老巨樹 保護樹 記念物/천연기념물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최고 아름다운 나무

초암 정만순 2017. 5. 18. 06:43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최고 아름다운 나무

 

구  분

주  제

대  상

최고 나무

가장 키가 크거나 굵고 나이가 가장 많은 나무

 양평 용문사 은행나무

 보은 속리 정이품송

 정선 두위봉 주목

 장성 단전리 느티나무

 진안 천황사 전나무

 예천 천향리 석송령

아름다운 나무

전체 생김새나 꽃이 특히 아름다운 나무

순천 송광사 천자암 쌍향수(곱향나무)

 장성 백양사 고불매

 무주 삼공리 곰솔

 장흥 삼산리 후박나무

 괴산 삼송리 소나무

 고창 삼인리 송악

선비 나무

선비나 관리가 직접 심거나 관련된 이야기를 가진 나무

 금산 요광리 은행나무

 제주 산천단 곰솔

 창덕궁 향나무

서울 문묘 은행나무

함양 학사루 느티나무

경주 독락당 조각자나무

나라 지킴이 나무

국방과 관련이 있는 나무

 광양읍수와 이팝나무

남해 창선도 왕후박나무

강진 삼인리 비자나무

의령 세간리 현고수(느티나무)

부산 좌수영성지 곰솔1)

구례 화엄사 올벚나무

 

24개소


 

 

최고 나무


양평 용문사 은행나무 

 

ㅇ 문화재 개요

  - 종목      천연기념물 제30호

  - 명칭      양평 용문사 은행나무(楊平 龍門寺 은행나무)

  - 분류      자연유산/천연기념물/문화역사기념물/종교

  - 수량/면적 1주260㎡

  - 지정일    1962.12.03

  - 소재지    경기 양평군 용문면 신점리 626-1

  - 소유자    용문사

  - 관리자    양평군


ㅇ 선정사유

  - 키 41m, 줄기 둘레는 14m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이 자란 나무이며, 은행나무 가운데 나이가 1천100년으로 가장 많다. 벼슬도 차관 급에 해당하는 당상직첩(堂上職牒)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단풍이 특히 아름답다.      


ㅇ 문화재설명

  - 은행나무는 살아 있는 화석이라 할 만큼 오래된 나무로 우리나라, 일본, 중국 등지에 분포하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중국에서 유교와 불교가 전해질 때 같이 들어온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가을 단풍이 매우 아름답고 병충해가 없으며 넓고 짙은 그늘을 제공한다는 장점이 있어 정자나무 또는 가로수로도 많이 심는다.

  - 용문사의 은행나무는 나이가 약 1,100살 정도로 추정되며, 높이 67m, 뿌리부분 둘레 15.2m이다. 우리나라 은행나무 가운데 나이와 높이에 있어서 최고 높은 기록을 가지고 있으며 줄기 아래에 혹이 있는 것이 특징이다.

  - 이 나무는 통일신라 경순왕(재위 927∼935)의 아들인 마의태자가 나라를 잃은 설움을 안고 금강산으로 가다가 심었다는 전설과 의상대사가 짚고 다니던 지팡이를 꽂아 놓은 것이 자라서 나무가 되었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이 외에도 나무를 자르려고 톱을 대었는데 그 자리에서 피가 났다는 이야기, 정미의병(1907) 항쟁 때 일본군이 용문사에 불을 질렀는데 이 나무만 타지 않았다는 이야기들이 전해지고, 나라에 큰 일이 일어날 때마다 소리를 내어 알렸다고도 한다.

  - 용문사의 은행나무는 조선 세종(재위 1418∼1450) 때 당상관(정3품)이란 품계를 받을 만큼 중히 여겨져 오랜 세월동안 조상들의 관심과 보살핌 가운데 살아온 나무이며, 생물학적 자료로서도 가치가 높아 천연기념물로 지정·보호되고 있다.

  - 수령(樹齡)은 약 1100여년으로 추정되며, 나무의 크기는 높이가 67m, 뿌리부분의 둘레가 15.2m이며, 가지의 길이는 동서로 29.1m, 남북으로 25.9m이다.

  - 용문사의 은행나무는 우리나라 노거수의 대표적인 존재인데 그것은 우리나라 은행나무 중 수령과 수고에 있어서 가장 높은 기록을 가지고 있고 또 전설이 담겨 있는데 있다.

