老巨樹 保護樹 記念物/梅花

金芚寺 紅梅

초암 정만순 2018. 3. 22. 22:26


金芚寺 紅梅



金屯紅梅待春爛
獨特冠佛望洛雁
春來東風涵羨心
鐵鑑茶田幽香滿

순천 금둔사 홍매는 어서 봄이 와 활짝 필 걸 기다리는데
특이한 모자 쓴 비석부처님도 낙안읍성을 바라보며 계신다
봄이 왔어도 동풍이 차니 시샘하는 마음을 가졌나보다
철감선사의 차밭에는 그윽한 향기가 가득하구나



입춘을 하루 앞둔 지난 3일 순천 금둔사를 찾았다.

금둔사 가는 길목에 위치한 낙안온천에서 낙안읍성을 내려다봤다. 끝없이 펼쳐진 너른 들판이 시원하다.

초가집들이 옹기종기 모인 낙안마을이 아름다운 풍경을 연출한다.

특히 금강암으로 오르는 등산로에서 바라보는 경치가 좋다.

금둔사 경내를 돌아보다

▲ 살포시 꽃잎을 열기 시작한 홍매화
ⓒ 조찬현

금둔사는 순천 금전산 자락 산세 좋은 곳에 포근하게 안겨있다.

서기 584년 백제(위덕왕30년)시대 담해도사가 창건했다고 한다.

홍매화(붉은 매화꽃)로도 널리 이름이 알려진 곳이다.

일주문에 들어서자 솔바람 소리에 가슴까지 시려온다.

갑작스레 들이닥친 추위에도 햇빛이 잘 든 곳엔 군데군데 봄이 소곤대고 있다.

잎을 다 떨쳐낸 담쟁이 넝쿨이 휘감고 있는 돌다리를 건넜다.

대웅전에서 들려오는 목탁소리가 마음까지 청아하게 한다. 

 찬바람이 이따금씩 스치고 지나는 경내는 고즈넉하고 평화롭기만 하다.

고요한 산사에 흘러내리는 개울물 소리와 산새 소리가 정겹다.

▲ 2006년 2월 3일 금둔사 대웅전
ⓒ 조찬현

대숲을 바람이 휘젓고 지나간다.

돌 틈에서 나온 청정수가 통나무 수로를 타고 졸졸 흘러내린다.

연못에는 살얼음이 얼었다.

낙화하는 물줄기 주변에는 고드름이 얼었다.

얼음 꽃이 피었다. 햇살을 받아 보석처럼 반짝인다.

▲ 돌 틈에서 나온 생수가 통나무 통로를 타고 끝임없이 흘러내린다.
ⓒ 조찬현

땔감이 수북이 쌓인 요사채(사찰에서 승려들이 거주하는 건물)에서 연기가 허허롭게 날린다.

이름모를 새 한 마리가 장독대 옆 매화나무에서 꽁지를 흔들고 있다.

산신각 옆 큰 바위에 새겨진 '비로자나마애여래불'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마음까지 숙연해진다.

▲ '비로자나마애여래'불
ⓒ 조찬현

금둔사에는 보물이 2개 있다.

보물 제945호인 '금둔사지 삼층석탑'과 보물 제 946호인 '금둔사지 석불비상'이다.

보물 쪽으로 가는 길은 야트막한 돌담길이다.

이어지는 길의 멋스러움에 이 길도 보물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든다.

또한 '불조마애여래'상에는 수많은 부처상이 새겨져 있다.

▲ '불조마애여래'상, 바위에 수많은 부처상이 새겨져 있다.
ⓒ 조찬현
▲ 금둔사지 삼층석탑 보물제 945호, 금둔사지 석불비상 보물 제 946호
ⓒ 조찬현


옛부터 내려온 3백 평의 자생차밭이 있다.

신라 참선사찰 9개중 사자산문(獅子山門)이다.

금둔사는 9산선문중 사자선문 철감국사(澈鑒國師)다.

스님은 선암사와 금둔사의 자생차밭에서 차 씨앗을 채취해 1993년부터 9천 평 차밭을 일궜다.

지허 스님은 한국문화의 주축은 불교문화라고 말한다.

