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화 쉽게찿기
야생화를 알아도 봄은 오고 야생화를 알지 못해도 봄은 온다. 그런데 야생화를 알면 봄이 좀더 일찍 찾아온다. 방 안에서 봄이 오기만을 기다리는 분이라면 3월 중순은 되어야 하겠지만 야생화의 달인들은 눈이 채 녹지 않은 2월부터 카메라를 손에 쥔다. 지금쯤 어디에 가면 무엇이 있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야생화를 쉽게 찾을 수 있을까? 지금부터 그 노하우를 조금 나누어 드릴까 한다.
첫째, 계곡부터 살펴라! 모든 생명의 근원은 물이다. 물이 있어야 생명활동이 가능하다. 눈 녹은 물이 끊임없이 생명력을 제공하는 계곡의 습윤 지역에서는 너도바람꽃, 복수초, 현호색, 노루귀, 앉은부채, 처녀치마 등이 제 자신이 봄인 양 꽃을 피운다. 편하게 등산로를 따라가는 사람들의 눈에는 등산로만 보일 테지만 조금 힘들더라도 계곡의 바위를 건너뛰며 올라가다 보면 수많은 야생화가 번뜩인다. 실제로 야생화의 천국이라 불리는 곳들의 면모를 살펴보면 천마산 계곡, 화야산 계곡, 광덕산 계곡, 선운산 계곡, 백운산 계곡 등등 기본적으로 계곡을 끼고 있다. 정상 정복이 아니라 야생화 찾기를 목표로 하는 사람이라면 갈림길에서 계곡 쪽으로 방향을 잡아가는 게 현명하다. 식생 좋은 계곡은 봄뿐 아니라 어느 계절에 가도 다양한 야생화를 만나게 해주는 최고의 장소다.
둘째, 등기부등본을 떼어보라! 도감 한번 뒤져보라는 이야기다. 어디에 무엇이 사는지 모르는데 무얼 찾겠는가? 찾고자 하는 야생화의 특징과 서식지 환경을 미리 알아두면 산세나 주변 환경만 보고도 찾아낼 수 있다. 봄에는 계곡 주변이 좋지만 그런 데서 보기 어려운 꽃들도 많다. 할미꽃이나 솜나물처럼 햇볕을 좋아하는 꽃들은 무덤가처럼 그늘 없고 양지바른 곳을 좋아한다. 모든 꽃이 햇볕을 좋아할 것 같지만 금난초나 은난초 같은 난초과의 식물들은 반음지를 더 선호하는 편이다. 그러니 여름에는 그늘진 곳으로도 발을 들여야 한다. 솔잎이 많이 떨어진 곳에는 웬만한 야생화가 자라기 어려우나 그런 곳일수록 노루발이나 매화노루발은 오히려 군락을 이룰 확률이 높다.
박주가리나 달맞이꽃처럼 길가나 낮은 산자락에서 흔하게 마주쳐지는 것도 있다. 반면에 바람꽃이나 산솜다리처럼 설악산 고지대에 사는 귀하신 몸들은 몇 시간씩 끙끙거리며 올라가야 겨우 알현할 수 있다. 가시연꽃이나 참통발 같은 것은 오래된 호수나 물웅덩이에서 꽃피우니 새로 생긴 저수지에서 괜스레 헤맬 필요는 없다. 보잘것없어 보이는 논바닥이라 해도 서해안이라면 그냥 지나치지 말아야 한다. 멸종위기식물인 매화마름이 잡초인 양 눈속임할 수도 있다. 그보다 더 작은 이삭귀개나 땅귀개는 질퍽한 습지에 앉아 허리를 구부리는 수고를 해야 겨우 얼굴 한번 보여준다.
바닷가에 가야 보는 식물도 있다. 모래지치나 해란초 등은 해변의 모래땅에서 선탠 하는 자세로 꽃핀다. 염분이 많아 식물이 살 수 없을 것 같은 서해안 갯벌에는 퉁퉁마디나 칠면초 같은 염생식물이 꽃 같지도 않는 꽃을 피운다. 오래된 사찰의 지붕 위도 살펴봄직하다. 바위솔이 자라기에 좋은 곳이기 때문이다. 그런가 하면 묵어서 이끼가 긴 고목에는 산일엽초가 염치 불구하고 얹혀산다.