  - 이 나무는 용문사 경내에 서 있는데 배수가 잘 될 수 있는 적지조건을 갖추고 있다. 줄기 아래쪽에 혹과 같은 큰 돌기가 나있는 것이 특징의 하나이다.

  - 이 나무에는 얽힌 전설이 많다. 신라의 마지막 임금 경순왕(敬順王) 때 태자(太子)였던 마의태자(麻衣太子)가 망국의 서러움을 품고 금강산으로 가던 길에 손수 심었다고 말이 있는가 하면 역시 신라의 의상대사(義湘大師)가 그의 지팡이를 꽂은 것이 이 은행나무로 되었다는 전설도 있다. 이것은 삽목신화의 하나로서 세계 각처에서 찾아볼 수 있는 것이다.

  - 용문사는 신라 신덕왕(神德王) 2년 대경대사(大鏡大師)가 창건하였다고 하는데 그때가 서기 913년에 해당한다. 또 한편으로는 경순왕이 친히 이 절을 창건하였다고 한다. 이러한 전설을 고려할 때 이 은행나무의 수령은 약 천년을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 나무의 수령이 천년을 넘는지라 그동안 긴 세월을 살아오는 동안에 각종 피해를 입었을 것이 짐작된다. 그러한 역경을 거쳐오면서 오늘날의 씩씩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은 신기한 일이다. 가령 정미 의병(丁未 義兵)이 발발했을 때 일본군인들이 절에 불을 놓았으나 이 은행나무만은 해를 면했다는 것이다. 은행나무는 방화수(防火樹)로 잘 알려지고 있는 터이다. 그때 사천왕전(四天王殿)이 불타버렸는데 이 은행나무를 천왕목(天王木)으로 대신했다는 것이다.

  - 이 나무에 대한 전설은 더 있다. 즉 나라에 큰일이 있다던가 변고가 발생하였을 때에는 이 나무는 소리를 내어 그것을 알렸다고 한다. 나무가 소리를 낸다는 말은 외국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고종(高宗)께서 승하하였을 때에는 큰 가지 하나가 부러졌다고 한다. 또 어떤 사람이 이 나무를 자르고자 톱을 대는 순간 톱자리에서 피가 쏟아져 나왔다는 말도 있다.

        

보은 속리 정이품송

 

ㅇ 문화재 개요

  - 종목      천연기념물 제103호  

  - 명칭      보은속리정이품송(報恩 俗離 正二品松)

  - 분류      자연유산/천연기념물/문화역사기념물/민속

  - 수량/면적 1주7,700㎡    

  - 지정일    1962.12.03     

  - 소재지    충북 보은군 속리산면 상판리 241외

  - 소유자    법주사 

  - 관리자    보은군

        

ㅇ 선정사유

  - 이 나무는 오늘 날 장관에 해당하는 정이품(正二品) 벼슬을 내렸다고 하며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나무이다.


ㅇ 문화재설명

  - 수령(樹齡)은 600여년이며, 나무의 크기는 높이가 14.5m, 가슴높이의 둘레가 4.77m이다. 가지의 길이는 동서가 13.70m이고, 남북이 17.28m이다.

  - 이 곳 속리의 정이품송은 천연기념물 노거수로서 용문사의 은행나무와 함께 쌍벽을 이루고 있다. 이 소나무는 법주사로 들어가기전 약 3㎞되는 지점에 서 있고 그 주변을 지나는 도로가 있다.

  - 이 소나무는 수관이 우산을 편 모양으로 정제하고 무척 아름답다. 사방으로 고루 퍼진 곁가지가 알맞게 아래로 드리우고 있다. 불행하게도 1993년 봄에 폭풍이 불어 곁가지 하나가 절단되어 대칭적인 수관에 흠집을 낸 것은 안타까운 일이었다.

