古典 香氣/採根譚

菜根譚(萬曆本) - 후집

초암 정만순 2018. 1. 7. 07:28

菜根譚(萬曆本) 

 
                          <後集 (001~134) 完譯>
 
 



                譯者; 李鎭夏




001.  談山林之樂者,未必眞得山林之趣。
     담산림지락자,  미필진득산림지취.

      厭名利之談者,未必盡忘名利之情。
     염명리지담자,  미필진망명리지정.

     산림의 즐거움을 말하는 사람은 아직 진정한 산림의 맛을 터득하지 못해서이고, 명리를 말하기 싫어하는 사람은 아직 명리에 대한 마음을 다 잊지 못해서이니라.


002.  釣水,逸事也。尙持生殺之柄。
     조수, 일사야.  상지생살지병.
 
 
      奕棊,淸戱也。且動戰爭之心。
     혁기, 청허야.  차동전쟁지심.

      可見喜事不如省事之爲適, 多能不若無能之全眞。
     가견희사불여성사지위적, 다능불약무능지전진.

     낙서는 즐거운 일이지만 오히려 생살의 권세를 쥐고 있고, 바둑과 장기는 맑은 놀이지만 또한 전쟁의 마음이 움직이고 있다. 이로써 살펴보면, 일을 즐거워하는 것은 일을 덜어 자적함만 같지 못하고, 재능이 많은 것은 재주가 없어 진심을 보전함만 같지 못함을 알 수 있도다.


003.  鶯花茂而山濃谷艶,總是乾坤之幻境。
     앵화무이산농곡염, 총시건곤지환경.

      水木落而石瘦崖枯,纔見天地之眞吾。
     수목낙이석수애고, 재견천지지진오.

     꾀꼬리 노래하고 꽃은 만발해 산이 무르녹고 계곡이 아름다워도 이 모두 천지의 거짓된 모습일 뿐이다. 물이 마르고 잎이 떨어져 바위가 앙상하고 언덕이 메말라야 비로소 천지의 참모습을 볼 수 있느니라.


004.  歲月本長,而忙者自促。
     세월본장, 이망자자촉.

      天地本寬,而鄙者自隘。
     천지목관, 이비자자애.

      風花雪月本閒,而勞攘者自冗。
     풍화설월본한, 이로양자자용.

     세월은 본래 길건만 바쁜 자가 스스로 짧다 하고, 천지는 본래 넓건만 천박한 자가 스스로 좁다 하며, 바람과 꽃  눈과 달은 본래 한가롭건만 악착스런자가 스스로 번잡하다 하는도다. 
     

005.  得趣不在多。盆池拳石間,烟霞具足。
     득취부재다, 분지권석간, 연하구족.

      會景不在遠。蓬窓竹屋下,風月自賖。
     회경부재원.  봉창죽옥하, 풍월자사.

        사=아득할 사, 한가할 사

     정취를 얻음은 많은 것에 있지 않으니, 동이만한 연못이나 주먹만한 돌 사이라도 안개와 노을은 깃들인다. 좋은 풍경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니 쑥대로 얽은 창문과 대나무로 엮은 집 아래에도 맑은 바람과 밝은 달이 스스로 한가롭다.


006.  聽靜夜之鐘聲,喚醒夢中之夢。
     청정야지종성,  환성몽중지몽.  

      觀澄潭之月影,窺見身外之身。
     관징담지월영,  규견신외지신.

     고요한 밤의 종소리를 들으매 꿈속의 꿈을 불러 일깨우고, 맑은 연못의 달 그림자를 살피매 몸밖의 몸을 엿보노라.


007.  鳥語蟲聲,總是全心之訣。花英草色,無非見道之文。
     조어충성, 총시전심지결.  화영초색, 무비현도지문. 

      學者要天機淸澈̖胸次玲瓏,觸物皆有會心處。
     학자요천기청철, 흉차영롱, 촉물개유회심처.

     새의 지저귐과 벌레 소리는 이 모두 마음을 전하는 비결이요, 꽃봉오리와 풀빛 또한 진리를 표현하는 명문 아님이 없도다. 배우는 사람은 모름지기 마음의 작용을 맑고 투철하게 하고 가슴속을 영롱하게 하여 사물을 대함에 모두 깨닫는 바가 있어야 하리라.


008.  人解讀有字書,不解讀無字書。
     인해독유우서, 불해독무자서.

      知彈有絃琴,不知彈無絃琴。
     지탄유현금, 부지탄무현금.

      以跡用,不以神用,何以得琴書之趣?
     이적용, 불이신용,  하이득금서지취?

     사람들은 글자 있는 책은 읽을 줄 알지만 글자 없는 책은 읽을 줄 모르며, 줄이 있는 거문고는 탈 줄 알지만 줄이 없는 거문고는 탈 줄 모르니, 형체만 사용하고 그 정신을 사용하지 못한다면 어찌 금서의 참 맛을 깨달을 수 있겠는가.


009.  心無物欲,卽是秋空霽海。
     심무물욕, 즉시추공제해.

      坐有琴書,便成石室丹丘。
     좌유금서,  변성석실단구.

     마음에 물욕이 없으면 이는 곧 가을 하늘이나 개인 바다요, 자리에 거문고와 책이 있으면 이는 곧 신선이 사는 곳이로다.


010.  賓朋雲集,劇飮淋漓樂矣,
     빈붕운집,  극음림리락의.

      俄而漏盡燭殘,香銷茗冷,
     아이루진촉잔, 향소명랭.

      不覺反成嘔咽,令人索然無味。
     불각반성구열, 영인삭연무미.

      天下事率類此,人奈何不早回頭也?
     천하사솔류차,  인나하불조회두야?

     손님과 벗이 구름같이 모여들어 마음껏 술 마시고 흐드러지게 노는 일은 즐거우나, 이윽고 시간이 다해 촛불이 가물거리고 향불도 꺼지고 차도 식고 나면, 저도 모르게 도리어 흐느낌을 자아내어 사람을 한없이 쓸쓸하게 한다. 세상 모든 일이 이와 같은데 사람들은 어찌하여 일찍 머리를 돌리려 하지 않는가.


011.  會得個中趣,五湖之烟月,盡入寸裡。
      회득개중취, 오조지연월, 진입촌리. 

      破得眼前機,千古之英雄,盡歸掌握。
     파득안전기, 천고영지웅,  진귀장악.
 
     하나의 사물 가운데 들어 있는 참 맛을 깨달을 수 있다면 오호의 풍경도 모두 한 치 마음 속에 들어오고, 눈앞의 천기를 간파할 수 있다면 천고의 영웅도 다 손아귀에 들어올 것이니라.


012.  山河大地,已屬微塵,而況塵中之塵?
     산하대지,  이속미진, 이황진중지진

      血肉身軀,且歸泡影,而況影外之影?
     혈육신구,  차귀포영, 이황영외지영

      非上上智,無了了心。
     비상상지,  무료료심.

산하와 대지도 이미 작은 티끌에 속하는데 하물며 티끌 속의 티끌임에라!
피와 살과 몸뚱이도 또한 물거품과 그림자로 돌아가는데 하물며 그림자 밖의 그림자임에랴!
그러나 최고의 지혜가 아니면 밝게 깨닫는 마음도 없으리라.


013.  石火光中,爭長競短,幾何光陰?
     석화광중,  쟁장경단, 기하광음

      蝸牛角上,較雌論雄,許大世界?
     와우각상, 교자론웅,  허대세계
     
     석화의 빛 속에서 길고 짧음을 다투어 본들 그 세월이 얼마나 되며, 달팽이의 뿔 위에서 자웅을 겨루어 본들 그 세계가 얼마나 크겠는가!
     

014.  寒燈無焰,敝裘無溫,總是播弄光景。
     한등 무염, 폐구무온, 총시파롱광경.

      身如槁木,心似死灰,不免墮在頑空。
     신여고목, 심사사회,  불면타재완공.

     가물거리는 등잔에 불꽃이 없고 해어진 갖옷에 따스함이 없으니 이 모두 삭막한 풍경이요,
몸은 마른 나무와 같고 마음은 싸늘해 식은 재와 같으니 완고한 공의식(空意識)에 떨어짐을 면하지 못하리라.


015.  人肯當下休,便當下了。
     인긍당하휴, 변당하료.

      若要尋個歇處,
     약요심개혈처.

      則婚嫁雖完,事亦不少。僧道雖好,心亦不了。
     즉혼가수완, 사역불소.  승도수호,  심역불료.

      前人云,?如今休去,便休去,若覓了時,無了時?,
     전인운,  ‘여금휴거,  변휴거, 약멱료시, 무료시

      見之卓矣。
     견지탁의.

     사람이 애써 당장에 쉬면 곧 그 당장에 쉴 수 있으되, 만약 쉴 곳을 찾는다면 아들딸을 결혼시킨 후에도 일은 많으리라. 중과 도사가 비록 좋다고 하더라도 그 마음으로는 역시 깨닫지 못할지니라. 옛사람이 이르기를 ‘만약 당장에 그만두면 곧 그만 둘 수 있지만 그만둘 때를 찾는다면 그만둘 때가 없으리라’고 하였으니 참으로 탁견이로다.


016.  從冷視熱,然後知熱處之奔走無益。
     조랭시열,  연후지열처지분주무익

      從冗入閑,然後覺閑中之滋味最長。
     종용입한, 연후각한중지자미최장.

     냉정한 마음으로 열광했던 때를 바라본 다음에야 그 열광의 분주함이 무익한 것임을 알게 되고, 번거로움에서 한가함으로 들어가 본 후에야 한가한 재미가 가장 유장한 것임을 깨닫게 되느니라.
 

017.  有浮雲富貴之風,而不必嚴棲穴處。
     유부운부기지풍,  이불필암서혈처.

      無膏肓泉石之癖,而常自醉酒耽詩。
     무고황천석지벽,  이상자취주탐시.

     부귀를 뜬구름처럼 보는 기풍이 있다 해서 반드시 바위굴에서 살 필요는 없고, 자연을 사랑하는 버릇이 고질(痼疾)됨은 없다해도 언제나 스스로 술에 취하고 시에 탐닉해야 하리라.


018.  競逐,聽人而不嫌盡醉。恬淡,適己而不誇獨醒。
     경축,  청인이불렴진취, 염담,  적기이불과독성.

      此釋氏所謂?不爲法纏,不爲空纏,身心兩自在?者。
     차석씨소위, ‘불위법전, 불위공전, 신심양자재’ 자.

     명리를 다툼은 남들에게 맡기되 모두가 취하여도 미워하지 말고, 고요하고 담박함은 내가 즐기되 홀로 깨어 있음을 자랑하지 말라. 이것은 부처의 이른바 ‘법에도 얽매이지 않고 공에도 얽매이지 않음’이니, 몸과 마음이 모두 자유로울지니라.


019.  延促由於一念,寬窄係之寸心。
     연촉유어일념, 관착계지촌심.

      故機閑者,一日遙於千古,意廣者,斗室寬若兩間。
     고기한자, 일일요어천고,  의광자, 두실관약량간.