우리의 창은 염불에서 유래됐고, 자비가 없다는 무자비, 싸움터를 뜻하는 아수라, 깡패인 건달도 건달 왕에서 비롯됐단다.

차는 우리의 생활이다.

스님은 옛날 우리 차 문화를 그대로 고수했단다.

독창적인 것이 아니라고 한다.

담소하는 도중에도 차를 자꾸만 권한다.

문밖에는 봄을 시샘하는 바람소리가 요란하다




차나무는 천년을 산다.

초의선사 때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우리 다도는 형식보다는 내용을 중시한다고 한다.

혹한을 지낼수록 좋은 매화향

금둔사 부근엔 매화나무가 많아 벌을 많이 친다.

금둔사 매화나무는 짙은 홍매와 연한 홍매 청매, 백매로 나눠진다.

"벌을 많이 기르시네요."
"예! 벌은 천적이 있어요. 대추벌(말벌)이 한번 나타나면 꿀벌을 순식간에 수십 마리씩 죽여요."
"불교에서는 살생하지 말라고 했는데, 그럴 땐 어떻게 합니까?"
"두 개의 생명을 해치려고 하는 한 개의 생명을 해치는 것은 방생이요."

유난히도 추웠던 올겨울. 혹한을 지낼수록 매화향이 좋단다.

정말 올해는 향이 좋을 거라고 스님이 전한다.

내일이 입춘이라 꽃 보러 왔는데 꽃이 안 피었다,

온풍기라도 갖다 피워야겠다고 농을 하자 '하하하' 웃으신다.

▲ 매화나무에 꽃망울이 맺혔다.
ⓒ 조찬현
▲ 홍매화가 2~3일만 지나면 꽃망울을 터트릴 듯 싶다.
ⓒ 조찬현





▷ 전남 순천 승주 금둔사 대웅전 옆에 핀 홍매화.

봄볕을 받아 싱그러운 모습과 그윽한 향기가 세상을 아름답게 한다.

지난 주말 남도의 봄소식을 취재하러 다니는데, 승주 선암사 주지 지허스님이 성묘하러 가던 길에 산중에서 매향을 좇다가 핸드폰으로 탄성을 전해왔다.

이런 순간 기자의 머릿속은 짜릿한 긴장으로 꽉 차게 마련이다.

나는 목포에 거의 다다른 여정에서 다시 백팔십도 핸들을 돌려 낙안읍성 위 금둔사쪽으로 향했다.

북풍한설 속에 신선한 진분홍 매화와 매혹적인 그 매향을 애인이듯 그리며… .

금둔사 홍매화-이 땅의 토종 꽃 가운데 해마다 앞장서 피어나 예쁜 자태와 향내에 있어서 뒤이어 피어나는 꽃들의 추종을 불허하는 물건이다.

그 홍매화는 지난 설날(12일) 아침 이 땅에 서광을 내리듯 홀연히 피어나 은은하고 감동적인 매향으로 세상을 적셔주고 있다.

지난 해 보다 일주일 가량 빠른 일이다.

금둔사 홍매화는 지난 83년 지허스님이 금둔사 아래 낙안읍성마을 민가에서 5년 자란 것을 얻어와 심은 것이다.

그 가운데 다섯 그루가 이제 딱 매화의 진가를 발휘하기에 알맞는 2미터~3미터의 키로 자라 꽃을 피우고 있다.

매화가 눈물겹도록 반가운 것은, 엄동설한이 채 끝나기 전에 우리에게 따스한 봄기운을 전해주면서 삶의 아름다움을 상기시켜주는 미덕 때문이다.

매화는 눈을 이고 피어나기도 하고 핀 뒤에 잔뜩 함박눈을 맞아도 움츠리는 법이 없어 `설중매'(雪中梅)라 불리기도 한다.

그러길래 기품을 중히 여겼던 우리 조상들은 해마다 이 무렵 산중 눈 속에 피는 매화를 찾아나서는 일을 지나칠 수 없는 연례행사로 여겼다.

매화를 그리고 매향시를 짓는 일은 조상들의 큰 즐거움이었다.