  - 이 나무는 다음과 같은 전설을 안고 있다. 즉 1464년(甲申年) 세조대왕(世祖大王)이 법주사로 행차를 하실 때 대왕을 태운 가마가 이 소나무의 아랫가지에 걸리게 되자 이 소나무는 그 가지를 쳐들어 어가(御駕)를 무사히 통과시켰다고 한다. 그래서 이 소나무를 "연(輦)걸이 소나무"로 부르기도 한다. 또 대왕께서 이곳을 지나다가 비를 피했다는 말도 있다. 왕이 큰 소나무 아래에서 비를 피했다는 전설은 중국에도 있긴 하다. 이러한 사연으로 해서 대왕께서는 이 소나무에 정이품(正二品)(현재의 장관급의 위계)의 벼슬을 내리셨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소나무를 정이품소나무로 부르고 있다. 이 소나무가 서 있는 앞마을의 명칭이 진허(陣墟)인데 이것은 그당시 대왕을 호위하던 군사들이 진을 치고 머물렀다는 데서 생긴 지명이라고 한다. 이러한 일이 약 440년전에 있었던 것이라면 이 소나무의 수령은 약 600년 정도로 추정될 수 있다.

  - 이 소나무는 옆을 흐르는 계류가 퇴적시킨 사질 양토위에 서 있는데 이러한 토성은 수분조건, 공기조건 그리고 토양 미생물의 번식 등 소나무에 적합해서 이 소나무가 그간 건강하게 오래 살아 올 수 있었다고 짐작된다.

  - 이 소나무는 그간 줄기 아랫쪽 일부가 부패해서 외과시술을 받은 바 있으며 1980년경부터 우리나라 남쪽에서 소나무를 가해하면서 올라온 솔잎혹파리의 침범이 이곳에 이르자 1982년에는 높이 18m에 이르는 8각주형(角註形)의 철골시설물을 세우고 이에 방충망을 설치해서 솔잎혹파리의 침입을 차단했던 것이다. 이것이 큰 효과를 발휘해서 소나무는 솔잎혹파리의 피해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이다. 이에는 엄청난 비용이 소요되었는데 이를 계기로 우리국민의 나무사랑의 지극함이 국내외로 전해졌다. 이 방충망시설은 큰 비용부담과 또 솔잎혹파리의 해가 없을 것으로 판단되자 1991년에 철거시켰다. 그 뒤 정이품송의 수세회복을 위한 연구용역 및 보호사업을 실시하고 있으나 워낙 나무의 나이가 오래되었고 해서 앞으로 왕성한 생리의 회복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정선 두위봉 주목

 

ㅇ 문화재개요

  - 종목      천연기념물 제433호

  - 명칭      정선두위봉주목(旌善 斗圍峰 주목)

  - 분류      자연유산 /천연기념물/생물과학기념물/대표성

  - 수량/면적 3그루

  - 지정일    2002.06.29

  - 소재지    강원 정선군 사북읍 사북리 산 160-3

  - 소유자    국유(산림청)관리자정선군


ㅇ 선정사유

  - 주목 3그루가 나란히 자라는데 가운데 나무 나이가 1천4백년에 이르러 김유신장군과 계백장군의 동갑내기 나무들이다. 나머지 두 그루도 각각 1천1백년과 1천2백년을 살았다. (가장 나이 많은 나무)


ㅇ 문화재설명

  - 주목은 우리나라, 일본, 만주, 우수리, 소련 등지에 분포하고 있는 상록 교목으로, 우리나라에서는 소백산·태백산·오대산·설악산 등 높은 산악지대나 추운 지방에서 주로 자라며, 나무의 모습이 아름답기 때문에 정원수로 많이 쓰인다.

  - 큰가지와 줄기는 적갈색이며, 4월에 개화하고 9∼10월에 붉은 열매가 열린다. 목재는 바둑판, 목공예품 등 세공품을 만드는 데 많이 사용하며, 열매는 식용 및 약용으로 쓰인다.

  - 정선 두위봉의 주목 3그루는 사북면 소재지로부터 2㎞ 거리의 도사곡 휴양지에서 두위봉으로 가는 등산로를 따라 5㎞ 정도 오르면 능선부에서 만날 수 있다.

  - 세 그루가 위아래로 나란히 자라고 있는데 중심부에 있는 나무의 수령이 1,400여 년으로 추정되며 상부의 주목은 1,200여 년, 하부의 주목은 1,200여 년 가량으로 추정된다.