      길고 짧은 것은 한 생각에 말미암고, 넓고 좁음은 한 치 마음에 달려 있다. 그러므로 마음이 한가로운 사람은 하루가 천 년 보다 길고, 뜻이 넓은 사람은 넓은 사람은 좁은 방이 천지간보다 넓으니라.


020.  損之又損,栽花種竹,儘交還烏有先生。
     손지우손, 재화종죽,  진교환오유선생.

      忘無可忘,焚香煮茗,總不問白衣童子。
     망무가망,  분향자명, 총불문백의동자.

     물욕을 덜고 또 덜어서 꽃을 가꾸고 대나무를 심으니 그야말로 오유선생(烏有先生)이 되어 가고, 세사를 잊고 또 잊어 향을 피우고 차를 달이니 도대체 백의동자를 물을 것이 없어라.


021.  都來眼前事,知足者仙境,不知足者凡境。
     도래안전사,  지족자선경, 부지족자범경.

      總出世上因,善用者生機,不善用者殺機。
     총출세상인, 선용자생기,  불선용자살기.

     눈앞에 다가오는 모든 일은 만족할 줄 알면 신선의 경지로되 만족할 줄 모르면 범속의 경지이고, 세상에 나타나는 인연은 잘 쓰면 살리는 작용을 하지만 잘못 쓰면 죽이는 작용을 하느니라.
 

022.  趨炎附勢之禍,甚慘亦甚速。
     추염부세지화, 심참역심속.

      樓恬守逸之味,最淡亦最長。
     서념수일지미,  최담역최장.

     권력을 따라가고 세력에 붙는 재앙은 매우 참혹하고도 몹시 빠르되, 고요함에 살고 편안함을 지키는 맛은 지극히 밝고도 또한 가장 오래 가느니라.


023.  松澗邊,携杖獨行,立處,雲生破衲。
     송간변, 휴장독행,  입처,  운생파납.

      竹窓下,枕書高臥,覺時,月侵寒氈。
     죽창하, 침서고와,  각시,  월침한전.

     소나무 우거진 시냇가를 지팡이 짚고 외로이 가노라면 서는 곳마다 구름이 해어진 누더기에서 일어나고, 대나무 창 아래에 책을 베개삼아 높이 누웠다 깨어 보면 달빛은 낡은 담요에 와 스며드네.


024.  色慾火熾,而一念及病時,便興似寒灰。
     색욕화치, 이일념급병시,  변흥사한회.

      名利飴甘,而一想到死地,便味如嚼蠟。
     명리이감, 이일상도사지,  변미여작랍.

      故人常憂死慮病,亦可消幻業而長道心。
     고인상우사려병, 역가소환업이장도심.

     색욕이 불길처럼 타오르다가도 일단 생각이 병든 때에 미치면 문득 흥취가 싸늘한 재 같아지고, 명리가 옛 처럼 달콤하다가도 일단 생각이 죽는 곳에 이르면 문득 밀랍 같아지니라. 그러므로 사람이 언제나 죽음을 근심하고 범을 염려하면, 가히 헛된 일을 없애고 도심(도심)을 기를 수 있느니라.


025.  爭先的徑路窄,退後一步,自寬平一步。
     쟁선적경로착, 퇴후일보,  자관평일보.

      濃艶的滋味短,淸淡一分,自悠長一分。
     농염적자미단, 청담일분, 자유장일분.

     앞을 다투는 길은 좁으니 한 걸음 뒤로 물러나면 저절로 한 걸음 넉넉해지고, 무르녹고 아름다운 재미는 짧으니 일 분만 맑고 엷게 하면 저절로 일분이 유장해지리라.
 

026.  忙處不亂性,須閑處心神養得淸。
     망처불란성,  수한처심신양득청

      死時不動心,須生時事物看得破。
     사시부동심, 수생시사물간득파.

     바쁠 때에 본성을 어지럽히지 않으려면 모름지기 한가할 때에 마음을 맑게 길러야 하고, 죽을 때에 마음이 흔들리지 않으려면 모름지기 살아 있을 때에 사물의 도리를 간파해야 하느니라.


027.  隱逸林中,無榮辱。
     은일림중, 무영욕.

      道義路上,無炎凉。
     도의로상,  무염량.

     은일 한 숲 속에는 영화로움과 욕됨이 없고 도의의 길에는 더위와 추위가 없느니라.


028.  熱不必除,而除此熱惱,身常在淸凉臺上。
     열불필제,  이제차열뇌, 신상재청량대상.

      窮不可遣,而遣此窮愁,心常居安樂窩中。
     궁불가견, 이견차궁수,  심상거안락와중.

     더위를 없앨 수는 없으되 더위를 괴로워하는 이 마음을 없앤다면 몸은 언제나 서늘한 누대 위에 있게 되고, 가난을 쫓아 버릴 수는 없으되 가난함을 걱정하는 이 마음을 쫓아 버리면 마음은 언제나 안락한 집 가운데에 있게 되리라.
  

029.  進步處,便思退步,庶免觸藩之禍。
     진보처, 변사퇴보,  서면촉번지화.

      著手時,先圖放手,纔脫騎虎之危。
     착수시, 선도방수,  재탈기호지위.

     나아가는 곳에서 문득 물러날 것을 생각한다면 거의 울타리에 걸리는 재앙을 면할 수 있고, 손을 댈 때에 먼저 손을 놓을 것을 도모하면 곧 호랑이를 타는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으리라.


030.  貪得者分金,恨不得玉。封公,怨不受侯,權豪自甘乞丐。
     탐득자분금, 한부득옥.  봉금, 원불수후,  권호자감걸개.

      知足者黎羹,旨於膏粱。布袍,煖於狐狢,編民不讓王公。
     지족자여갱, 지어고량,  포포, 난어고학,  편빈불양왕공.

     얻기를 탐내는 사람은 금을 나누어주어도 옥을 얻지 못함을 한하고 공작을 봉해 주어도 제후가 되지 못함을 원망하니, 부귀하면서도 스스로 거지 노릇을 달게 여기는 것이로다. 만족할 줄 아는 사람은 명아주국을 진미보다 더 맛있게 여기고 베도포를 갖옷보다 더 따뜻하게 여기니, 일반 백성이면서도 왕공을 부러워하지 아니하느니라. 


031.  矜名,不若逃名趣。
     긍명,  불약도명취.

      練事,何如省事閒。
     연사, 하여성사한.

     이름을 자랑하는 것이 어찌 이름을 피하는 기취(氣趣)를 가짐만 하겠으며, 일에 익숙한 것이 어찌 일을 줄여서 한가함만 하겠는가.


032.  嗜寂者,觀白雲幽石而通玄。
     기적자, 관백운유석이통현.

      趨榮者,見淸歌妙舞而忘倦。
     추영자,  견청가묘무이망권.

      唯自得之士,無喧寂,無榮枯,無往非自適之天。
     유자득지사,  무훤적, 무영고,  무왕비자적지천.

     고요함을 좋아하는 사람은 흰 구름이나 그윽한 바위를 보고도 현묘한 진리를 깨닫고, 영화를 좇는 사람은 맑은 노래와 아름다운 춤을 보며 싫증을 모른다. 오직 스스로 깨달은 선비만이 시끄러움도 고요함도 없고 영화로움도 없으니, 가는 곳마다 자기 마음에 맞는 즐거운 세상 아닌 곳이 없으리라. 


033.  孤雲出岫,去留一無所係。
     고운출수,  거류일무소계.

      郞鏡懸空,靜躁兩不相干。
     낭경현공,  정조량불상간.

     외로운 구름이 산골짜기에서 피어오르게 가고 머무름에 조금도 매임이 없고, 밝은 달이 하늘에 걸리매 고요하고 시끄러움을 모두 상관하지 않네.


034.  悠長之趣,不得於醲釅,而得於啜菽飮水。
     유장지취,  부득어농엄, 이득어철숙음수.

      惆悵之懷,不生於枯寂,而生於品竹調絲。
     추창지회,  불생어고적, 이생어품죽조사.

      固知濃處味常短, 淡中趣獨眞也。
     고지농처미상단, 담중취독진야.

     유장한 맛은 진하고 맛있는 술에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콩을 씹고 물을 마시는 데서 얻어지며, 그리워하는 마음은 메마르고 적막한 곳에서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피리 불고 거문고 타는 데서 생겨나는 것이다. 그러므로 참으로 짙은맛은 언제나 짧으며 담백한 취미만이 홀로 진실함을 알겠도다.


035.  禪宗曰,?饑來喫飯, 倦來眠?,
     선종왈,  기래끽반,  권래면,

      詩旨曰,?眼前景致口頭語?。
     시지왈,   안전경치구두어,

      蓋極高寓於極平,至難出於至易,
     개극고우어극평, 지난출어지이,

      有意者反遠,無心者自近也。
     유의자반원, 무심자자근야.

     선종에서는 말하기를 ‘배고프면 밥을 먹고 피곤하면 잠을 잔다’고 하고, 시지에서는 말하기를 ‘눈앞의 경치를 보통의 말로 표현한다’고 한다. 대개 지극히 높은 것은 지극히 평범한 것에 있고, 지극히 어려운 것은 지극히 쉬운 데서 나오는 것이니, 뜻이 있으면 도리어 멀어지고, 마음이 없으면 저절로 가까와지느니라.
 

036.  水流而境無聲,得處喧見寂之趣。
     수류이경무성, 득처훤견적지취.

      山高而雲不碍,悟出有入無之機。
     산고이운부애, 오출유입무지기.

     물은 홀로 그 언저리에는 소리가 없으니 시끄러운 곳에서 고요한 멋을 얻을 것이며, 산은 높아도 구름이 걸리지 않으니 유에서 나와 무로 들어가는 기미를 깨닫게 되리라.


037.  山林是勝地。一營戀,便成市朝。
     산림시승지. 일영련,  변성시조.

      書畵是雅事。一貪痴,便成商賈。
     서화시아사, 일탐치,  변성상고.

      蓋心無染著,欲界是仙都。心有係戀,樂境成苦海矣。
     개심무염착, 욕계시선도,  심유계련, 낙경성고해의.

     산림은 아름다운 곳이나 한 번 집착하면 곧 시장판이 되고 서화는 우아한 일이나 한 번 탐내면 문득 장사꾼이 되고 만다. 대개 마음에 물들거나 집착이 없으면 속세도 신선 세계요, 마음에 매임이나 집착이 있으면 극락도 고해가 되리라.


038.  時當喧雜,則平日所記憶者皆漫然忘去。
     시당원잡,  즉평일소기억자개만연망거.

      境在淸寧,則夙昔所遺忘者又恍爾現前。
     경재청녕,  즉숙석소유망자우황이현전.

      可見靜躁稍分, 昏明頓異也。
     가견정조초분, 혼명돈이야.

     시끄럽고 번잡한 때를 당하면 곧 평소에 기억하던 것도 모두 멍하니 잊어버리고, 맑고 편안한 경지에 있으면 지난날에 잊어버렸던 것도 또한 뚜렷이 앞에 나타난다. 가히 조용함과 시끄러움이 조금만 엇갈려도 마음의 어둡고 밝음이 뚜렷이 달라짐을 알 수 있으리라.


039.  蘆花被下,臥雪眠雲,保全得一窩夜氣。
     노화피하, 와설면운,  보전득일와야기.