눈 색깔과 같은 백매화나 청매화도 눈을 이고 피어나는 모습이 가상하기 그지없을진대 더구나 홍매화가 백설 속에서 진분홍 입술과 노란 속눈썹을 내미는 자태란 제아무리 시흥이 출중한 글꾼일지라도 아예 시 짓기를 포기해 버렸을지 모른다.

설중 홍매화에 대해 읊은 구절이 눈에 띄지 않으니 말이다.

▷ 한국차와 매향의 만남. 선암사에서 나는 한국 전통차에 홍매화 한송이를 띄우면 여느 기품있는 미인도 따르지 못하는 아름다움과 향기로움 그 자체이다.

녹차와 왜매로는 이룰 수 없는 품격이다.

금둔사 홍매화는 겹꽃이다.

20~30개의 꽃잎이 겹으로 지름 1cm 안팎의 크기로 열린다.

꽃잎 안쪽에는 20~30개의 노란 꽃술이 돋아있다.

그리고 꽃의 개체들은 서로 2~3cm의 간격을 두고 줄기에 돌아가며 달린다.

매화의 향이나 매실의 약효는 홍매화, 청매화, 백매화 순이다.

따라서 금둔사 홍매화는 가장 먼저 피고 가장 깊고 그윽한 향기를 피워 주길래 겨울 끝자락 이땅에서 이만한 진객이 없다는 것이다.

금둔사 홍매화가 일찍 피는 것은 절이 남서향이어서 햇볕이 많이 들고 주위를 겹겹이 둘러싼 산자락이 찬 바람을 막아주기 때문이다.

금둔사에는 대웅전 왼쪽 계곡 옆 낮은 돌담가와 그 안쪽에 각각 한 그루씩의 홍매화가 있다.

또 대웅전 오른쪽 계단 위 샘 오른 쪽 지붕 가에 작은 홍매화나무가 한 그루 있고 대웅전 윗쪽 칠성각 앞에 두 그루의 홍매화나무가 있다.

이들은 지난 설날 아침 꽃망울을 터뜨리기 시작해 지난 주말까지 반 정도가 피었다.

매화는 보통 20일 가량 꽃을 피우기에 3월초까지 가면 금둔사 홍매화를 만날 수 있겠다.

금둔사 홍매화가 지면 산등성이를 하나 넘어 선암사 청매화 3월 중순에 꽃망울을 터뜨리고 또 그 뒤를 이어 3월 하순~4월 초 무렵 길 건너 구례 화엄사 흑매화가 이 땅의 진실한 매객(梅客)들을 맞는다.

선암매는 꽃술 나온 부분에 녹색 기운이 짙고 화엄사 흑매와는 꽃색깔이 흑장미처럼 진홍색이다.

그런데 무엇보다도 금둔사 홍매화, 선암사의 선암매, 화엄사의 흑매는 모두 600여 년 씩 묵은 이 땅의 진귀한 토종매의 원조이거나 그 자손이라는 사실이 참으로 중요하다.

왜냐하면 오늘날 이땅에선 일제때 일본에서 들어온 개량종 `왜매'가 `토종매'로 위장하고 `매실 상업주의' 상혼을 퍼뜨리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 풍 `매화축제'와 `매실건강 만능주의'의 선동은 선조들이 토종매와 더불어 이룩해 놓은 격조높은 `매향정신'을 밀어내고 있다.

그것은 오늘날 우리에게 절실히 필요한 `군자의 덕'에 관해 생각할 겨를마저 빼앗아가고 있다.

매화 보며 군자의 덕 배웠더니...

60평생을 토종 선암매와 더불어 온 선암사 주지 지허스님(061-754-5636)의 증언에 따르면, 매화는 겨울이 혹독할수록 향기를 짙게 내는 `군자의 덕'을 지녔다.

꽃봉오리가 얼어서 도저히 꽃이 안 되겠다 싶을 때 더욱 그윽한 향기를 내어 세상을 아름답게 한다.

또 가지를 잘라 줄수록 몸 전체의 균형을 아름답게 잡아간다.

이는 부처님이 6년 동안의 설산수도 뒤 도를 이룩한 것이나 정 다산처럼 선비가 귀양갈 것을 무릅쓰고 직언을 하여 훗날을 위한 업적을 남기는 것에 비유할 수 있는 덕성이다.