근래에 보기 드물어진 초종용 같은 것은 사철쑥에 기생하는 식물이니 애초에 사철쑥이 많은 곳부터 찾고 보는 것이 순서다. 매미꽃이나 개족도리풀은 중부지방의 야생에서는 보기가 어렵다. 남부지방에서만 사는 것이기 때문에 그렇다. 그런 것들을 알아야 헛수고를 줄이고 좀더 알찬 탐사가 될 수 있다. 그렇게 자주 다니다 보면 어떤 식물이 서식하는 것을 단서로 다른 식물의 존재를 예측할 수도 있다. 일례로, 가는오이풀 같은 식물이 보이면 그 근처 어디에 습지가 존재한다는 뜻이고, 습지에는 다양한 식물이 존재할 가능성이 높으니 그 근처를 정성껏 뒤져보면 끈끈이주걱 같은 뜻밖의 수확을 얻게 되기도 한다.
셋째, 개화기를 맞춰서 가라! 식물에 대한 자생지 정보를 얻고 가더라도 찾지 못하는 수가 종종 있다. 꽃이 없는 시기에는 잘 눈에 띄지 않기 때문에 그렇다. 고수들이야 새싹이나 열매만 보고도 찾아내지만 초보자들의 경우에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니 해당 식물의 정확한 개화기를 알아두었다가 적기에 가는 것이 현명하다. 같은 식물이라도 지역에 따라 개화기가 다를 수 있고 온난화의 영향으로 개화기에 많은 변동이 있으니 참고하여야 한다. 변산바람꽃의 경우 빠른 지역에서는 1월 말부터 올라오지만 늦는 지역에서는 3월 말까지도 꽃을 볼 수 있다. 대체적으로 내륙보다는 해안 지역의 개화기가 빠르고 폭넓으며, 중부 이북 산지에서는 다른 지역보다 봄이 늦고 가을이 빨리 온다.
넷째, 자주 접하고 이름 불러라! 식물은 세세한 차이로 나누어진다. 그걸 모르는 사람의 눈에는 늘 같은 것만 보이고 그걸 아는 사람의 눈에는 좀더 많은 식물이 보인다. 보통 사람은 구별하기 어려운 쌍둥이를 아이들의 엄마는 구별할 줄 안다. 꾸준한 사랑과 관심으로 자주 접하다 보면 아이들의 미세한 차이를 직감적으로 알게 되기 때문에 그럴 것이다. 식물도 자주 접하고 이름 불러주다 보면 약간의 차이를 보이는 유사종들이 눈에 띄기 시작한다. 일반인들은 이른봄에 피는 복수초 비슷한 것만 보면 무조건 복수초라고 부르지만 1~2월경에 피는 것은 대부분 개복수초라는 것이다. 복수초와 달리 개복수초는 꽃줄기가 가지를 치면서 여러 개의 꽃이 달린다. 굳이 가지를 치는지 안 치는지 보지 않아도 구별이 가능하다. 개복수초는 꽃이 크고 꽃받침잎이 5개이며 꽃받침잎의 길이가 꽃잎보다 짧기 때문이다. 진짜 복수초는 3월 중순이 되어야 피는데, 꽃받침잎이 8~9개이며 꽃받침잎의 길이가 꽃잎보다 긴 것만 봐도 금세 알 수 있다. 모르는 게 많을 때에는 아는 것만 보이지만 아는 게 많아지면 모르는 것이 보인다. 그러면 그것을 나중에라도 알게 되는 기쁨을 누리게 된다.
계절이 또 한 바퀴를 돌아와 봄이다. 봄은 그냥 봄이 아니라 늘 ‘새봄’이다. 새봄의 기운을 머금고 피어나는 야생화를 찾아 길을 떠날 때가 되었다. 알고 보면 우리 주위에는 널린 게 야생화인데 베란다 화분에나 눈 맞추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야생화를 누가 혹시 화분에 담아온대도 그건 이미 야생의 생명력을 잃은 것이다. 그 어떤 고난과 역경에도 굴하지 않고 스스로의 힘으로 살아가는 식물이어야 진정한 야생화다. 사람이라고 다를까? 산으로 들로 나가보면 알 수 있다. 우리 자신도 끈질긴 생명력으로 살아가는 한 송이 꽃이라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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