      竹葉杯中,吟風弄月,躱離了萬丈紅塵。
     죽엽배중, 음풍농월,  신잡료만장홍진.

     찔레꽃 이불 덮고 눈밭에 누워 구름 속에 잠들면 한 방 가득한 밤기운! 댓잎 술잔 속에 바람을 읊조리고 달을 희롱하노라면 속세의 만장 붉은 티끌 다 떨쳐지리라.
  

040.  袞冕行中,著一藜杖的山人,便增一段高風。
     곤면행중, 착일여방적산인,  변증일단고풍.

      漁樵路上,著一袞衣的朝士,轉添許多俗氣。
     어초로상, 착일곤의적조사, 전첨허다속기.

      固知濃不勝淡, 俗不如雅也。
     고지농불승담, 속불여아야.

     높은 벼슬아치들의 행렬 가운데 명아주 지팡이를 짚은 산인 한 사람 섞여 있으면 문득 한결 높은 풍도가 더해진다. 허나 고기잡이와 나무꾼이 다니는 길 위에 관복 입은 벼슬아치가 한 사람 섞여 있으면 도리어 수많은 속된 기운을 더할 뿐이다. 이에 진실로 짙은 것은 옅은 것만 못하고 속된 것은 우아한 것만 못함을 알겠구나.


041.  出世之道,卽在涉世中。不必絶人以逃世。
     출세지도, 즉재섭재중.  불필절인이도세.

      了心之功,卽在盡心內。不必絶欲以灰心。
     요심지공,  즉재진심내, 불필절욕이회심.

     속세를 벗어나는 길은 곧 세상을 살아가는 가운데 있으니 반드시 사람과 절교하는 세상을 도피해야 할 필요는 없고, 마음을 깨닫는 공부는 곧 마음을 다하는 속에 있으니 반드시 물욕을 끊어서 마음을 싸늘한 재처럼 할 필요는 없느니라.
 

042.  此身常放在閒處,榮辱得失,誰能羞遣我?
     차신상방재한처,  영욕득실, 수능수견아.

      此心常安在靜中,是非利害,誰能瞞眛我?
     차심상안재정중, 시지이해,  수능만매아.

     이 몸을 언제나 한가한 곳에 놓아둔다면 영욕과 득실, 그 어느 것이 나를 그릇되게 할 것이랴. 이 마음을 언제나 조용한 가운데 안정시킨다면 시비와 이해, 그 어느 것이 능히 나를 속일 수 있으라?

043.  竹籬下,忽聞犬吠鷄鳴,恍似雲中世界。
     죽리하, 홀문견폐계명,  황사운중세계.

      芸窓中,雅聽蟬吟鴉噪,方知靜裡乾坤。
     운칭중, 아청선음아조,  방지정리건곤.

     대나무 울타리 아래에 홀연히 개 짖고 닭 우는 소리 들리니, 황홀하기 마치 구름 속 세계와 같고, 서재 안에 운치 있는 매미 소리와 까마귀 우짖는 소리 들리니, 바야흐로 고요한 속의 천지를 알겠구나.


044.  我不希榮,何憂乎利祿之香餌。
     아불희영, 하우호리록지향이.

      我不競進,何畏乎仕官之危機。
     아불경진, 하외호사관지위기.

     내가 영화를 바라지 않으니 어찌 이록(利祿)의 향기로운 미끼를 근심하며, 내가 승진을 다투지 않으니 어찌 벼슬살이의 위험을 두려워하겠는가.


045.  徜徉於山林泉石之間,而塵心漸息。
     상양어산림천석지간,  이진심점식.

      夷猶於詩書圖畵之內,而俗氣潛消。
     이유어시서도화지내, 이속기점소.

      故君子雖不玩物喪志,亦常借境調心。
     고군자수불완물상지, 역상차경조심.

     산림과 천석(泉石) 사이를 이리저리 거니노라면 세속의 먼지는 어느덧 사라지고, 시서와 그림 속에 한가히 노니노라면 속된 기운은 슬며시 없어진다. 그러므로 군자는 도락(道樂)에 빠져 뜻을 잃지 않을뿐더러 또한 항상 우아한 경지를 빌어 마음을 고르느니라.


046.  春日氣象繁華,令人心神駘蕩,
     춘일기상번화, 영인심신태탕.

      不若秋日雲白風淸, 蘭芳桂馥, 水天一色, 上下空明,
     불약추일운백풍청, 난방계복, 수천일색, 상하공명.

      使人神骨俱淸也。
     사인신골구청야.

     봄날의 기상은 번화하여 사람의 심신을 화창하게 한다. 하지만 가을날, 구름 희고 바람 맑으며, 난초는 꽃답고 계수나무 향기로우며, 물과 하늘이 한빛으로 푸르고 천지에 달이 환히 밝아서 사람의 심신을 함께 맑게 해주는 것만 하랴!


047.  一字不識,而有詩意者,得詩家眞趣。
     일자불식,  이유시의자, 득시가진취.

      一偈不參,而有禪味者,悟禪敎玄機。
     일게불참, 이유선미자,  오선교현기.

     글자 하나 모를지라도 시적 정서를 지닌 사람은 시인의 참된 멋을 터득하고, 게송(偈頌) 한 구절 외우지 못하더라도 선의 묘미를 지닌 사람은 선교의 오묘한 이치를 깨닫는다.


048.  機動的, 弓影疑爲蛇蝎,寢石視爲伏虎,此中渾是殺氣。
     기동적, 궁영의위사갈, 침석시위복호,  차중혼시살기.

      念息的,石虎可作海鷗,蛙聲可當鼓吹,觸處俱見眞機。
     염식적,  석호가작해구, 와성가당고취,  촉처구견진기.

     마음이 흔들리면 활 그림자도 뱀으로 보이고 쓰러진 돌도 엎드린 호랑이로 보이니, 이 속에는 모두 살기뿐이다. 생각이 가라앉으면 석호도 바다갈매기처럼 되고 개구리 소리도 음악으로 들리니, 가는 곳마다 모두 참된 작용을 보게 되리라.


049.  身如不繫之舟,一任流行坎止。
     신여불계지주, 일임류행감지.

      心似旣灰之木,何妨刀割香塗。
     심사기회지목,  하방도할향도.

     몸은 매어 두지 않은 배와 같으니 흘러가든 멈추든 완전히 내맡길 일이요, 마음은 이미 재가 된 나무와 같으니 칼로 자르든 향을 칠하든 무슨 상관이 있으랴.


050.  人情,聽鶯啼則喜,聞蛙鳴則厭,
     인정, 청앵제즉희,  문와명즉염.

      見花則思培之,遇草則欲去之。但是以形氣用事。
     견화즉사배지,  우초즉욕거지, 단시이형기용사.

      若以性天視之,何者非自鳴其天機, 非自暢其生意也?
     약이성천시지, 하자비자명기천기, 비자창기생의야

     사람의 정이란 꾀꼬리 소리를 들으면 기뻐하고 개구리 울음을 들으면 싫어하며, 꽃을 보면 이를 가꾸려 생각하고 잡초를 만나면 이를 제거하고자 하니, 이것은 다만 형체와 기질로써 사물을 보기 때문이다. 만약 천성의 본바탕으로 이를 본다면 그 무엇이 스스로 천기를 울림이 아니며, 스스로 자라나는 뜻을 펴는 것이 아니겠는가.
     

051.  髮落齒疎,任幻形之彫謝。
     발락치소,  임환형지조사.

      鳥吟花笑,識自性之眞如。
     조음화소, 식자성지진여.

     머리카락이 빠지고 이가 듬성듬성해지는 것은 헛된 육신의 시들어짐에 맡겨 두라. 새의 노래와 꽃의 웃음에서 본성의 변함 없는 진리를 배우도록 하라.


052.  欲其中者,波沸寒潭,山林不見其寂。
     욕기중자, 파비한담,  산림불견기적.

      虛其中者,凉生酷暑,朝市不知其喧。
     허기중자, 양생혹서,  조시부지기원.

     마음에 욕심이 있는 사람은 차가운 연못에도 물결이 끓어오르니 산 속에서도 그 고요함을 보지 못하고, 마음이 텅 빈 사람은 혹심한 더위에서도 서늘함이 일어나니 시장에 있어서도 그 시끄러움을 알지 못하느니라.

053.  多藏者厚亡,故知富不如貧之無慮。
     다장자후망, 고지부불여빈지무려.

      高步者疾顚,故知貴不如賤之常安。
     고보자질전, 고지귀불여천지상안.

     많이 가진 사람은 많이 잃는다. 그러므로 부유한 것이 가난하면서도 걱정 없음만 못한 것을 알 수 있도다. 높은 곳을 걷는 사람은 빨리 넘어진다. 그러므로 고귀한 것이 천하면서도 언제나 편안한 것만 못함을 알 수 있도다.


054.  讀易曉窓,丹砂硏松間之露。
     독역효창, 단사연송간지로.

      談經午案,寶磬宣竹下之風。
     담경오안, 보경선죽하지풍.

     새벽 창가에서 w역을 읽다가 소나무 이슬로 붉은 먹을 갈며, 한낮 책상 앞에서 불경을 담론하다가 대숲 바람결에 경쇠를 울리노라.
 

055.  花居盆內,終乏生機。鳥入籠中,便滅天趣。
     화거분내,  종핍생기. 조입롱중, 변감천취.

      不若山間花鳥,錯集成文,翶翔自若,自是悠然會心。
     불약산간화조,  착집성문, 고상자약,  자시유연회심.

     꽃이 화분 속에 있으면 마침내 생기를 잃고 새가 조롱 속에 들면 곧 자연스런 멋이 줄어드니, 산 속의 꽃과 새가 한데 모여 문채를 이루고 마음껏 날아올라 스스로 한가롭게 즐거워함만 못하도다.


056.  世人只緣認得我字太眞,故多種種嗜好, 種種煩惱。
     세인지연인득아자태진, 고다종종기호, 종종번뇌

      前人云,?不復知有我,何知物爲貴??
     전인운,  부부지유아,  하지물위귀

      又云,?知身不是我,煩惱更何侵?? 眞破的之言也。
     우운,  지신불시아,  번뇌갱하침,  진파적지언야.

     세상 사람들은 오직 ‘나’라는 글자를 지나치게 참된 것으로 아는 까닭에 온갖 기호와 온갖 번뇌가 허다히 일어난다. 옛 사람이 말하기를 ‘내가 있음도 또한 알지 못하는데 어찌 물건 귀한 것을 알겠는가’라고 하였고, 또 말하기를 ‘이 몸이 내가 아님을 안다면 번뇌가 어찌 다시 침입하겠는가’라고 하였으니, 참으로 진리를 간파한 말이로다.


057.  自老視少,可以消奔馳角逐之心。
     자로시소, 가이소분치각축지심.

      自瘁視榮,可以絶紛華靡麗之念。
     자췌시영, 가이절분화마려지념.

     늙은이의 눈으로 젊음을 바라본다면 바쁘게 달리고 서로 다투는 마음을 없앨 수 있을 것이요, 영락한 눈으로 화려함을 바라본다면 사치스럽고 화려한 생각을 끊어 버릴 수 있을 것이니라.


