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과의 對話/숲 일반

지의류에서 배우는 공생의 가치

초암 정만순 2017. 10. 31. 23:30



지의류에서 배우는 공생의 가치


         제주도 한라수목원의 다양한 지의류 <출처 : By 국립수목원>


비 온 뒤 나무의 몸통과 바위가 녹색으로 변한 것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페인트를 칠해놓은 듯한 바위나 비석, 돌담, 도시의 보도믈록, 담벼락, 가로수 등 우리 주변의 어디에나 있지만 관심을 끌지 못했던 생명체 '지의류'를 소개해볼까 한다.



                                           제주도 난대림의 나뭇잎에서 자라는 지의류 <출처 : By 국립수목원>




지의류는 어떤 생물일까?



지의류를 처음 보는 사람들은 다들 신기해하거나 예쁘다며 사진을 찍기도 하지만 어떤 생물인지는 잘 알지 못해서 이끼, 이끼 같은 식물, 버섯 등으로 불려지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지의류는 버섯도 아니고, 이끼도 아니며, 식물은 더더욱 아니다.



                                                  녹색이끼와 회색 빛깔의 지의류 <출처 : By 국립수목원>


지의류는 하나의 단일한 생물이 아니다. 하얀 균체의 곰팡이와 녹색, 청남색의 조류가 만나 공동생활을 하는 공생체인 '균류'이다. 이렇게 종류는 다르지만 서로 도움을 주며 같은 공간에서 함께 살아가는 생물을 '공생생물'이라고 한다.



                                                       유사금테지의의 종단면 <출처 : By 국립수목원>                                                 


                                                            송라의 종단면 <출처 : By 국립수목원>


곰팡이가 추위나 더위, 가뭄에 견딜 수 있는 보호막이 되어 주고, 조류는 광합성을 통해 생존에 필요한 영양분을 만들어 곰팡이에게 제공하면서 공생을 하는 것이다. 곰팡이는 하얀 균사로 집을 짓고, 조류는 공기오 햇빛으로 밥을 한다고 이해하면 쉬울 것이다.


지의류는 전 세계에 2~3만여 종이 있고, 한국에는 700~800여 종이 자생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지의류는 종이 너무 많아서 구분하기 쉽도록 생장하는 모양에 따라 크게 3가지로 나누는데, 나뭇잎 모양으로 생장하면 엽상(葉狀)지의류, 관목처럼 생장하면 수지상(樹枝狀)지의류, 특정한 모양 없이 생장하면 가상(痂狀)지의류라고 부른다.



                                     엽상지의류인 노란배그리마지의(Heterordermia obscurate) <출처 : By 국립수목원>


                                    수지상지의류인 바위꽃탱자나무지의(Ramalina yasudae Räsänen) <출처 : By 국립수목원)




                             가상지의류인 치즈지의(Rhizocarpon geographicum) <출처 : By 국립수목원>


영어로는 라이켄(Lichen), 한자로는 땅 지(地), 옷 의(衣)자를 써서 지의류라고 부르는데, 지구 상 어디에서든 살 수 있는 강인한 생물이기 때문에 '땅의 옷'이 되는 것이다. 적도에서 남극 · 북극까지, 바닷가에서 6,000m 고도의 고산지역, 도시의 보도블록과 콘크리트, 사막 등 어디에서든 살 수 있다.


2008년 유럽우주국의 과학자들은 국제우주정거장에 박테리아와 각종 씨앗, 지의류와 조류 샘플을 아무 보호장치 없이 정거장 밖의 우주공간에 부착시켜 18개월을 보낸 뒤 지구로 다시 가져왔다. 이 샘플들은 지구에서 측정되는 자외선의 1,000배에 달하는 자외선 폭격을 당하고, 영하 12도에서 영상 40도를 오르락내리락 하는 변화를 200번 거친 것이라 한다.


가져온 샘플을 분석한 결과 가장 강인한 생물은 지의류인 것으로 드러났다. 심지어 지구로 돌아온 지의류의 일부종은 정상적으로 다시 성장했다고 한다. 전혀 다른 두 생명체가 서로 도와 공생체로 살아가면서 그만큼 강해졌기 때문이다.




