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기가 치매 예방에 최고
사망률 10% 감소시켜… 절반 떨어진 근력 · 심박수는 걷기로 보완해야
이제 완연한 가을이다. 천고마비의 계절이라는 흔하디흔한 말보다 간단히 ‘하늘은 높고 더없이 청명하다’로 가을을 반기자.
가을을 알리는 신호는 이미 왔지만 이즈음의 대표적인 절기는 추분(9월 23일)이다. 추분秋分이란 글자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한자가 가진 의미가 참으로 절묘하다는 느낌이다. 秋자는 벼 禾화자와 불 火화자의 합성어다. 벼가 익어서 황금들녘으로 변하는 계절이라는 말이다.
그런데 옛날 상형문자에는 ‘秋’ 자가 메뚜기와 불 火자를 합성한 모양이었다. 이후 농경생활이 정착되면서 메뚜기는 빠지고 대신 벼를 불과 같이 합성해서 사용했다. 가을이 되면 벼가 익은 황금 들녘에 메뚜기떼들이 기승을 부려 불을 피워 쫓았다고 해서 바뀐 것이다. 지금은 메뚜기 대신 벼가 익은 황금들녘이 마치 불 난 것 같은 장면을 연상케 한다고 해서 가을 秋자로 정착됐다.
그런데 나이가 들면 신체에 어떤 변화가 생기고, 걷기가 왜 좋은지, 신체 어느 부위에 좋은지 등에 대한 유익한 정보를 알고 걸으면 건강에 더욱 도움이 될 것이다.
인간의 신체는 의학적으로 만 60세가 되면 평형감각은 20, 30대에 비해 약 30%밖에 안 된다고 한다. 평형감각의 감소는 유연성과 민첩성을 현저히 떨어뜨린다. 긴급 상황이나 위기상황에 대처하는 능력이 현저히 떨어져 사고발생을 높인다. 한 번 사고가 발생하면 잘 낫지도 않는다. 재생복구능력이 현저히 떨어지기 때문이다.
평형감각의 감소뿐만 아니라 근력은 50% 정도 저하된다. 젊었을 때 힘만 믿고 덤볐다간 어디가 부러지거나 골절부상을 당하기 십상이다. 심박수도 개인차가 있긴 하지만 최대 50%까지 떨어진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평소 외발로 오래 서있기나 눈감고 서있기, 일직선 따라 걷기, 평형대에서 걷기 등 평형감각에 대한 훈련이 필요하다. 안경도 다초점렌즈는 초점이 잘 맞지 않고 어지러운 경우가 발생하기 때문에 등산 시에는 착용하지 않는 것이 좋다.
이와 같이 만 60세를 기점으로 관절상의 문제, 평형감각 저하, 체력저하, 심혈관 질환, 심폐기능 하락, 근력 감소 등 신체의 모든 면에서 기능이 떨어진다고 보면 된다. 마음은 청춘이지만 실제 체력은 예전 같지 않다는 사실을 절감하고 인정할 수밖에 없다. 이를 극복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 등산과 트레킹 같은 걷기다.
걷기는 가장 적은 비용으로 최고의 효과를 거둘 수 있는 반면 소홀히 하면 인체의 기능이 떨어져 각종 질병에 걸릴 가능성이 높다는 연구결과를 의학계에서 잇달아 발표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걷기의 의학적 효과는 심폐기능 향상, 혈액순환 촉진, 심장질환 예방, 체지방 감소로 인한 비만 개선, 당뇨·고혈압·고지혈증 등 성인병 예방, 골다공증 예방, 우울증 치료, 스트레스 해소, 기억력 회복, 면역력 증가 등에 도움이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마디로 ‘걷기가 만병통치’다.
미국 보건부USDHHS: U.S Department of Health and Human Service가 2008년 연구 발표한 결과에 따르면, 1주일에 5회 이상 걷기운동으로 관상동맥질환·고혈압·뇌졸중·대사증후군·제2형 당뇨병·유방암·결장암·우울증·낙상 등을 줄이는 효과가 있다고 과학적으로 입증했다. 또 심폐 및 근육건강증진·건강한 체질량과 체성분·골건강 향상·기능적 건강증진·인지기능증대 등에 강력한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확인했다고 밝혔다.