058.  人情世態,倏忽萬端,不宜認得太眞。
     인정세태, 숙홀만단,  불의인득태진.

      堯夫云,
     요부운,

      ?昔日所云我,而今却是伊,不知今日我,又屬後來誰?。
      석일소운아,  이금각시이, 부지금일아, 우속후래수.

      人常作是觀,便可解却胸中罥矣。
     인상작시관, 변가해각흉중매의.

     인정과 세태는 삽시간에 만 가지 모양으로 변화하는 것이니 너무 지나치게 진리라고 여기지 말라. 소옹이 이르기를 ‘어제 내 것이라고 하던 것도 오늘 도리어 저의 것이 되었으니, 알지 못하겠구나, 오늘 내 것이 또 내일 뉘 것이 될지!’라고 하였으니 사람이 언제나 이러한 관점을 지닌다면 문득 가슴속의 얽매임을 풀 수 있게되리라.


059.  鬧中,著一冷眼,便省許多苦心事。
      열뇨중,   착일랭안,  변성허다고심사.

      冷落處,存一熱心,便得許多眞趣味。
     냉낙처, 존일열심,  변득허다진취미.

     바쁘고 시끄러운 속에서도 한 번 냉정한 눈을 지닌다면 문득 많은 괴로운 심사를 줄일 수 있으리라. 어렵고 쓸쓸한 처지에서도 하나의 뜨거운 마음을 지닌다면 문득 많은 참다운 취미를 얻게 되리라.


060.  有一樂境界,就有一不樂的相對待。
     유일락경계, 취유일불락적상대대.

      有一好光景,就有一不好的相乘除。
     유일호광경, 취유일불호적상승제.

      只是尋常家飯, 素位風光,纔是個安樂的窩巢。
     지시심상가반, 소위풍광, 재시개안락적와소.

    한편에 즐거운 경지가 있으면 다른 한편에 즐겁지 않은 경지가 있어서 서로 상대를 이루고, 한편에 좋은 광경이 있으면 곧 다른 한편에 좋지 못한 광경이 있어서 서로 엇비기느니라. 오직 언제나 집에서 먹는 평범한 식사와 벼슬 없는 생활이 하나의 안락한 보금자리로다.


061.  簾櫳高敞,看靑山綠水呑吐雲煙,識乾坤之自在。
     염롱고창,  간청산록수탄토운연, 신건곤지자재.

      竹樹扶疎,任乳燕鳴鳩送迎時序,知物我之兩忘。
     죽수부소, 임유연명구송영시서, 지물아지량망.

     발을 높이 걸고 창문에 기대어 청산 녹수가 구름과 안개를 머금고 토하는 것을 보노라면 천지의 자재(自在)함을 알 수 있고, 대나무와 수풀 우거진 곳에 새끼 친 제비와 우는 산비둘기가 시절을 보내고 맞이하는 것을 보노라면 외물과 내가 모두 잊혀짐을 알게 되리라.


062.  知成之必敗,則求成之心,不必太堅。
     지성지필패, 즉구성지심,  불필태견.

      知生之必死,則保生之道,不必過勞。
     지생지필사, 즉보생지도,  불필과로.

     이루어진 것은 반드시 무너지게 됨을 알면 이루려 하는 마음이 반드시 지나치게 굳지는 않을 것이고, 살아 있는 것은 반드시 죽는다는 사실을 알면 곧 삶을 보전하려는 길에 지나치게 애쓰지는 않게 되리라.


063.  古德云,?竹影掃階塵不動,月輪穿沼水無痕?。
     고덕운,  죽영소계진부동,  월륜천소수무흔.

      吾儒云,?水流任急,境常靜,花落雖頻,意自閒?。
     오유운,  수류임급,  경상정,  화락수빈, 의자한. 

      人常持此意,以應事接物,身心何等自在?
     인상지차의, 이응사접물,  신심하등자재.

     옛 고승이 이르기를 “대나무 그림자가 섬돌을 쓸어도 먼지가 일지 않고, 달빛이 연못을 뚫어도 물에는 흔적이 없다‘고 했고, 옛 선비가 이르기를 ’흐르는 물이 급하여도 그 언저리는 늘 조용하고, 꽃이 비록 자주 떨어져도 마음은 스스로 한가롭다‘고 하였으니, 사람이 언제나 이러한 뜻을 가지고서 사물을 대한다면 몸과 마음이 어찌 자유롭지 않으리.
 

064.  林間松韻, 石上泉聲,靜裡聽來,識天地自然鳴佩。
     임간송운, 석상천성, 정리청래,  식천지자연명패.

      草際烟光, 水心雲影,閒中觀去,見乾坤最上文章。
     초제연광, 수심운영, 한중관거,  견건곤최상문장.

     숲 사이 솔바람 소리, 바윗돌 위 샘물 소리를 고요한 속에서 듣노라면 천지의 자연스러운 움악임을 알 수 있고, 초원의 안개 빛, 물 속의 구름 그림자를 한가한 가운데 바라보노라면 천지의 제일가는 문장임을 알 수 있도다.
  

065.  眼看西晉之荊榛,猶矜白刃。身屬北邙之狐兎,尙惜黃金。
     안간서진지형진, 유긍백인.  신속북망지호토, 상석황금.

      語云,?猛獸易伏,人心難降。谿壑易滿,人心難滿? 信哉!
     어운,  맹수이복,  인심난항, 계학이만,  인심난만, 신재.

     눈으로 서진의 가시밭을 보면서도 오히려 날카로운 칼날을 자랑하고, 몸은 북망산의 여우와 토끼 차지인데도 오히려 황금을 아낀다. 옛말에 이르기를 ‘사나운 짐승은 쉽게 굴복시킬 수 있으되 사람의 마음은  항복받기가 어렵고, 산골짜기는 쉽게 메울 수 있으되 사람의 마음은 채우기가 어렵다’고 하였으니 진실로 그러하도다.


066.  心地上,無風濤,隨在皆靑山綠水。
     심지상,  무풍도, 수재개청산록수.

      性天中,有化育,觸處見魚躍鳶飛。
     성천중, 유화육,  촉처견어탁연비.

     마음에 풍파가 없으면 어디에 있으나 다 청산 녹수이고, 천성 속에 화육(化育)함이 있으면 가는 곳마다 물고기가 뛰어오르고 솔개가 날아다님을 볼 수 있으리라.
 

067.  峨冠大帶之士,
     아관대대지사,

      一旦睹輕簑小笠,飄飄然逸也,未必不動其咨嗟。
     일단도경사고립, 표표연일야,  미필부동기자차.

      長筵廣席之豪,
     장연광석지호,

      一旦遇疏簾淨几,悠悠焉靜也,未必不增其綣戀。
     일단우소렴쟁궤,  유유언정야, 미필부증기권련.

      人奈何驅以火牛,誘以風馬,而不思自適其性哉?
     인내하구이화우, 유이풍마, 이불사자적기성재.

     높은 관에 넓은 띠를 두른 선비라도, 한 번 가벼운 도롱이와 작은 삿갓을 쓰고 은일(隱逸)한 이를 보면 반드시 탄식을 발하지 않을 수 없으리라. 긴 자리에 넓은 방석의 부호라도, 한 번 성긴 발 깨끗한 책상에 유연하고 고요한 이를 만나면 반드시 그리워하는 마음을 더하지 않을 수 없으리라. 사람들은 어찌하여 화우(火牛)로써 몰아치고 풍마(風馬)로써 꼬일 줄은 알면서도 그 본성에 자적함은 생각하지 않는가.


068.  魚得水逝,而相忘乎水。鳥乘風飛,而不知有風。
     어득수서, 이상망호수,  조승풍비, 이부지유풍.

      識此,可以超物累,可以樂天機。
     식차,  가이초물루, 가이락천기.

     고기는 물을 얻어 헤엄치지만 물을 잊고, 새는 바람을 타고 날지만 바람이 있음을 알지 못한다. 이것을 안다면 가히 외물의 얽매임에서 벗어나 하늘의 작용을 즐길 수 있으리라.


069.  狐眠敗砌, 兎走荒臺,盡是當年歌舞之地。
     호면패체, 토주황대, 진시당년가무지지.

      露冷黃花, 烟迷衰草,悉屬舊時爭戰之場。
     노랭황화, 연미쇠초, 실속구시쟁전지장.

      盛衰何常? 强弱安在? 念此,令人心灰。
     성쇠하상, 강약안재,  염차, 영인심회.

     여우는 무너진 돌계단에서 잠자고 토끼는 황폐한 누대에서 달리니, 이 모두 지난날의 노래하고 춤추던 곳이로다. 이슬은 국화에 떨어져 차갑고 안개는 시든 풀 속에 어지러우니 다 옛날의 전쟁하던 마당이로다. 성하고 쇠함이 어찌 늘 같으며 강하고 약함은 어디에 있는가? 이를 생각하면 사람의 마음은 싸늘한 재와 같이 되는도다.


070.  寵辱不警,閒看庭前花開花落。
     총욕불경, 한간정전화개화락.

      去留無意,漫隨天外雲卷雲舒。
     거류무의, 만수천외운권운서.

      晴空朗月,何天不可翶翔而飛蛾獨投夜燭?
     청공랑월, 하천불가고상이비아독투야촉.

      淸泉綠卉,何物不可飮啄而鴟鶚偏嗜腐鼠?
     청천록훼, 하물불가음탁이치효편기부서.

      噫! 世之不爲飛蛾鴟鶚者幾何人哉?
     희! 세지불위비아치효자기하인재.

     영욕에 놀라지 않으며 한가로이 뜰 앞에 꽃 피고 지는 것을 바라보노라. 가고 머무름에 뜻이 없으니 무심히 하늘 밖에 구름이 모이고 흩어지는 것을 바라보노라.
 맑은 하늘 밝은 달에 어느 하늘엔들 날아오르지 못하겠는가마는 부나비는 홀로 밤 촛불에 뛰어들고, 맑은 샘 푸른 물에 어느 물건인들 먹지 못하겠는가마는 올빼미는 오로지 석은 쥐고기만을 탐내는구나. 아! 이 세상에 부나비나 올빼미 같지 않는 사람이 그 몇이나 되리오.
 

071.  纔就筏,便思舍筏,方是無事道人。
     재취벌, 변사사벌,  방시무사도인.

      若騎驢,又復覓驢,終爲不了禪師。
     약기려,  우부멱려, 종위불료선사.

겨우 뗏목에 오르자마자 곧 뗏목 버릴 생각만 한다면 바야흐로 그는 무사도인일지나, 만약 나귀를 타고도 또다시 나귀를 찾는다면 마침내 깨닫지 못한 선사가 되리라.
 

072.  權貴龍驤, 英雄虎戰,以冷眼視之,如蟻聚羶,如蠅競血。
     권귀룡양, 영웅호전, 이랭만시지,  여의취전, 여승경혈.

      是非蜂起, 得失蝟興,以冷情當之,如冶化金,如湯消雪。
     시비봉기, 득실위흥, 이랭정당지,  여야화금, 여탕소설.