  - 정선 두위봉의 주목은 수형이 아름답고, 산림청 임업연구원의 생장추 측정에 의한 수령감정 결과 수령이 1,200∼1,400여 년으로 추정되어 주목으로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것으로 매우 보기 드문 희귀한 것이며 학술적 가치가 크다



장성 단전리 느티나무         

 

ㅇ 문화재개요

  - 종목      천연기념물 제478호

  - 명칭      장성단전리느티나무(長城 丹田里 느티나무)

  - 분류      자연유산 /천연기념물/생물과학기념물/생물상

  - 수량/면적 1주

  - 지정일    2007.08.09

  - 소재지    전남 장성군 북하면 단전리 291

  - 소유자    장성군

  - 관리자장성군(장성군수)


ㅇ 선정사유

  - 전국의 느티나무 노거수 5천여 그루 중 줄기 둘레가 10.5m로서 가장 굵은 나무로 알려져 있다. 키 28m와 400년된 수령, 균형이 잘 잡힌 아름다움이 돋보인다.


ㅇ 문화재설명

  - 반원형의 미려한 수형에 지금까지 밝혀진 느티나무 중 가장 큰 나무로서 생육상태도 아주 좋아 우리나라 느티나무를 대표할 만함.

  - 단전마을의 도강김씨 입향조(入鄕祖) 김충남이 임진왜란 때 순절한 형 김충로를 기념하여 심은 것으로 전해짐. 마을 주민들이 ‘장군나무’라 부르며 영험한 기운을 가진 신목으로 여겨 매년 대보름에 당산제를 지내는 등 역사성과 문화적인 가치가 큼.



진안 천황사 전나무

 

ㅇ 문화재개요

  - 종목      천연기념물 제495호

  - 명칭      진안 천황사 전나무(鎭安 天皇寺 전나무)

  - 분류      자연유산 /천연기념물/생물과학기념물/생물상

  - 수량/면적 1주

  - 지정일    2008.06.16

  - 소재지    전북 진안군 정천면 갈용리 산169-4

  - 소유자    천황사

  - 관리자    진안군


ㅇ 선정사유

  - 긴 원뿔형의 아름다운 모습이 돋보이고 키 35m, 둘레 5.2m로서 우리나라 전나무 중에는 가장 규모가 크다. 주변을 압도하고 남을 만큼 웅장하고 기품이 있는 나무 (웅장함).


ㅇ 문화재설명

  - 진안 천황사(天皇寺) 전나무”는 천황사에서 남쪽으로 산 중턱 남암(南庵) 앞에 사찰의 번성을 기원하며 식재한 나무로 전해지며, 수령이 400년 정도로 오래되었고, 현재까지 알려진 우리나라 전나무 중 규격이 가장 크고 나무의 모양과 수세가 매우 좋은 편으로 학술적 가치가 높다.


예천 천향리 석송령

 

ㅇ 문화재개요

  - 종목      천연기념물 제294호

  - 명칭      예천천향리석송령(醴泉 泉香里 石松靈)

  - 분류      자연유산 /천연기념물/문화역사기념물/민속

  - 수량/면적 1주(314㎡)

  - 지정일    1982.11.04

  - 소재지    경북 예천군 감천면 천향리 804외 3필

  - 소유자    예천군

  - 관리자    예천군


 ㅇ 선정사유

  - 세금 내는 가장 부자 나무로 유명하다.


ㅇ 문화재설명

  - 석평마을의 마을회관 앞에서 자라고 있는 예천 감천면의 석송령은 나이가 600년 정도로 추정되며, 높이는 11m, 둘레는 3.67m이다. 나무는 밑동에서부터 여러 갈래로 갈라져 있어 전체적으로 우산모양을 하고 있으며, 곁가지의 무게를 지탱하기 위해 곳곳에 돌로 된 기둥을 세워 놓았다.

  - 전하는 이야기에 의하면, 약 600년 전 풍기지방에 큰 홍수가 났을 때 석간천을 따라 떠내려오던 소나무를 지나가던 사람이 건져서 이 자리에 심은 것이라고 한다. 그 뒤 이 마을에 살던 이수목(李秀睦)이라는 사람이 ‘석평마을에 사는 영감이 있는 소나무’라는 뜻으로 ‘석송령’이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고, 자신의 토지 6,600㎡를 물려주고 등기까지 내주어 재산을 가진 나무가 되었다. 또한 고 박정희 대통령이 500만원을 하사한 일도 있다. 마을에서는 석송령의 재산으로 장학금을 조성하여 학생들에게 주고 있으며 매년 정월 대보름에 마을의 평화를 비는 제사를 지내고 있다.

