼다.
대는 인간의 생활에 적지 않은 기여를 해왔다. 죽간(竹簡) 또는 간찰(簡札)이라고 하는, 대를 얇게 깎아서 이은 공책은 중요한 기록을 남기는데 썼고, 죽지(竹紙)라고 하는 종이 원료로도 썼으며 지금도 최고급 종이는 대나무로 만든다. 대는 용도가 넓고 다양하다. 낚싯대,  피리나 퉁소 같은 악기, 바구니, 상자, 붓통 같은 공예품, 베개, 삿갓, 돗자리, 발 등 각종 공예품 말고도 건축재로도 쓰며 중국에는 대나무로 만든 버스가 달리고 있다. 상고에 순(舜)임금이 처음 대나무로 밥그릇을 만들었고 우(禹)임금이 제기(祭器)를 만들었다고 한다.




대는 가재도구와 공예품으로 필수적 


대는 소나무, 매화, 오동나무 등과 함께 가장 상서로운 나무로 쳤는데, <삼국유사>나 고대역사를 보면 대와 관련된 이야기가 많다. <삼국유사>에는 만파식적(萬波息笛)의 얘기가 있다. 신라시대 신문왕(神文王) 때에 동해에 작은 산이 물위에 떠서 움직이고 그 산에 대나무가 있는데 낮에는 하나이다가 밤이 되면 둘로 나누어지곤 하였다. 홀연 한 마리 용이 왕에게 나타나 말하기를 그 대나무로 피리를 만들어 불면 천하가 잘 다스려질 것이라고 하였다. 왕이 그 대나무로 피리를 만들어 부니 적병이 도망가고 질병이 나으며, 가뭄에는 비가 내리고 큰물은 그쳤으며 풍랑이 잔잔하여졌다고 한다. 대나무가 천지의 운행을 다스렸다는 기록이다. 대는 그만큼 신령한 힘이 있는 것으로 우리 선조들이 믿어온 것 같다.
대는 그 실용적인 면보다 문화적 측면에서 동양인들의 심성과 정서를 가꾸는데 더 큰 영향을 미쳤다. 지난 수 천년 동안 대는 시와 그림과 문장의 중요한 소재였고 대를 빌어 사상과 정서를 즐겨 표현하려 하였다.
 
‘죽순'요리는 맛과 약 성분 뛰어나 


대는 약으로도 요리에도 많이 쓰는데 죽순요리는 대의 연한 싹을 조리거나 잡채, 전골 등에 넣어 먹는 것으로 중국인들이 제일 좋아한다. 대 종류에 따라 다르지만 대개 약간 아리면서도 산뜻하다 고나 할까 독특한 맛이 있다. 단백질, 당분, 칼슘, 회분, 인, 비타민 A, B, C, 등이 고루 들어 있으며 혈압이 높은 사람이나 뚱뚱한 사람에게 좋은 식품이다. 죽순을 요리할 때 쌀뜨물을 넣으면 맛이 훨씬 순하고 부드러워지는데, 그것은 쌀뜨물이 수산을 녹아 나오게 하고 산화를 억제하기 때문이다. 죽순밥, 죽순정과, 죽순채, 죽순탕 등 다양한 죽순요리가 있으며 가장 맛있는 죽순은 맹종죽으로 살찌고 부드러워 가장 인기가 있다. 왕대의 순도 좋은데 맛이 좀 쓰다.
죽순을 삶을 때 흰 가루가 나오는데 이 흰 가루는 티로신이라는 아미노산의 일종으로 물에 잘 안 녹는다. 죽순을 삶을 때는 뜨거워서 티로신이 녹지만 식으면 다시 굳어져 횐 껍질처럼 표면에 붙는다. 그러나 대나무 줄기 표면에 붙어있는 횐 가루는 티로신이 아니라 초의 일종으로 식물체 안의 물이 증발하는 것을 막는 작용을 한다.
옛날에는 지금보다 대숲이 훨씬 많았던 것 같다. 기록을 살펴보면 경남 양산의 대밭은 중국에까지 알려져 장청(張情)이라는 명나라 시인은 양산의 대숲을 시로 노래하기도 하였다. 기록에는 경북 북부지방인 청송, 예천, 김천에도 대밭이 많았으며, 경남 밀양, 거제도에도 넓은 대숲이 있었다고 한다. 낙동강주변은 대숲이 우거져 호랑이가 그 속에 숨었으며 강릉?함흥, 종성, 명천 등 북부지방에까지 대가 많이 생산되었다고 한다. 명천의 고려 조릿대와 울릉도의 섬대는 특산품으로 크게 이름났다. <삼국사기> <고려사>등에는 호랑이가 왕궁에 침입했다는 기록이 자주 나오는데 왕궁 안에 대숲이 우거져 호랑이가 쉽게 숨을 수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짐작된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대나무가 자라는 곳은 강원도 앙양에서 동해안을 따라 내려와 경북 안동, 김천, 충복 영동, 전북 무주, 충남 부여로 연결되는 선 아래 지방이다. 죽세공품의 명산지로 전남 담양이 알려졌지만 담양이 대가 가장 많이 나는 곳은 아니다. 담양보다는 경남의 하동, 진주에서 더 많이 난다. 우리나라에서 대숲을 가꾸기 가장 좋은 곳이 경상남도와 전라남도 지방이다.