     권세가들은 용처럼 다투고 영웅들은 범처럼 싸우나, 냉정한 눈으로 이를 바라보노라면 마치 개미가 비린 것에 모여들고 파리가 다투어 피를 빠는 것과 다름이 없다. 시비가 벌떼처럼 일어나고 득실이 고슴도치 털처럼 일어서도, 냉정한 마음으로 이를 맞는다면 마치 풀무가 쇠를 녹이고 끓는 물이 눈을 녹이는 것과 같으리라.


073.  覇銷於物欲,覺吾生之可哀。夷猶於性眞,覺吾生之可樂。
     기쇄어물욕,  각오생지가애. 이유어성진, 각오생지가락.

      知其可哀,則塵情立破。知其可樂,則聖境自臻。
     지기가애, 즉진정립파.  지기가락, 즉성경자진.

     물욕에 얽매이면 우리 인생이 애달픈 것임을 깨닫게 되고, 본성에 자적하면 우리 인생이 즐거운 것임을 깨닫게 되리니, 그 애달픔을 알면 곧 속세의 욕심이 당장 깨어지고, 그 즐거움을 알면 곧 성인의 경지에 저절로 도달하리로다.


074.  胸中,旣無半點物欲,已如雪消爐焰, 氷消日。
     흉중,  기무반점물욕, 여기설소려염, 빙소일.

      眼前,自有一段空明,始見月在靑天, 影在波。
     안전,  자유일단공명, 시견월재청천, 영재파.

     가슴속에 반 점의 물욕도 없으면 이미 집착은 마치 눈이 화롯불에 녹고 얼음이 햇빛에 녹는 것과 같으리라. 눈앞에 스스로 한 조각 밝은 빛이 잇으면 언제나 달이 푸른 하늘에 있고 그 그림자가 물 속에 있음을 보게 되리라.
     

075.  詩思在灞陵橋上,微吟就,林岫便已浩然。
     시사재패릉교상, 미음취,  임수변이호연.

      野興在鏡湖曲邊,獨往時,山川自相映發。
     야흥재경호곡변, 독왕시,  산천자상영발.

     시상은 패릉교 위에 있으니 나직이 읊조리매 숲과 골짜기가 문득 호연해 지고, 맑은 흥취는 경호 기슭에 있으니 홀로 걷노라면 산천이 서로 비추네.


076.  伏久者,飛必高。開先者,謝獨早。
     복구자,  비필고. 개선자, 사독조.

      知此,可以免蹭蹬之憂,可以消躁急之念。
     지차, 가이면층등지우,  가이소조급지념.

     오래 엎드린 새는 반드시 높이 날고, 먼저 핀 꽃은 홀로 일찍 떨어진다. 이것을 안다면 발을 헛디딜 근심을 면할 수 있고, 가히 그로써 조급한 마음을 없앨 수 있으리라.


077.  樹木至歸根,而後知花萼枝葉之徒榮。
     수목지귀근, 이후지화악지엽지도영.

      人事至蓋棺,而後知子女玉帛之無益。
     인사지개관, 이후지자녀옥백지무익.

     나무는 뿌리로 돌아가기에 이른 뒤에야 꽃과 가지와 잎이 헛된 영화임을 알게 되고, 사람은 관뚜껑을 덮을 때가 이른 뒤에야 자손과 재물이 무익한 것임을 알게 되리라.


078.  眞空,不空。執相非眞,破相亦非眞。
     진공, 불공,  집상비진, 파상역비진.

      問世尊,如何發付?
     문세존, 여하발부.

      ?在世,出世。徇欲是苦,絶欲亦是苦?。聽吾儕善自修持。
      재세, 출세.  순욕시고, 절욕역시고.   청오제선자수지.

     진공은 공이 아니니, 형상에 집착함도 진실이 아니고 형상을 깨뜨림도 또한 진실이 아니니라. 묻노니, 석가는 무어라 하셨는가. ‘속세에 있되 속세를 벗어나라’ 하셨으니, 욕망을 따르는 것도 괴로움이요. 욕망을 끊음도 역시 괴로움이다. 우리가 얼마나 스스로 수양을 잘하는가에 달린 것이니라.


079.  烈士讓千乘,貪夫爭一文。人品星淵也,而好名不殊好利。
     열사양천승, 탐부쟁일문.  인품성연야, 이호명불수호리.

      天子營家國,乞人號饔飱。位分霄壤也,而焦思何異焦聲?
     천자영가국,  걸인호찬식. 위분척양야,  이초사하이초성.

     열사는 천 승을 사양하고 탐욕한 사나이는 한 푼을 다투니, 그 인품은 하늘과 땅의 차이니라. 그러나 이름을 좋아하는 것 역시 이익을 좋아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도다. 천자는 국가를 경영하고 거지는 조석밥을 부르짖으니, 그 직위는 하늘과 땅의 차이니라. 그러나 마음을 애태움이 목소리를 애태우는 것과 그 무엇이 다르겠는가.
 

080.  飽諳世味,一任覆雨翻雲,總慵開眼。
     포암세미,  일임복우번운, 총용개안.

      會盡人情,隨敎呼牛喚馬,只是點頭。
    회진인정,  수교호우환마, 지시점두. 

     세상의 맛을 속속들이 알게 되면 비가 되든 구름이 되든 완전히 맡겨 둘 뿐 도무지 눈뜨는 것조차 귀찮아지고, 사람의 정을 다 깨닫게 되면 소라고 부르든 말이라고 부르든 부르는 대로 따르고 다만 머리를 끄덕일 뿐이니라.
 

081.  今人專求無念,而終不可無。
     금인전구무념, 이종불가무.

      只是前念不滯,後念不迎,
     지시전념불체, 후념불영,

      但將現在的隨緣,打發得去,自然漸漸入無。
     단장현재적수연, 타발득거,  자연점점입무.

     오늘날의 사람들은 오로지 무념을 구하기에 힘쓰지만 끝내 무념을 이루지는 못한다. 다만 지나간 생각에 구애받지 말고 앞으로의 생각을 맞아들이지 말며, 오로지 현재의 인연을 따름으로써 일을 처리해 나간다면 자연히 차츰차츰 무념의 경지로 들어갈 수 있게 되리라.


082.  意所偶會,便成佳境。物出天然,纔見眞機。
     의소우회, 변성가경.  물출천연, 재견진기.

      若加一分調停布置,趣味便減矣。
     약가일분조정포치, 취미변감의.

      白氏云,?意隨無事適,風逐自然淸?,有味哉! 其言之也!
     백씨운,  의수무사적,  풍축자연청,  유미재!  기언지야

     우연히 뜻에 맞아들어야 문득 아름다운 경지를 이루고, 자연스럽게 나온 것이라야 비로소 참다운 기틀을 보게 된다. 만약에 조금이라도 손길을 가하여 새로 늘어놓으면 그 멋은 문득 줄어들리라. 백낙천이 말하기를 ‘뜻은 일이 없을 때 가장 즐겁고, 바람은 자연스럽게 볼 때 가장 맑다’고 하였으니 진시로 의미 있도다. 그 말이여!
  

083.  性天澄徹,卽饑喰渴飮,無非康濟身心。
     성천징철,  즉기식갈음, 무비강제신심.

      心地沈迷,縱談禪演偈,總是播弄精魂。
     심지침미, 종담선연게,  총시파롱정혼.

     천성이 맑으면 곧 배고플 때 밥 먹고 목마를 때 물 마시면서도 심신을 편하게 가질 수 있다. 그러나 마음이 물욕에 잠겨 어지러우면 비록 선을 이야기하고 게송을 풀이하더라도 모두 정신을 희롱할 뿐이니라.
 

084.  人心有個眞景,非絲非竹而自恬愉,不烟不茗而自淸芬。
     인심유개진경,  비사비죽이자념유, 불연불명이자청분.

      須念淨境空,慮忘形釋,纔得以游衍其中。
     수념정경공, 여망형석,  재득이유연기중.

     사람의 마음에 하나의 진실한 경지가 있으니, 거문고와 피리가 아니더라도 스스로 편안하고 즐거우며 향과 차가 아니더라도 스스로 맑고 향기롭구나. 모름지기 생각을 깨끗하게 하고 환경에 얽매이지 않으며 잡념을 잊고 형체조차 잊어버려야 곧 그 가운데에서 노닐 수 있으리라.


085.  金自鑛出,玉從石生。非幻,無以求眞。
     금자광출, 옥종석생.  비환, 무이구진.

      道得酒中,仙遇花裡。雖雅,不能離俗。
     도득주중, 선우화리.  수아, 불능이곡.

     금은 광석에서 나오고 옥은 돌에서 나오니, 환상이 아니면 진리를 구할 수 없다. 도를 술 가운데서 열고 신선을 꽃 속에서 만남은 비록 운치는 있으되 속됨을 벗어날 수 없으리라.


086.  天地中萬物,人倫中萬情,世界中萬事,
     천지중만물,  인륜중만정, 세계중만사.

      以俗眼觀,紛紛各異。以道眼觀,種種是常。
     이속안관, 분분각이.  이도안관, 종종시상.

      何煩分別? 何用取捨?
     하번분별  하용취사

     천지 가운데의  만물과 인륜 가운데의 온갖 정과 세계 가운데의 모든 일은, 속된 눈으로 보면 어지러이 각각 다르지만 깨달은 눈으로 보면 모두가 한결 같으니, 어찌 번거롭게 구별하며, 어찌 취하고 버릴 것이 있겠는가.


087.  神酣,布被窩中,得天地冲和之氣。
     신감, 포피와중,  득천지충화지기.

      味足,藜羹飯後,識人生澹泊之眞。
     미족, 여갱반후,  식인생담박지진.

     정신이 왕성하면 베 이불을 덮고 좁은 방 가운데에 있어도 천지의 온화한 기운을 얻으며, 입맛이 넉넉하면 명아주국에 밥을 먹은 후에도 인생의 담백한 참 맛을 알지니라.


088.  纏脫只在自心。心了則屠肆糟店,居然淨土。
     재탈지재자심. 심료즉도사조점,  거연정토.

      不然,縱一琴一鶴, 一花一卉,嗜好雖淸,魔障終在。
     불연, 종일금일학, 일화일훼,  기호수청,  마장종재.

      語云,?能休,塵境爲眞境。未了,僧家是俗家?。信夫!
     어운,  능휴, 진경위진경.  미료, 승가시속가    신부

     속박과 해탈은 자신의 마음 속에 있으니, 마음에 깨달음을 얻으면 푸줏간과 술집도 그대로 극락이 되리로다. 그렇지 않으면 비록 거문고와 학을 벗삼고 꽃과 풀을 가꾸어, 그 좋아함이 비록 맑다 하더라도 악마의 방해는 언제나 있으리라. 옛말에 이르기를 ‘능히 그만둘 수 있으면 속세도 극락이 될 것이요, 깨닫지 못하면 절간도 속세가 되리라’ 하였으니, 진실한 말이로다.


089.  斗室中,萬慮都捐,說甚畵棟飛雲, 珠簾捲雨。
     두실중, 만려도연,  설심화동비운, 주렴권우.

      三杯後,一眞自得,唯知素琴橫月, 短笛吟風。
     삼불후, 일진자득,  유지소금횡월, 단적음풍.