  - 예천 감천면의 석송령은 마치 사람처럼 재산을 가지고 세금과 장학금을 내는 등 세계적으로 그 예를 찾기 어려운 나무로 우리민족의 나무에 대한 생각을 엿볼 수 있는 문화적 자료로서의 가치가 매우 높아 천연기념물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 수령(樹齡)은 600여년이며, 나무의 크기는 높이가 11m, 가슴높이 줄기 둘레가 3.67m이고, 가지의 길이는 동·서쪽이 19.4m, 남·북쪽이 26.2m이다.

  - 이 소나무가 위치해 있는 천향리마을은 예천읍에서 영주로 가는 길 왼편에 있고 그 마을회관 앞뜰에 서 있다. 소나무는 원래 원줄기가 위로 솟아나는 모습을 갖추고 있지만 이 석송령은 굵은 곁가지가 멀리 뻗어 남북방향으로 30m에 이르고 있다. 곁가지의 무게를 지탱시키기 위해서 석주(石柱)를 곳곳에 세워 주고 있다.

  - 수령 600년으로 추정되고 있는 이 소나무는 인격이 부여된 특이한 존재세계적으로 유례를 볼 수 없는 사연을 간직하고 있다. 전설에 따르면 이 소나무는 약 600년전에 큰비가 와서 풍기지방에서 시작된 홍수에 따라 흘러 내려오는 것을 어떤 과객이 건져내어서 이곳에 심은 것이라 한다. 그 뒤 이 나무는 좋은 성장을 계속하였는데 이 마을의 주민이었던 이수목(李秀睦)이란 사람이 이 나무에서 영감을 느끼게 되어 석송령이란 이름을 지어 주고 그의 소유토지 6,600㎡를 이 나무에 상속시켜 문서등기를 마쳤다. 토지와 같은 부동산을 나무가 소유한다는 것은 어느 곳에서도 찾아 볼 수 없는 일이다.

  - 동리회관건물도 석송령의 소유토지 위에 건축된 것이다. 이 소나무는 해마다 농지를 경작하는 사람으로부터 돈을 받고 그것을 은행에 저축하고 있다. 땅을 소유하고 있으니 제반 세금을 또한 내고 있다. 즉 재산세 지방세 방위세 등을 납부하고 있다. 그리고 해마다 선정된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하고 있다.

  - 고 박정희대통령은 이 나무에 500만원을 하사한 일이 있고 이것은 당시의 가치로 보아 큰돈이었다. 이것이 장학기금이 되었다.

  - 정월보름날 새벽에 동민들은 이 나무 아래에서 동제를 올려 평안을 비는데 사람들은 이 나무가 동리를 수호해 주고 있다는 것을 굳게 믿고 있다. 동제가 끝나면 아주머니들이 막걸리가 든 술병을 들고 이 나무의 주변을 돌면서 술을 땅에 뿌린다. 소나무는 술의 효과를 얻어 더욱 씩씩하게 자란다는 것도 사람들은 믿고 있다. 동리 노인들은 이 소나무를 보호하기 위한 송계(松契)를 만들고 있다.

 

 

아름다운 나무



순천 송광사 천자암 쌍향수(곱향나무) 

 

ㅇ 문화재개요

  - 종목      천연기념물 제88호

  - 명칭      순천 송광사 천자암 쌍향수(곱향나무)(順天 松廣寺 天子庵 雙香樹(곱향나무))

  - 분류      자연유산 /천연기념물/문화역사기념물/종교

  - 수량/면적 2주1,983㎡

  - 지정일    1962.12.03

  - 소재지    전남 순천시 송광면 이읍리 1

  - 소유자    송광사

  - 관리자    순천시


ㅇ 선정사유

  - 2그루의 곱향나무가 나란히 서서 마치 곧 승천을 준비하고 있는 용틀임을 보는 듯하다.