“운동 않고 앉아 있는 사회로 변하는 중”
옥스퍼드대학병원에서도 비슷한 결과를 발표했다. 심혈관질환, 당뇨병, 만성폐질환과 일부 암 등 4대 질환으로 인한 전 세계 사망률이 50% 이상에 이르며, 이에 영향을 미치는 3대 주요 위험인자는 흡연, 영양부족과 신체활동 부족이라고 발표했다. 전 세계인들이 심각한 운동부족으로 각종 질환을 앓고 있다는 얘기다. 유방암의 10%, 결장암의 10%, 제Ⅱ형 당뇨병 7%와 심혈관질환 6%가 신체활동 부족이 원인이었다. 전 세계 사람들이 운동을 제대로 했다면 사망자 5,700만 명 중에 530만 명의 사망을 줄일 수 있었다고 한다. 즉 운동으로 전 세계 사망자의 약 9%를 막을 수 있다는 주장이다. 나아가 운동을 지속적으로 하면 기대수명도 높일 수 있다고 장담했다.
이 기관들은 공통적으로 걷기는 노인들에게 치명적인 치매에 가장 효과적인 예방운동으로 권장한다. 치매는 정상적인 생활을 하던 사람의 인지 기능이 이전보다 급격히 저하되는 상태를 말한다.
중앙치매센터에 따르면 우리나라 치매환자수는 66만 명가량으로 추산한다. 현재 우리나라 노인인구수로 환산하면, 65세 이상 인구의 열 명 중 한 명이 치매를 앓는 셈이다. 이들이 걷기를 열심히 한다면 의료비 절감효과도 거둘 수 있다는 얘기다. 몇 년 전 산림청 연구결과, 등산과 트레킹 포함 걷기의 의료비 대체효과가 약 2조8,000억 원에 이른다는 발표가 있었다. 이는 민간의료비 27조6,000억 원의 10% 남짓 되는 큰 규모다. 공공의료비 33조7,000억 원의 8.4%, 국민의료비 62조3,000억 원의 4.6%로 걷기가 개인의 의료비 절약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의 전체 의료비 지출을 줄일 수 있는 정책이라고 제시했다.
그러면, 성인이 하루에 필요한 운동량은 얼마나 될까? 성인은 주당 150분의 적당한 신체 활동을 필요로 하며, 아동과 청소년은 하루 최소한 1시간의 신체활동이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반면 전 세계 인구 중 남성의 30%와 여성 40%가 충분한 운동을 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하와이대학University of Hawaii at Manoa의 제이 매독Jay Maddock 교수는 “미국은 지금 심각한 앉아 있는 사회Sitting Society로 변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시간대별로 이 현상을 설명했다. 오전 6시 일어나서, 8시까지 차량으로 출근하고, 오후 4시30분까지 근무하고, 오후 5시30분까지 차량으로 퇴근하고, 6시부터 저녁 먹고, 이후 TV를 시청하거나 책을 본 뒤 취침한다는 것이다. 대부분 하루 종일 앉아서 생활함으로써 비만이 사회문제화 되고 있다는 지적했다.
어떻게 이들을 운동하도록 유도할 것인가의 문제에 사회적 관심이 기울여졌다. 매독 교수는 앉아 있는 사회를 해결하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트레일Trail이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결론지었다. 이른바 걷기다. 과체중을 연구하는 의료기관에서 ‘하루 30분씩 걸어라’, ‘하루 10분 이상씩 산책하라’, ‘트레드밀을 계속 사용하라’ 총 3부류로 나눠 실험했다.
6개월 뒤 3개 그룹의 변화를 관찰했다. 2개 그룹은 어느 정도 변화가 있었고, 트레드밀을 사용한 1개 그룹은 미미했다. 주변 환경이 운동에 전혀 친화적이지 않다는 것이었다. 운동기계를 집에 갖다 두더라도 초기 며칠간 반짝 운동을 하지만 그 뒤부터는 그냥 짐으로 내버려두고 있었다. 반면 집 주변에 트레일이 있으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신체활동을 할 가능성이 2.3배나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따라서 트레일이 사람들의 신체활동을 상당히 돕는 것으로 확인됐다. 미국에서는 트레일이 집에서 가까울수록, 인구밀도가 높을수록, 언덕 위에 있을수록, 기후가 좋을수록, 주말일수록 트레일 이용하는 빈도가 매우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걷기를 꾸준히 하면 신체에 상당할 정도로 긍정효과를 가져오는 것으로 조사됐다. 1주일에 20시간 걷는 사람은 발을 자극해서 혈액순환을 원활하게 도와주며, 뇌졸중 발생 가능성을 40%가량 낮췄다. 혈압과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춰 심장마비에 걸릴 위험성도 50% 가까이 떨어졌다. 심혈관 질환 예방 및 증진에 상당한 도움을 준다. 스트레스를 해소시켜 기분전환에 도움이 되며 나아가 우울증을 해소시킨다. 20주 동안 주3회 이상 꾸준히 걷기운동을 한 결과 체중은 1.5%, 체지방률은 13.4% 감소했다. 체지방 감소는 암을 유발하는 호르몬을 억제하기 때문에 각종 암을 예방하는 데 도움이 된다.