     좋은 방 가운데서도 모든 걱정을 다 버리면, 어찌 ‘단청기둥에 구름이 날고 주렴을 걷고 비를 본다’는 이야기를 말할 게 있으랴, 석 잔 술을 마신 후에 하나의 진리를 깨닫는다면 오직 거문고를 달 아래 비껴 타고 단적을 바람에 읊조리는 것을 알겠도다.
 

090.  萬籟寂廖中,忽聞一鳥弄聲,便喚起許多幽趣。
     만뢰적료중, 홀문일조롱성,  변환기허다유취.

      萬卉摧剝後,忽見一枝擢秀,便觸動無限生機。
     만훼최박후, 홀견일지탁수,  변촉동무한생기.

      可見性天未常枯槁, 機神最宜觸發。
     가견성천미상고고, 기신최의촉발.

     만물의 소리  고요한 가운데 홀연히 한 마리 새소리를 들으면 문득 온갖 그윽한 멋을 불러일으키고, 모든 초목이 시들어 떨어진 후에 홀연히 한 줄기 빼어난 꽃을 보면 문득 무한한 생기가 움직인다. 가히 천성은 언제나 메말라 있지 않으며 정신은 사물에 닿아서 발동하는 것임을 알 수 있도다.


091.  白氏云,?不如放身心,冥然任天造?,
     백씨운,  불여방신심,  명연임천조

      晁氏云,?不如收身心,凝然歸寂定?。
     조씨운   불여수신심, 으연귀적정.

      放者,流爲猖狂。收者,入於枯寂。
     방자, 류위창왕. 수자,  입어고적.

      唯善操身心的,杷柄在手,收放自如。
     유선조신심적, 파병재수, 수방자여.

    백낙천은 말하기를 ‘몸과 마음을 다 놓아 버린 다음 눈감고 되는 대로 맡기는 것만 못하다’고 하였고, 조보지는 말하기를 ‘몸과 마음을 다 거두어서 움직이지 않고 정적으로 돌아감만 못하다’고 하였으되, 놓아 버리면 흘러넘어져서 미치광이처럼 되고, 거두어 두면 메마른 적막함에 들어갈 뿐이로다. 오직 몸과 마음을 잘 가누자면 그 자루를 손에 쥐고서 거두고 놓음을 마음대로 해야 할 것이니라.


092.  當雪夜月天,心境便爾澄徹。遇春風和氣,意界亦自冲融。
     당설야월천,  심경변이징철. 우춘풍화기, 의개역자충융.

      造化人心,混合無間。
     조화인심, 혼합무간.

     눈 내린 밤에 달 밝은 하늘을 대하면 마음이 문득 맑아지고, 봄바람 온화한 기운을 만나면 뜻이 또한 저절로 부드러워지니, 자연의 조화와 사람의 마음이 한데 어울려 간격이 없도다.


093.  文以拙進,道以拙成。一拙字,有無限意味。
     문이졸진,  도이졸성. 일졸자, 유무한의미.

      如桃源犬吠, 桑間鷄鳴,何等淳龐?
     여조원견폐, 상간계명, 하등순룡.

      至於寒潭之月, 古木之鴉,工巧中,便覺有衰颯氣象矣。
     지어한담지월, 고목지아,  공교중, 변각유쇠삽기상의.

     글은 졸함으로써 나아지고 도는 졸함으로써 이루어지니, 이 졸자 한 자에 무한한 뜻이 있다. 만약 ‘복사꽃 핀 마을에 개가 짖고, 뽕나무 사이에 닭이 운다’고 하면 그 얼마나 순박한가. 그러나 ‘차가운 연못에 달이 밝고 고목에 까마귀 운다’는 데에 이르면, 비록 교묘하기는 하지만 문득 쓸쓸한 기상이 있음을 느끼게 될 뿐이니라.


094.  以我轉物者,得固不喜,失亦不憂,大地盡屬逍遙。
     이아전물자, 득고불희. 실역불우,  대지진속소요.

      以物役我者,逆固生憎,順亦生愛,一毛便生纏縛。
     이물역아자,  역고생증, 순역생애,  일모변생전박.

     내가 사물을 부리는 사람은 얻어도 분래 기뻐하지 않고 잃어도 또한 근심하지 않으니 대지가 모두 그의 노니는 곳이니라. 물건으로써 나를 부리는 사람은 역경을 미워하고 순경에 애착을 가지니 털끝만한 일에도 얽매이느니라.


095.  理寂則事寂。遺事執理者,似去影留形。
     이적즉사적.  견사집리자, 사거영류형.

      心空則境空。去境存心者,如聚羶却蚋。
     심공즉경공.  거경존심자, 여취전각예.

     원리가 없으면 현상도 없으니, 현상을 버리고 원리만 잡는 것은 그림자를 없애고 형체만 머무르려 함과 같고, 마음이 없으면 외물도 없으니, 외물을 없애고 마음만 보존하려는 것은 비린 것을 모아 놓고 쉬파리를 쫓으려는 것과 같으니라.


096.  幽人淸事,總在自適。
     유인청사, 재재자적.

      故酒以不勸爲歡,棋以不爭爲勝,
     고주이불권위환,  기이부쟁위승.

      笛以無腔爲適,琴以無絃爲高,
     적이무강위적, 금이무현위고.

      會以不期約爲眞率,客以不迎送爲坦夷。
     회의불기약위진솔, 객이불영송위탄이.

      若一牽文泥跡,便落塵世苦海矣。
     약일견문니적,  변락진세고해의.

     은자의 맑은 흥취는  모두가 자적하는 데에 있다. 그러므로 술은 권하지 않는 것으로 즐거움을 삼고, 바둑은 다투지 않는 것으로 이김을 삼고, 피리는 구멍이 없는 것으로 적당함을 삼고, 거문고는 줄이 없는 것으로 고상함을 삼고, 만남은 기약하지 않는 것으로 참됨을 삼고, 손님은 마중하거나 전송하지 않는 것으로 편안함을 삼는 도다. 만약 일단 겉치레에 사로잡히고 형식에 얽매인다면 문득 속세의 고해에 떨어지고 말리라.


097.  試思未生之前,有何象貌,又思旣死之後,作何景色,
     시사미생지전, 유하상모,  우사기사지후,  작하경색.

      則萬念灰冷,一性寂然,自可超物外遊象先。
     즉만념회랭, 일성적연,  자가초물외유상선.

     시험삼아 태어나기 이전 내 몸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었을까 생각해 보고, 또한 죽은 후에는 어떤 모습이 될까를 생각해 보라. 그러면 온갖 생각이 재처럼 싸늘해지고 본성은 고요해져서, 가히 스스로 물외에 초연하며 절대경에 놀 수 있으리라.


098.  遇病而後思强之爲寶,處亂而後思平之爲福,非蚤智也。
     우병이후사강지위보, 처란이후사평지위복,  비조지야.

      倖福而先知其爲禍之本,貪生而先知其爲死之因,其卓見乎!
     행복이선지기위화지본, 탐생이선지기위사지인,  기탁견호

     병이 든 뒤에야 건강의 보배로움을 생각하고 어지러움에 처한 뒤에야 평화의 복됨을 생각함은 빠른 지혜가 아니다. 요행을 바라는 것이 재앙의 근본이 됨을 알고, 탐욕이 생겨남이 사망의 원인이 됨을 미리 안다면 그것은 뛰어난 식견일지니라.


099.  優人傳粉調咮,效姸醜於豪端,俄而歌殘場罷,姸醜何存?
     우인부분조주,  효연추어호단, 아이가잔장파, 연추하존

      奕者爭先競後,較雌雄於著子,俄而局盡子收,雌雄安在?
     혁자쟁선경후, 교자웅어착자,  아이국진자수,  자웅안재

     배우는 분 바르고 연지 찍어 붓끝으로 아름다움과 추함을 그려내지만, 이윽고 노래가 끝나고 막이 내리고 나면 그 아름다움과 추함이 어디에 있는가, 바둑 두는 사람은 앞과 뒤를 다투어 바둑돌로 승패를 비교하지만, 이윽고 판이 끝나고 돌을 거두면 그 승패는 어디에 있는가.


100.  風花之瀟洒, 雪月之空淸,唯靜者爲之主。
     풍화지소쇄, 설월지공청,  유정자위지주.

      水木之榮枯, 竹石之消長,獨閒者操其權。
     수목지영고, 죽석지소장, 독한자조기권.

     바람과 꽃의 산뜻함, 눈과 달의 밝고 깨끗함은 오직 고요한 사람만이 이들의 주인이 될 수 있고, 물과 나무의 번성함과 메마름, 바위 사이 대나무의 자람과 사라짐은 홀로 한가한 사람만이 그 권리를 쥘 수 있도다.


101.  田夫野叟,語以黃鷄白酒,則欣然喜。問以鼎食,則不知。
     전부야수, 어이황계백주,  즉흔연희. 문이정식,  즉부지.  

      語以縕袍短褐,則油然樂。問以袞服,則不識。
     어이온포단갈, 즉유연락.  문이곤복, 즉불식.

      其天全,故其欲淡。此是人生第一個境界。
     기천전, 고기욕담.  차시인생제일개경계.

     시골 노인들은 닭고기 안주에 막걸리를 이야기하면 곧 흔연히 기뻐하지만 고급요리를 물으면 알지 못하고, 무명 두루마기와 베잠방이를 이야기하면 곧 유연히 즐거워하지만 비단옷을 물으면 이를 모른다. 그 천성이 온전하기 때문에 그 욕심이 담백한 것이니, 이야말로 인생의 첫째가는 경계니라.


102.  心無其心,何有於觀? 釋氏曰?觀心?者,重增其障。
     심무기심, 하유어관  석씨왈 관심자,   중증기장.

      物本一物,何待於齊? 莊生曰?齊物?者,自剖其同。
     물본일물, 하대어제  장생왈 제물자,   자부기동.

     다음에 망심이 없으니, 무슨 관심이 필요하랴. 석가가 말한 ‘관심’이란 그 장애를 더할 뿐이다. 사물은 본래 한 물건이니 가지런함을 기다릴 필요가 어디 있으랴. 장자가 말한 ‘제물’이란 스스로 같은 것을 갈라놓는 것이니라.


103.  笙歌正濃處,便自拂衣長往,羨達人撤手懸崖。
     생가정농처, 변자불의장왕,  선달인살수현애.

      更漏已殘時,猶然夜行不休,咲俗士沈身苦海。
     경루이잔시, 유연야행불휴,  소속사침신고해.

     피리와 노래 소리 한창 무르익을 때에 문득 스스로 옷자락을 떨치고 멀리 가 버림은 마치 달인이 손을 놓고 벼랑을 올라가는 것과 같아서 부러우나, 이미 시간이 다한 때에 오히려 쉬지 않고 발길을 가는 것은 마치 속인이 고해에 몸을 담그는 것과 같아서 우스울 뿐이로다.


104.  把握未定,宜絶迹塵囂,
     파악미정, 의절역진효.

      使此心不見可欲而不亂,以澄吾靜體。
     사차심불견가욕이불란, 이징오정체.

      操持旣堅,又當混跡風塵,
     조지기견, 우당흔적풍진,

      使此心見可欲而亦不亂,以養吾圓機。
     사차심견가욕이역불란, 이양오원기.