수입 좋고 지조 곧게 하는 식물 


대밭을 금전(金田)이라고 부르는데 그만큼 수입이 좋기 때문이다. 대는 햇볕이 잘 들고 바람이 잘 통하는 곳을 좋아하고 물기가 많고 비료분이 많은 좋은 찰흙 땅에서 잘 자란다. 오죽이나 조릿대류는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는 편이다.
대나무는 뿌리줄기를 끊어 심어서 번식시키는데 가장 좋은 시기는 죽순이 나오기 전인 3~4월이다. 대를 너무 빽빽하게 세워두지 말고 알맞은 때에 늙은 대는 솎아서 이용하고 젊은 대를 세워두는 것이 좋다. 대뿌리는 새 뿌리를 낼 때 반드시 위쪽으로 뻗으므로 해마다 흙을 넣어주어야 더 굵은 죽순이 나온다.
보통 대는 죽순과 죽재를 얻기 위해 가꾸지만 정원수나 풍치림으로도 가치가 높아 훌륭한 경관을 만드는 데에도 썩 좋다. 정원수로는 오죽, 조릿대 등이 품격이 높고 해장죽, 이대, 섬대 등은 집 주위에 울타리로 좋다.
대는 사람의 정서를 깨끗하고 윤택하게 하여주므로 대를 가까이 할수록 대의 곧고 꼿꼿한 정신을 배우게 될 것이다. 지조와 절개가 헌신짝처럼 버려진 이 시대에 벗할 이 없으니 울타리에 대 심어 친구 하여 볼까. 가냘프나 굳센 줄기, 드문드문 돋는 가지, 댓잎에 이는 바람, 댓잎에 듣는 비, 달빛 창에 비친 대그림자, 설중고죽(雪中孤竹)의 외로운 기상…… 명리에 혼탁해진 마음이 대숲을 한번 돌아 나오면 맑고 깨끗하게 씻기리라.

  


   흙을 밀고 생겨난 죽순적 뜻을 그대로
   무엇에도 개의 찮고 호을로 푸르러
   구름송이 스쳐 가는 창궁(蒼芎)을 향하여
   오로지 마음을 다하는 청렴의 대는
   노란 주둥이 새새끼 팔러들 듯 날러 앉으면
   당장에 한 그루 수묵(水墨) 향그런 그림이 되고
   푸른 달빛과 소슬한 바람이 여기 잠기며
   다시 찾을 수 없는 유현한 죽림이 되다
                              -유치환 <대>


 

  


대는 예로부터 인간정신과 가까운 친구이다. 품격이 가장 높은 나무의 하나로 쳤고 완전한 덕을 갖춘 군자〔全德君子〕의 상징으로 알아주었다. 신령한 힘이 숨어 있는 나무로도 여겨 사악하고 불결한 것이 침범하지 못하는 성역이자 하늘에 제사를 올리는 장소인 솟대의 상징으로도 썼고, 절간이나 사당 주변에도 심어 신성한 영역임을 나타내고자 하였다. 우리의 세시풍속에 이른 새벽에 대문 밖에서 모닥불을 지피고 통대나무를 태우는 것이 있는데, 대를 태울 때에 마디 속에 있는 공기가 팽창하여 대통이 터지면서 ‘빵'하고 요란한 소리가 난다. 이 소리에 놀라 뭇 잡귀신들이 멀리 도망을 가버린다는 것인데, 그만큼 우리 선조들은 대나무의 신령한 힘을 믿은 모양이다. 