하루 30분 걷기운동은 당뇨병을 예방할 뿐만 아니라 약물처방보다 2배가량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무릎 주변의 근육을 강화시켜 관절염 증상완화에 도움이 된다. 근육과 뼈를 강화시켜 골다공증에 걸릴 위험성이 30% 이상 낮아진다. NK세포를 활성화시켜 면역력을 강화한다.
걷기운동이 신체에 미치는 긍정효과는 미국과 한국의 의학계에서 이미 인정하고 검증된 사실이다. 자연과 연계한 정신적 심리적 효과도 상당한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사회생물학의 아버지The Father of Sociobiology’로 불리는 하버드대학 에드워드 윌슨Edward O. Wilson 교수는 ‘생명애Biophilia 가설’을 주장했다. 그는 “인간은 살아 있는 다른 생명체에 대해 본능적으로 정서적 애착을 느끼며, 살아 있는 존재들은 다른 살아 있는 존재들에 가까이 가려고 열망한다”고 말한다. 생명애 가설은 인간이 생명과 관련된 행위에 집중하는 선천적 경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생명을 가진 모든 것을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다는 말과 일맥상통한다.
숲속에서 걸으면 질병 회복속도도 빨라
이는 자연이 인간에 얼마만큼 긍정적 영향을 미치는가에 대한 관련성과도 연결된다. 병원환자들을 대상으로 창밖 자연경관을 항상 보는 그룹과 그렇지 않은 그룹으로 나눠 회복속도를 측정한 결과, 창밖 숲을 본 집단이 빠른 회복을 보이고, 입원시간이 단축되고, 진통제 투여를 감소시키고, 수술 후 합병증까지 줄이는 놀라운 효과를 나타냈다.
이뿐만 아니다. 도시 거주자들을 대상으로 며칠간 자연 속에서 살거나 트레일을 걷도록 했더니, 정신적 피로가 감소하고, 짜증 및 사고도 줄며, 문제해결 능력이 급격히 상승하고, 집중력도 향상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나아가 자연 속에서 걸으면 집중력과 창의력이 매우 좋아지는 것으로 조사됐다. 미국 듀크대학 연구에서도 ‘숲속 트레킹은 긴장, 불안, 우울에 대한 예방 혹은 치료효과’를 보인다는 결과를 발표했다. 걷기 운동이 육체적인 효과 못지않게 정신적·심리적 긍정영향도 상당하다는 결론이다.
걷기가 만 60세 이상의 장년층에게만 도움을 주는 게 아니라 청소년 성장과 일탈방지에도 큰 효과를 거두는 것으로 나타났다. 걸으면서 자기명상을 할 수 있고, 자연과 함께하면서 균형 잡힌 사고와 겸손, 상대방에 대한 배려도 자연스럽게 체득한다는 것이다.
프랑스에서는 이를 교도소 청소년 교화프로그램으로 적극 활용하고 있다. ‘쇠이유Seuil 프로그램’을 통해서다. 쇠이유는 프랑스어로 ‘경계·문턱’이란 뜻으로, 청소년들에게 문턱을 뛰어넘어 사회의 일원으로 성공적으로 편입되기를 희망하는 차원에서 만들었다.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나는 걷는다>의 저자인 베르나르 올리비에Bernard Olivier가 저작권료를 들여 2000년 설립했다. 이 프로그램은 소년원에 수감 중인 15~18세 청소년들이 언어가 통하지 않는 다른 나라에서 3개월 동안 하루 25km 이상 총 2,000km를 걸으면 석방을 허가하는 내용이다. 이를 성공적으로 수행한 청소년은 스스로 해냈다는 자신감과 자기 존엄성을 회복한다는 사례는 실제로 많이 발표됐다.
100세 시대 건강하게 살려면 걷기가 필수다. 99세까지 건강(팔팔)하게 살다가 이삼일 아프다가 죽는다는 ‘9988234’가 대세다.
무릎 재활분야 명의 서울아산병원 스포츠건강의학센터 소장이자 울산대 의대 교수인 진영수 교수는 “다리 근육을 강화하고 스트레스까지 해소해 주는 가장 좋은 운동이 등산”이라며 “등산할 때는 특히 내려올 때 조심하라”고 지적했다.
진 교수는 “하산할 때는 앞쪽 다리에 체중이 실리면서 최대 5배 정도의 하중을 받는다”며 “무릎근육이 없는 사람은 등산을 하지 말거나 무릎근육을 체중의 최소 2배 이상(여자는 1.5배) 정도 키워서 등산해야 한다”고 권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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