     마음을 아직 붙들지 못했다면 마땅히 속세에서 발길을 끊으라. 이 마음으로 하여금 욕심내는 것을 보지 못하게 하고 어지럽게 않게 하라. 그로써 내 조용한 마음의 본체를 맑게 하여야 하느니라.
  마음을 이미 굳게 잡았거든 다시 마땅히 속세에 발길을 섞어, 마음으로 하여금 욕심나는 것을 보아도 또한 어지럽지 않게 하라. 그로써 내 마음의 원만한 작용을 길러야 할지니라.
 

105.  喜寂厭喧者,往往避人以求靜。
     희적염훤자.  왕왕피인이구정.

      不知意在無人,便成我相,心着於靜,便是動根,
     부지의재무인,  변성아상, 심착어정, 변시동근,

      如何到得人我一視, 動靜兩忘的境界?
     여하도득인아일시, 동정량망적경계.

     고요함을 좋아하고 시끄러움을 싫어하는 사람은 흔히 사람을 피함으로써 조용함을 구하나, 뜻이 사람 없음에 있다면 이는 곧 자아에 집착함이 되고, 마음이 고요함에 집착하면 이것이 곧 움직임의 근본임을 모르고 있음이다. 어찌 남과 나를 하나로 보고 움직임과 고요함을 다 잊어버리는 경지에 도달할 수 있으랴.


106.  山居,胸次淸洒,觸物皆有佳思。
     산거,  흉차청쇄, 촉물개유가사.

      見孤雲野鶴,而起超絶之想,遇石澗流泉,而動澡雪之思,
     견고운야학, 이기초절지상,  우석간류천,  이동조설지사.  

      撫老檜寒梅,而勁節挺立,侶沙鷗麋鹿,而機心頓忘。
     무로회한매,  이경절정립, 여사구마록, 이기심돈망.

      若一走入塵寰,無論物不相關,卽此身亦屬贅旒矣。
     약일주입진환, 무론물불상관,  즉차신역속췌류의.

     산중에 살면 가슴 속이 맑고 시원하니 접촉하는 사물마다 모두 아름다운 생각이 든다. 외로운 구름과 들의 학을 보면 속세를 초월한 듯하고, 바위틈에 흐르는 샘물을 만나면 속된 것들을 씻어 주는 듯 하며, 늙은 전나무와 차가운 매화를 어루만지면 굳센 절개가 꿋꿋이 세워지고, 모랫벌 갈매기와 사슴들을 벗삼으면 마음의 동요를 문득 잊게 된다. 그러나 만약 한 번 속세로 뛰어들게 되면 외물과 접촉하지 않는다 할지라도 이 몸은 역시 쓸데 없는 존재가 되고 말리라. 
  

107.  興逐時來,芳草中,撤履閑行,野鳥,忘機時作伴。
     흥축시래, 방초중,  철리한행, 야조, 망기시작반.

      景與心會,落花下,披襟兀坐,白雲,無語漫相留。
     경여심회, 낙화하,  피금올좌,  백운,  무어만상류.

     흥이 때를 따라 일어나 아름다운 풀밭 사이를 맨발로 한가로이 거니로라면 들새도 마음놓고 때때로 벗이 되고, 경치가 마음에 들어 떨어지는 꽃 아래 옷깃을 헤치고 우두커니 낮으면 흰 구름도 말없이 다가와 한가롭게 머무네.


108.  人生福境禍區,皆念想造成。
     인생복경화구,  개념상조성.

      故釋氏云,?利欲熾然,卽是火坑。貪愛沈溺,便爲苦海。
     고석씨운   이욕치연, 즉시화갱,  탐애침닉, 변위고해.

      一念淸淨,熱焰成池。一念警覺,船登彼岸?。
     일념청정, 열염성지,  일념경각, 선등피안.

      念頭稍異,境界頓殊,可不愼哉?
     염두초이, 경계돈수,  가불신재

     인생의 화복은 모두 마음에서 만들어진다. 그러므로 석가가 말하기를 ‘욕심이 불길같이 타오르면 이것이 곧 불구덩이 이고, 탐욕에 빠지면 그것이 곧 고해로되 한 생각이 맑고 깨끗하면 세찬 불길이 연못이 되고, 한 생각을 깨달으면 배는 저 언덕에 오른다’고 하였다. 이렇듯 생각이 조금만 달라져도 경계는 크게 달라지는 법이니 어찌 삼가지 않을 수 있으랴.
 

109.  繩鋸木斷,水滴石穿。學道者,須加力索。
     승거목단, 수적석천.  학도자,  수가력색.

      水到渠成,瓜熟蒂落。得道者,一任天機。
     수도거성,  과열체락. 득도자, 일임천기.

     새끼줄로 톱질하여도 나무를 자르고 물방울도 돌을 뚫으니, 도를 배우는 사람은 모름지기 더욱 힘써 구하여야 한다. 물이 모이면 시냇물을 이루고 참외도 익으면 꼭지가 떨어지니 도를 얻으려는 사람은 온전히 하늘의 작용에 내맡겨야 하느니라.


110.  機息時,便有月到風來,不必苦海人世。
     기식시, 변유월도풍래,  불필고해인세.

      心遠處,自無車塵馬迹,何須痼疾丘山?
     심원처,  자무차진마적, 하수고질구산.

     마음의 작용을 잠재우면 문득 달 뜨고 바람도 불어오니 인간 세상이 반드시 고해만은 아니로다. 마음이 멀찍한 곳에 있으면 절로 수레의 먼지와 말발굽 소리가 없으니 어찌 자연을 그리워함이 병될 것까지야 있으랴!
 

111.  草木纔零落,便露萌穎於根柢。
     초목재영락, 변로맹영어근저. 

      時序雖凝寒,終回陽氣於飛灰。
     시서수응한, 종회양기어비회. 

      肅殺之中,生生之意常爲之主,卽是可以見天地之心。
     숙살지중, 생생지의상위지주,  즉시가이견천지지심.

     초목은 시들어 떨어지면 곧 다시 뿌리 밑에 새싹이 트고, 계절은 비록 얼어붙는 추위라 해도 마침내 날아오는 재 속에 봄기운이 돌아온다. 만물을 죽이는 기운 가운데도 자라나게 하는 뜻이 늘 주가 되니, 가히 그로써 천지의 마음을 볼 수 있느니라.

112.  雨餘,觀山色,景象便覺新姸。
     우여,  관산색, 경상변각신연.

      夜靜,聽鐘聲,音響尤爲淸越。
     야정, 청종성,  음향우위청월.

     비 개인 뒤 산빛을 보면 경치가 문득 새로이 고움을 깨닫고, 밤이 고요할 때 종소리를 들으면 그 울림은 더욱 맑고도 높구나.


113.  登高,使人心曠。臨流,使人意遠。
     등고, 사인심광, 임류,  사인의원.

      讀書於雨雪之夜,使人神淸。舒嘯於丘阜之巓,使人興邁。
     독서어우설지야, 사인신청.  서수어구부지전. 사인흥매.

     높은 곳에 오르면 사람의 마음이 넓어지고 흐르는 물에 다다르면 사람의 뜻이 유원해지느니라. 눈비 오는 밤에 책을 읽으면 사람의 정신이 맑아지고 언덕 위에서 천천히 휘파람을 불면 사람의 흥취가 구매해지느니라.


114.  心曠,則萬鍾如瓦缶。
     심광,  즉만종여와부.

      心隘,則一髮似車輪。
     심애, 즉일발사거륜.

     마음이 넓으면 만 종의 녹도 질항아리와 같고, 마음이 좁으면 터럭 하나도 수레바퀴와 같으니라.


115.  無風月花柳,不成造化。無情欲嗜好,不成心體。
     무풍월화류, 불성조화,  무정욕기호, 불성심체.

      只以我轉物,不以物役我,則嗜欲莫非天機,塵情 卽是理境矣。
     지이아전물, 불이물역아,  즉기욕막비천기,  진정 즉시리경의.

     버람과 달과 꽃과 버들이 없으면 천지의 조화는 이루어지지 않고, 정욕과 기호가 없으면 마음의 본체도 이루어지지 않는다. 다만 내가 주체가 되어외물을 부리고 외물의 지배를 받지 않는다면, 곧 정욕과 기호도 하늘의 기미 아님이 없고, 세속적인 정도 곧 진리의 경계가 되느니라.


116.  就一身了一身者,方能以萬物付萬物。
     취일신료일신자,  방능이만물부만물.

      還天下於天下者,方能出世間於世間。
     환천하어천하자, 방능출세간어세간.

     자기 한 몸에 대하여 그 한 몸을 온전히 깨달은 사람은 만물에게 맡길 수 있고, 천하를 천하에 돌려주는 사람은 능히 속세에서 속세를 벗어날 수 있으니라.


117.  人生太閒,則別念竊生。太忙,則眞性不現。
     인생태한, 즉별념절생.  태망, 즉진성불현.

      故士君子不可不抱身心之憂,亦不可不耽風月之趣。
     고사군자불가불포신심지우, 역불가불탐풍월지취.

     사람은 너무 한가하면 다른 생각이 슬며시 일어나고, 너무 바쁘면 참다운 본성이 나타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군자는 몸과 마음에 근심을 지니지 않을 수 없고, 풍월의 멋 또한 즐기지 않을 수 없느니라.


118.  人心多從動處失眞。
     인심다종동처실진.

      若一念不生, 澄然靜坐,
     약일념불생, 징연정좌,

      雲興而悠然共逝,雨滴而冷然俱淸,
     운흥이유연공서,  우적이랭연구청,

      鳥啼而欣然有會,花落而瀟然自得。
     조제이흔연유회, 화락이소연자득.

      何地非眞境? 何物非眞機?
     하지비진경  하물비진기
 
     사람의 마음은 흔히 동요함으로써 진심을 잃어버린다. 만약 한 가지 생각도 일어나지 않아 잔잔하게 정좌하게 된다면, 구름이 일어나면 유장하게 함께 가고, 빗방울이 떨어지면 서늘하게 함께 맑아지며, 새가 지저귀면 즐거이 마음에 맞이하고, 꽃이 지면 소연히 깨달을 것이니 어디인들 진경이 아니며, 무엇엔들 진기가 없겠는가.
 

119.  子生而母危,鏹積而盜窺,何喜非憂也?
     자생이모위, 강적이도규,  하희비우야

      貧可以節用,病可以保身,何憂非喜也?
     빈가이절용,  병가이보신, 하우비희야

      故達人當順逆一視,而欣戚兩忘。
     고달인당순역일시, 이흔척량망.

     자식이 태어날 때는 그 어머니가 위험하고 돈자루가 쌓이게 되면 도둑이 엿보니 어느 기회인들 슬픔이 아니랴, 가난하면 비용을 절약해 쓰고 병이 들면 몸을 보양하니 어느 슬픔인들 기쁨이 아니랴, 그러므로 달인은 당연히 순경과 역경을 하나로 보며 기쁨과 슬픔을 모두 잊어버리느니라.


120.  耳根似颷谷投響。過而不留,則是非俱謝。
     이근사표곡투향, 과이불류,  즉시비구사.

