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과의 對話/숲 일반

단풍은 체념과 슬픔의 표현 

초암 정만순 2017. 8. 25. 08:38


  단풍 체념 슬픔 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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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생장이 어려운 시간이 다가와 잎을 떨구기 전 마지막 향연


광릉 숲의 가을은 수목원 앞마당에 서 있는 복자기나무의 잎이 붉디붉게 물들면서 시작됩니다. 거대하고 푸르른 나무바다 속에서 한 점 붉은 빛으로 시작된 가을빛이 큰 물결이 되어 북쪽에서 남쪽으로, 높은 산에서 낮은 들녘으로 물밀듯이 밀려옵니다.


가을단풍이 붉기만 해서 아름다운 것은 아닙니다. 붉은 빛이 선명한 당단풍나무나 화살나무가 있는가 하면, 갈색 빛이 운치를 더해주는 참나무나 느티나무도 있고, 샛노란 생강나무나 부드러운 주홍빛의 이나무도 있습니다.


이 모든 나무들의 모든 빛깔이 모여 그야말로 울긋불긋 아름다운 단풍빛이 됩니다. 광릉숲의 가을 단풍이, 혹은 설악산의 단풍이 유난히 화려하고 아름답게 느껴지는 것은 그만큼 다양한 식물들이 저마다 다른 색을 내며 어우러지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수해로 어려운 이들의 마음을 고려해서인지 올해는 단풍놀이가 그리 떠들썩하지는 않습니다. 그래도 산자락의 붉은 단풍빛을 보노라면 가슴이 서늘해지도록 감동스러운 것은 어찌할 수 없습니다. 이즈음 사람들은 그 빛깔을 따라 단풍놀이를 떠납니다. 단풍잎보다 더 울긋불긋한 등산복을 차려입고 말입니다.


하지만 나무 입장에서 단풍이 든다는 것은 살기 어려운 계절이 다가 오고 있는 만큼 이를 준비해야 한다는 아주 비장한 신호입니다. 잎이 초록색이었던 이유는 광합성을 하여 양분을 만드는 엽록소의 색깔이 초록색이기 때문입니다.


가을이 되면 나무들은 더 이상의 생장을 포기합니다. 그 표현이 바로 단풍빛입니다. 엽록소에 가려 있던 카로틴 같은 노란색소가 발현되면 은행나무처럼 노란 단풍이 드는 것이며, 잎의 생활력이 약해지면서 붉은 색소인 화청소가 생겨나면 붉은 단풍이 들게 됩니다. 같은 나무라도 단풍빛이 똑같지 않습니다. 낮과 밤의 기온차가 클수록 색이 선명해지고, 공중의 습도나 나무의 건강상태에 따라 달라집니다.


나무의 처지를 알아서인지, 말할 수 없이 화려해진 산자락을 보노라면 마치 닥쳐올 무서운 겨울을 눈앞에 두고 나무들이 장렬하고도 슬픈 예식을 치르는 것 같습니다. 나무들의 떨림이 느껴지는 듯도 싶구요. 그 슬픔을 이토록 아름답게 표현하는 나무들이 새삼 감탄스럽기만 합니다.


그래도 이 가을엔 단풍을 보롤 한번 떠나보십시오. 그 선연한 빛깔들을 마음에 담고서 한 해의 마감을 차분하고 겸손하게 준비할 수 있다면 우리는 나무가 주는 또 하나의 선물을 성공적으로 받는 것입니다.


카로틴이 많아지면 은행나무처럼 노란색을, 화청소가 생겨나면 단풍나무처럼 붉은 색 단풍이 듭니다.

<이유미 저, 광릉숲에서 보내는 편지 중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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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로 보는 단풍 곱도도 곱구나

일반적으로 가을산을 「만산홍엽(滿山紅葉)」이라 하듯이 붉은색을 떠올리기 쉽지만 사실은 형형색색 온갖 종류의 나무들이 가을산의 아름다움을 이루고 있다. 은행나무의 노란색은 물론 고로쇠의 오렌지색, 감나무의 밝은 갈색 등 여러 색이 모여 가을산은 장관을 이룬다.

이는 수종별로 각각의 색소 함유량과 엽록소가 소멸되는 양과 비율의 차이 때문이다.


-빨간색: 단풍나무, 신나무, 옻나무, 붉나무, 화살나무, 복자기, 담쟁이덩굴

-오렌지색: 고로쇠, 우산고로쇠

-밝은갈색: 너도밤나무, 느티나무, 감나무

-노란색: 은행나무, 아까시나무, 피나무, 호두나무, 목백합, 자작나무, 물푸레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