우리 조상들은 이런 매화의 덕을 기려 매화(열매가 아닌 꽃)와 그 향기를 가까이 하고 완상하는 것만으로 큰 줄거움으로 삼았다.

비료와 농약을 주는 대규모 매실농원의 매화로는 불가능한 일이다.

그런데 매화(매실)에 관한 후세인들의 인식은 크게 오염돼 있다.

오늘날엔 꽃이나 향기를 귀중히 여기는 게 아니라 매실의 양과 수익에만 초점을 맞추고 매실음식을 팔고 먹는 것으로 직성을 풀려고 한다.

이는 일본의 양산위주 개량매(왜매)가 이 땅에 들어와 저질러놓은 일제 `매실 상업주의'의 노림수이다.

왜매는 꽃과 열매가 가지에 빈 틈 없이 덕지덕지 달린다.

향기는 꽃 주위에서만 머물다 금방 사라진다.

이에 비해 우리 토종매는 꽃이 띄엄띄엄 달리고 열매도 작다.

향기는 동구밖까지 퍼진다.

요즘 광양 섬진강가 일대 대규모 매실농장들에 있는 것은 대부분 일본 개량종 왜매다.

우리 조상들은 매실로 오직 `짠지'(짠 김치) 하나만을 만들어 먹었다.

토종매실의 신 맛이 최고조에 이르렀을 때 따서 소금물에 한 번 담가 그늘에 말리고, 또 다시 그 소금물에 담가서 그늘에 말려 수분을 제거하며 매실성분을 농축시킨다.

쪼글쪼글해지면 항아리에 `매실-소엽(기관지에 좋은 한약재)-매실-소엽'의 순으로 켜켜이 넣고 소금물을 달여 붓는다.

푸른 빛이 도는 밤색으로 익어 나온다.

이것을 8월초에 담가 한 여름에 `봄 매화'를 그리며 밥 한 그릇에 한 두 알 찬으로 먹는다.

식사 뒤에도 입 안에 넣고 오물거리며 다니다가 매실냄새가 다 가실 즈음 마당 한 구석에 퉤 하고 뱉어버린다.

입맛 없는 시기의 별난 반찬이자 여름철 배탈을 막아주는 효과도 있었다.

일본의 우메보시는 우리의 매실짠지가 건너가 일본인들 입맛에 맞게 덜 짜고 달게 변형된 것이다.

일본인들은 습한 기후 때문에 장이 약하고 체질적으로 이질에 치명적이어서 예방효과를 고려해 매실을 좋아한다.

또 날 생선을 많이 먹는 일본인들의 식단에서 매실은 비린내를 없애주는 구실도 한다.

이렇게 풍토와 체질이 다른 일본인들이 매실의 생산량을 늘리기 위해 개량한 것을 일제때 녹차(이것도 한국 전통차와는 종과 제다법이 다른 일본차이다)와 함께 들여와 이 땅에 퍼뜨렸다.

이런 일제 잔재 청산에 대한 각성없이 오늘날 일본 것과 흡사한 매화축제와 매실음식이 판을 치고 있다.

우려할만한 것은 체질이 다른 한국인들이 일본인들처럼 매실음료나 매실음식을 많이 먹어도 되느냐이다.

매실음료는 위장엔 일시적으로 좋을 수 있으나 결국은 신 맛이 위산과다를 일으키기 쉽다.

또 간의 기운이 실할(셀) 때 매실음식을 먹으면 간과 담(쓸개)에 다 해롭다고 민간에 전해온다.

한 마디로 매실은 한국인들의 체질에는 맞지 않고 서양인의 비만성 체질이나 이질에 약한 일본인들에게 효험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예로부터 매실농사를 많이 짓는 집안에 위암환자나 간장질환 환자가 많이 난다는 속설도 있다.

금둔사 가는길

순천에서 낙안읍성을 거쳐 간다.

낙안읍성에서 위쪽(북쪽)으로 5km 지점에 금둔사가 있다.

금둔사에서 북쪽으로 상사호를 지나 11㎞ 지점에 선암사가 있다.

상사호 순환도로 중간에 호반호텔 `호텔 아젤리아'(061-754-60000)가 있다.

숙식은 낙안읍성이나 선암사 사하촌 식당가(민박가능)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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