대는 그 성질이 차다. 대를 차분히 관찰해 보면 찬 기운이 느껴진다. 그 찬 성질이 몸 안의 열을 내려주고 열 때문에 가슴이 답답해진 것을 풀어준다. 여러 가지 대나무 중에서 왕대(참대)와 조릿대를 약으로 많이 써 왔으며, 대나무 속껍질(죽여:竹茹), 대나무기름(죽력:竹瀝), 댓잎(竹葉), 대나무속진(죽황:竹黃) 등을 약으로 쓴다.
 
대나무속껍질〔竹茹〕
대나무의 가장 겉 층에 있는 아주 단단한 껍데기에는 백금(白金) 기운이 들어 있는데 거기에 신비가 있다. 해독 해열 치풍(治風)의 약성을 지니고 있다. -인산 김일훈
 
죽여는 참대의 속껍질을 말린 것이다. 그해에 자란 대를 베어 겉의 푸른 껍질을 깎아 버리고 약간 파릿한 횐 속껍질을 실오리 모양으로 깎아서 햇볕에 말린다. 맛은 달고 성질은 조금 차며 위경, 폐경, 간경에 들어간다. 열을 내리고 혈분의 열을 없애며 게우는 것을 멈추고 담을 삭이며 태아를 안정시킨다. 위열로 게우는데, 딸국질, 담열로 가슴이 답답하고 기침이 나며 숨이 찬데, 어린이의 경련성 질병, 피를 토할 때, 코피, 부정자궁출혈 등 혈열로 인한 출혈, 태동불안 등에 쓴다. 하루 5~9g을 달여 먹는다.<동의학사전>

 


대나무기름〔竹瀝〕
대나무의 마디를 잘라 버리고 쪼개어 쌓아놓고 가운데 부분을 가열하면 양쪽 끝으로 진득한 액체가 흘러내리는데, 이는 대나무의 진액으로서 그릇에 받아서 쓴다. 죽력은 성질이 아주 차고 맛은 달며 위경, 심경에 들어간다. 열을 내리고 담을 삭이는데, 담열로 인한 기침, 중풍으로 담이 성할 때, 경풍, 전간(간질), 파상풍 등에 쓴다. 그냥 마시거나 졸여서 엿을 만들어서도 먹고 알약을 만들어 먹을 수도 있다. 비(脾)가 약하여 설사하는 데는 쓰지 않는 것 이 좋다. <동의학사전>
 
"대나무 기름 속에는 죽력이라는 것이 있는데 중풍에 쓰는 약이고 중풍에 청신경이 마비되면 귀가 안 들리게 되고 성대신경이 마비되면 말을 못하는 거, 그래 구금불음(口禁不音)이라 입을 열지도 못하고 말도 못하게 될 때엔 그 대나무 기름 죽력이 좋은 약인데…” 인산 김일훈
 
중풍으로 갑자기 쓰러져 졸도하여 입안에 가래가 끓고 심하게 코를 골며 소변을 가누지 못할 때 대나무 기름을 숟가락으로 떠 먹이면 의식이 돌아오고 가래가 삭으며 혈압이 내리는 수가 있다. 죽력은 중풍, 풍비, 번민, 소갈을 멎게 하며 피로를 풀어준다. 청화, 활담, 거담의 효과가 있다.
 