생태계와 인간생활에 영향을 미치는 지의류



지의류의 강인함은 지구 상의 생태계와 인간생활에도 영향을 주었다. '동토지대', '얼어붙은 평원'이라고 하는 '툰드라'지역은 1년에 아홉 달이 겨울인, 눈으로 덮여 얼어 있는 땅이다. 툰드라에는 순록을 방목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들에게 지의류는 아주 중요한 생물이다. 겨울 동안 순록의 유일한 먹이가 되기 때문이다. 튼드라에서 생장하는 지의류를 '순록이끼'라고 부르는 이유이기도 하다.


                                               '순록이끼'라 불리는 사슴지의 <출처 : By 국립수목원>


지의류를 음식으로 먹는 사람들도 있는데, 빵과 샐러드를 만드는 데 쓰이며 전쟁 중에는 중요한 식량이 되기도 했다. 한국에서는 지의류인 '석이'와 '송라'를 약용으로 섭취하고, 다이어트 차로 뜨거운 물에 '황설차'와 '백설차'를 우려서 마신다.



                                 석이(石耳)는 바위에서 자라는, 모양이 귀를 닮은 지의류이다. <출처 : By 국립수목원>


                                            가는 실처럼 생긴 송라는 뒤엉켜서 자란다. <출처 : By 국립수목원>


또한 우주의 강렬한 자외선에도 견디는 지의류의 강인함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사람들이 화장품을 오래 보관할 수 있도록 하는 천연 방부제로 쓰고, 자외선 차단제(선크림)를 만드는 원료나 첨가제로도 이용한다.  고대 이집트에서 미이라를 만들 때도 썩지 않도록 지의류를 이용했다. 이처럼 우리 주변의 지의류는 지구의 한 구성원으로서 강한 생명력을 유지하며 살아가고 있다.




강인한 지의류의 약점



그러나 지의류에게도 약점은 있다. 지의류는 생장이 너무 느리다. 종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대부분 1년에 겨우 1mm가 자란다. 버섯이나 식물들은 1년 중 특정 계절에만 볼 수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채취하는 시기가 정해져 있지만, 지의류는 언제든 눈에 띄는 탓에 쉬지 않고 채취되고 있다.


사람들은 별생각 없이 뜯어내지만 이미 수십 년간 생장한 생물이라서 한번 채취되고 나면 또다시 오랜 생장기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다. 지금처럼 마구잡이로 채취가 된다면 언제가는 책에서나 볼 수 있는 생물이 되고  말 것이다.


지의류가 공기로 밥을 짓는다는 것은 서두에 이미 언급했다. 만일 공기가 더러워지면 지의류에게 어떤 일이 벌어질까? 아무리 강인한 지의류라도 공기가 오염되면 더 이상 영양분을 만들 수 없어 죽게 된다. 조류가 죽으면 더이상 영야분을 얻지 못하는 곰팡이도 같이 죽게 되는 것이다.



                                          국립수목원에서 생장하는 지의류 <출처 : By 국립수목원>


대기오염이 특히 심각했던 영국에서는 과학자들이 지의류를 이용해 대기오염 정도에 관한 많은 연구를 했다. 특히 오염에 약한 지의류를 골라 대기오염 측정에 이용했는데, 연구 결과 대기오염 '지표생물'로 지의류를 이용하게 되었다. 지의류 종의 수 변화과 사람들이 폐암 발별률을 비교했더니, 지의류 종이 다양할수록 폐암 발병률이 낮았다는 연구 결과가 있을 정도로 대기오염에 민감한 생물이다.


지의류는 강한지만 관심을 갖고 보호하는 대신 마구잡이로 이용하려고만 한다면 결국 사라지고 말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한 번쯤 관심을 갖고, 봄에는 벚꽃 만발한 벚꽃나무에서, 여름의 바닷가와 계곡의 바위에서, 가을의 단풍나무에서, 겨울의 눈 덮인 절간의 기와에서 이 생물을 한번 찾아보길 바란다.



글 오순옥(이학박사) | 국립수목원 연구원

중국과학원에서 지의류분류연구로 박사학위를 받고 순천대학교 지의류연구센터 연구교수를 역임하였다. 2015년 9월부터 현재까지 국립수목원에서 지의류연구를 하고 있으며, 저서로는 '지의류 생태도감'과 '한국산 지의류 도감1' 등이 있다.


제공  국립수목원 http://www.kna.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