      心境如月池浸色。空而不著,則物我兩忘。
     심경여월지침색, 공이불착,  즉물아량망.

     귀는 마치 회오리바람이 골짜기에 소리를 울리는 것 같아서 지나간 뒤 메아리가 머물지 않게 하면 시비도 함께 물러가리라. 마음은 마치 밝은 달이 연못에 빛을 비추는 것과 같아서, 텅 비어 집착하지 않으면 곧 물아를 모두 잊으리라.


121.  世人爲榮利纏縛,動曰?塵世苦海?,
     세인위영리전박,  동왈 진세고해   

      不知雲白山靑, 川行石立, 花迎鳥笑, 谷答樵謳。
     부지운백산청, 천행석립, 화영조소, 곡답초구.

      世亦不塵,海亦不苦。彼自塵苦其心爾。
     세역부진, 해역불고.  피자진고기심이.

     세상 사람들은 영화와 명리에 얽매여 걸핏하면 티끌세상이니, 고생바다니 하고 말한다, 그들은 구름 피고 산은 푸르며, 냇물 흐르고 바위 우뚝하며, 꽃 피고 새가 지저귀며 골짜기가 화답하고 나무꾼이 노래하는 것을 모르나니, 세상은 또한 티끌이 아니며 고해도 아니로다. 디민 저들이 스스로 그 마음을 티끌과 고해로 만들 따름이니라.


122.  花看半開,酒飮微醉,此中大有佳趣。
     화간반개,  주음미취, 차중대유가취.

      若至爛漫酕醄,便成惡境矣。履盈滿者,宜思之。
     약지난만모도, 변성안경의,  이영만자, 의사지.
     꽃은 밤만 피었을 때 보고 술은 조금만 취하도록 마시면 그 가운데 무한히 아름다운 멋이 잇다. 만약 꽃이 활짝 피고 술이 흠뻑 취하는 데까지 이르면 추악한 경지가 되니, 가득한 상태에 있는 사람은 마땅히 이를 생각해야 하리라.


123.  山肴不受世間灌漑,野禽不受世間豢養,其味皆香而且冽。
     산효불수세간관개, 야금불수세간환양,  기미개향이차렬.

      吾人能不爲世法所點染,其臭味不逈然別乎?
     오인능불위세법소점염,  기취미불형연별호

     산나물은 세상 사람들이 가꾸지 않아도 결코 절로 자라고, 들새는 기르지 않아도 절로 자라나니, 그 맛은 다 향기롭고도 맑다. 우리도 능히 세상 법도에 물들지 않는다면 그 품격이 속세와 멀리 떨어져 각별하지 않겠는가.
 

124.  栽花種竹, 玩鶴觀魚,又要有段自得處。
     재화종죽, 완학관어, 우요유단자득처.

      若徒留連光景, 玩弄物華,亦吾儒之口耳, 釋氏之頑空而已,
     약도류련광경, 완롱물화,  역오유지구이, 석씨지완공이이.

      有何佳趣?
     유하가취

     꽃을 가꾸고 대나무를 심으며 학을 즐기고 물고기를 바라보더라도, 모름지기 일단의 깨닫는 것이 있어야 한다. 만약 헛되이 그 광경에 빠져서 물건의 화려함만을 즐긴다면, 또한 우리 유가의 구이지학이요, 불가의 완공일 뿐이니, 어찌 아름다운 벗이 있겠는가.
     
  * 구이지학; 마음으로 깨닫지 못하고 귀로 들은 것을 그저 입으로만 주워                섬기는 학문
  * 완공; 세상만물을 일체 공으로 보는 소승불교의 입장
125.  山林之士,淸苦而逸趣自饒。農野之夫,鄙略而天眞渾具。
     산림지사,  청고이일취자요. 농야지부, 비략이천진흔구.

      若一失身市井,不若轉死溝壑, 神骨猶淸。
     약일실신시정조괴,  불약전사구학, 신골유청.

     산림의 신비는 청빈하게 살지만 높은 멋이 스스로 넉넉하고, 들의 농부는 거칠고 소박하지만 천진 스러움이 다 갖추어져 있도다. 만약 한 번 몸을 잃어 저자거리의 거간꾼이 된다면, 차라리 구렁텅이에 굴러 떨어져 죽을지언정 심신이 오히려 깨끗함만 같지 못하리라.


126.  非分之福, 無故之獲,非造物之釣餌,卽人世之機阱。
     비분지복, 무고지획, 비조물지조이, 즉인세지기정.

      此處,著眼不高,鮮不墮彼術中矣。
     차처, 착안불고,  선불타피술중의.

     분수에 맞지 않는 복과 까닭 없는 얼음은 조물주의 낚싯밥이 아니면 곧 인간 세상의 함정이다. 이런 곳에서 눈을 높이 두지 않으면 그 술책에 빠지지 않기가 어려우니라.


127.  人生原是一傀儡,只要根蒂在手。
     인생원시일괴뢰  지요근체재수.

      一線不亂,卷舒自由, 行止在我。
     일선불란, 권서자유, 행지재아.

      一毫不受他人提掇,便超出此場中矣。
     일호불수타인제철,  변초출차장중의.

     인생은 원래 한갓 꼭두각시 놀음이니, 모름지기 그 밑뿌리를 손에 쥐고 있어야 한다. 한 가닥의 실도 흐트러지지 않아서 감고 푸는 것이 자유로와야 가고 멈추는 것이 나에게 있게 되나니, 털끝만큼도 남들의 간섭을 받지 않아야 문득 이 마당에서 벗어날 수 있으리라.


128.  一事起,則一害生。故天下常以無事爲福。
     일사기, 즉일해생.  고천하상이무사위복.

      讀前人詩云,?勸君莫話封侯事,一將功成萬骨枯?。
     독전인시운   건군막화봉후사, 일장공성만골고

      又云,?天下常令萬事平,匣中不惜千年死?。
     우운  천하상령만사평   갑중불석천년사

      雖有雄心猛氣,不覺化爲氷霰矣。
     수유웅심맹기, 불각화위빙선의

     한 가지 이로운 일이 일어나면 곧 한 가지 해로운 일이 생긴다. 그러므로 천하는 언제나 무사한 것으로 복을 삼는다. 옛사람의 시를 읽어보니 이르기를 ‘그대에게 권하노니 제후에 봉해지는 일을 이야기하지 말라, 한 장수가 공을 이룸에는 만 사람의 뼈가 마른다’고 하였고, 또 이르기를, ‘천하가 항상 태평하기만 한다면 칼은 천 년을 갑 속에서 썩어도 아깝지 않으리’라고 하였다, 비록 웅장한 마음과 용맹한 기상이 있을지라도 모르는 사이에 얼음과 눈이 되어 사라지리라.


129.  淫奔之婦,矯而爲尼。熱中之人,激而入道。
     음분지부, 교이위니.  열중지인, 격이입도.

      淸淨之門,常爲婬邪淵藪也如此。
     청정지문, 상위음사연수야여차.

     음탕한 아낙이 극단에 이르면 여승이 되기도 하고, 일에 열중하던 사람도 격해지면 불도에 들어가니, 깨끗한 불문이 언제나 음사의 소굴이 됨이 이와 같도다.


130.  波浪兼天,舟中不知懼,而舟外者寒心。
     파랑겸천,  주중부지구, 이주외자한심.

      猖狂罵坐,席上不知警,而席外者咋舌。
     창왕매좌, 석상부지경, 이석외자색설

      故君子,身雖在事中,心要超事外也。
     고군자, 신수재사중,  심요초사외야.

     물결이 하늘까지 치솟을 때 배 안에 있는 사람들은 두려움을 모르지만 배 밖에 있는 사람들은 가슴이 서늘하고, 미치광이가 좌중을 꾸짖을 때 그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경계할 줄 모르지만 자리 밖의 사람들은 혀를 차는 법이다. 그러므로 군자는 몸이 비록 일 가운데에 있을지라도 마음은 모름지기 일 밖에 초월해 있어야 하느니라.


131.  人生減省一分,便超脫一分。
     인생감생일분, 변초탈일분.

      如交遊減,便免紛擾。言語減,便寡愆尤。
     여교유감,  변면분요. 언어감,  변과건우.

      思慮減,則精神不耗。聰明減,則混沌可完。
     사려감,  즉정신불모. 총명감, 즉혼돈가완.

      彼不求日減而求日增者,眞桎梏此生哉!
     피불구일감이구일증자,  진질곡차생재.

     인생은 일 분을 덜면 곧 일 분을 초월한다. 만약 사귐을 덜면 곧 시끄러움을 면하고, 말을 덜면 곧 허물이 적어지고, 생각을 덜면 곧 정신이 소모되지 않고, 총명을 덜면 곧 본성을 완성할 수 있을 것이다.



132.  天運之寒暑易避,人生之炎凉難除。
     천운지한서이피, 인생지염량난제.

      人生之炎凉易除,吾心之氷炭難去。
     인생지염량이제, 오심지빙탄난거.

      去得此中之氷炭,則萬腔皆和氣,自隨地有春風矣。
     거득차중지빙탄,  즉만강개화기, 자수지유춘풍의.

     천지 운행의 추위와 더위는 피하기 쉬워도 인간 세상의 뜨거움과 차가움은 제거하기 어렵고, 인간 세상의 뜨거움과 차가움은 제거하기 쉬워도 내 마음의 얼음과 숯불은 버리기 어렵구나, 이 마음 속의 숯불과 얼음을 버릴 수만 있다면 가슴은 화기가 가득하여 가는 곳마다 저절로 봅바람이 일어나리라.
  

133.  茶不求精,而壺亦不燥。酒不求冽,而樽亦不空。
     차불구정, 이호역부조.  주불구렬, 이준역불공.

      素琴無絃,而常調。短笛無腔,而自適。
     소금무현,  이상조. 단적무강, 이자적.

      終難超越羲皇,亦可匹儔稽阮。
     종난초월희황, 역가필주혜완.

     차는 좋은 것만을 구하려 하지 않으니 찻주전자 또한 마르는 일이 없고, 술은 향기로운 것만을 구하려 하지 않으니 술동이 또한 비어 있는 일이 없구나. 장식 없는 거문고는 줄이 없어도 항상 고르고, 짧은 피리는 구멍이 없어도 스스로 즐거우니, 비록 복희씨는 초월하기 어렵지만 가히 죽립칠현과는 벗 할 수 있으리라.


134.  釋氏隨緣, 吾儒素位四字,是渡海的浮囊。
     석씨수연, 오유소위사자, 시도해적부낭.

      蓋世路茫茫,
     개세로망망,

      一念求全,則萬緖紛起。隨寓而安,則無入不得矣。
     일념구전, 죽만서분기,  수우이안, 즉무입부득의.

     불가의 ‘수연(隨緣)’과 유가의 ‘소위(素位)’, 이 네 글자는 곧 바다를 건너가는 부낭(浮囊)이다. 대개 세상길은 아득하여, 일념으로 완전함을 구하면 곧 만 갈래 마음의 실마리가 어지러이 일어나고, 처지에 따라서 편하게 살면 곧 이른 곳마다 안심입명(安心立命)을 얻지 못함이 없으리라.

                                                           <<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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