댓잎〔竹葉〕
여름철에 참댓잎을 따서 바람이 잘 통하는 그늘에 말려 두었다가 쓴다. 맛은 쓰고 성질은 서늘하다. 심경, 폐경, 위경, 간경에 작용한다. 열을 내리고 가슴이 답답한 것을 낫게 하며 담을 삭이고 경련을 멈춘다. 열이 나고 가슴이 답답하며 갈증이 나는데, 위열로 게우는데, 가래가 나오면서 기침이 나며 숨이 찬데, 경간, 후두염, 설창 등에 쓴다. 하루 6~12g을 달여 먹는다. <동의학사전>


참댓잎은 종기를 낫게 하고 작은 벌레를 죽인다. 갑자기 목이 쉬어 소리가 껄끄럽고 잘 나오지 않을 때에는 진하게 달여서 한번에 마신다.
조릿대의 잎은 여름철 꽃피기 전에 베어 햇볕에 말린다. 조릿대 잎은 맛은 달고 심심하며 성질은 서늘하다. 신경에 작용한다. 심열을 내리고 번열을 없애며 오줌을 잘 누게 한다. 해열, 이뇨작용이 실험에서 밝혀졌다. 열병으로 입안이 마를 때, 오줌이 붉으면서 잘 안 나을 때, 입안이 헐고 오그라들 때, 잇몸염 등에 쓴다. 9~15g을 달여 먹는다.<동의학사전>

 


참대속진〔竹黃〕
가을에 말라죽은 참대를 쪼개어 진을 긁어낸다. 맛은 달고 성질은 서늘하다. 심경에 들어간다. 열을 내리고 담을 삭이며 심열을 없애고 정신을 안정시키며 경련을 멈춘다. 열성병으로 정신이 흐려지고 헛소리를 할 때, 어린이 급경풍, 중풍으로 말을 못할 때, 전간(간질), 신경통 등에 쓰는데, 하루 3~9g을 달이거나 가루 또는 알약으로 만들어 먹는다. <동의학사전>

 


대의 성분은 종류에 따라 조금 다르나 D-글루코오스, L-크실로오스, 규산, 석회, 칼리 등이며, 청량 진정약 또는 열성별 치료에 주효하다. 몸이 차거나 혈압이 낮은 사람은 안 쓰는 것이 좋다. 


죽순이 자라다가 죽어 까맣게 된 것을 선인장(仙人杖)이라 하여 아기가 젖을 토할 때나 경기를 할 때에 쓰면 효험이 있다고 하며, 대나무 줄기에 기생하는 균이 점점 발달하여 커져 누런 황토 흙처럼 되는 것이 있는데 천죽황(天竹黃)이라 하여 귀한 약재로 여기기도 한다.
대는 한여름 더위에 지쳐 머리가 무겁고 목이 마르고 밥맛이 없는 사람에게 더위를 이기게 하고 갈증을 없애준다. 당뇨로 열이 있는 사람도 댓잎을 달여 먹으면 효과가 있으며, 몸 안에 수분이 부족할 때 생기는 토사곽란, 코피, 피를 토할 때에도 효과가 있다. 해산 후에 열이 나고 팔다리가 마비되며 머리가 아프고 식은땀이 날 때에 다른 약재와 섞어서 쓰면 좋은 효력이 있다.
 
어려서부터 들어오던 이야기 중에 이런 것이 있다. 어떤 사람이 심하게 얻어맞아 전신의 뼈도 부러지고 상처투성이에다 온통 피멍이 들고 몹시 부어올라 죽을 지경이 되었다. 급하게 백방으로 약을 구해 써보았으나 별 효험이 없었는데, 어떤 사람이 귀한 약이라며 물약을 주기에 먹었더니 몸이 곧 회복되었다는 것이다. 그 물약은 빗물이 들어가지 않는 재래식 변소의 똥통에 대나무토막을 마디가 막힌 채로 몇 달, 혹은 몇 년을 담가 두었다가 꺼내면 마디 속에 맑고 깨끗한 물이 가득 괴어 있는데 냄새도 없고 마시기에도 좋다고 한다. 똥통 안에 넣어둔 대통 속에 고인 물이 어혈, 타박상, 골절 등에 좋다는 것이다. 대의 세포가 호흡하면서 똥 속의 독을 걸러내 버리고 약 성분을 흡수, 투과시킨다고 생각해 볼 수 있겠다. 




'本草房 > 운림의 식품과 의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가위나무  (0) 2018.05.06
겨우살이  (0) 2018.05.06
헛개나무  (0) 2018.05.06
느릅나무  (0) 2018.05.06
예덕나무  (0) 2018.05.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