ㅇ 문화재설명

  - 향나무는 우리나라 중부 이남을 비롯해 울릉도와 일본에 분포하고 있다. 강한 향기를 지니고 있어 제사 때 향료로 쓰이거나 정원수, 공원수로 많이 심는 나무이다.

  - 송광사의 곱향나무 쌍향수는 나이가 약 800살 정도로 추정되며, 높이 12.0m, 가슴높이 둘레 4.10m, 3.30m이다. 두 그루가 쌍으로 나란히 서 있고 줄기가 몹시 꼬인 신기한 모습을 하고 있다.

  - 전설에 의하면, 고려시대에 보조국사(普照國師)와 담당국사(湛堂國師)가 중국에서 돌아올 때 짚고 온 향나무 지팡이를 이곳에 나란히 꽂은 것이 뿌리가 내리고 가지와 잎이 나서 자랐다고 한다. 담당국사는 왕자의 신분으로 보조국사의 제자가 되었는데, 나무의 모습이 한 나무가 다른 나무에 절을 하고 있는 듯하여 예의바른 스승과 제자의 관계를 나타내는 모습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또한 한손으로 밀거나 여러 사람이 밀거나 한결같이 움직이며, 나무에 손을 대면 극락(極樂)에 갈 수 있다는 전설이 있어 이곳을 찾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 송광사의 곱향나무 쌍향수는 앞에서 설명한 전설과 기이한 모습을 가진 오래된 나무로서 문화적·생물학적 가치가 높아 천연기념물로 지정·보호하고 있다.

  - 수령(樹齡)은 800여년으로 추정하며 나무의 크기는 높이가 12.0m, 가슴높이의 둘레가 4.10m, 3.30m이다. 천자암(天子庵) 뒷뜰의 성산각(星山閣) 옆에서 자란다.

  - 향나무에 얽힌 전설에 의하면 조계산(曹溪山)에 천자암(天子庵)을 짓고 수도(修道)하시던 보조국사(普照國師)와 담당국사(湛堂國師)가 중국(中國) 갔다 오실 때 짚고 오신 지팡이를 나란히 꽂아 놓은 것이 뿌리가 내려 자랐다고 한다. 담당국사(湛堂國師)는 왕자(王子)의 몸으로서 보조국사(普照國師)의 제자가 되신 분이다. 그 두 그루의 향나무가 서 있는 모습이 스승과 제자가 서로 절을 하고 있는 모습과 같다고 보는 이도 있어 사제지간(師弟之間)에 얽힌 800년전의 옛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만 같다.

  - 이 나무는 엿가락을 비꼬은 것 같이 꼬여있고 한손으로 밀거나 여러사람이 여러손으로 밀거나 한결같이 움직이는 것이 신기하며 한 번씩 손을 대어 흔들어 보면 틀림없이 극락세계(極樂世界)로 갈 수 있다는 전설이 있어 천자암(天子庵)을 찾는 손님이 많다고 한다.


        

장성 백양사 고불매

 

ㅇ 문화재개요

  - 종목      천연기념물 제486호

  - 명칭      장성백양사고불매(長城白羊寺 古佛梅)

  - 분류      자연유산 /천연기념물//

  - 수량/면적 1주,(314㎡)

  - 지정일    2007.10.08

  - 소재지    전남 장성군 북하면 약수리 26번지

  - 소유자    장성군

  - 관리자    장성군(장성군수)


ㅇ 선정사유

  - 대웅전으로 가는 길 담장 옆에 피는 홍매(紅梅) 종류로 꽃 색깔이 아름답고 향기가 은은하여 산사의 정취를 돋운다. 줄기 뻗음은 고목의 품위를 그대로 갖고 있으면서도 모양이 깔끔하여 매화 원래의 기품이 살아있다.


ㅇ 문화재설명

  - 이 매화나무 고목은 매년 3월 말경에 진분홍빛 꽃을 피우는 홍매(紅梅)종류로서, 꽃 색깔이 아름답고 향기가 은은하여 산사의 정취를 돋운다. 아래부터 셋으로 갈라진 줄기 뻗음은 고목의 품위를 그대로 갖고 있으며 모양도 깔끔하여 매화 원래의 기품이 살아있다.

  - 대체로 1700년경부터 스님들은 이곳에서 북쪽으로 100m쯤 떨어진 옛 백양사 앞뜰에다 여러 그루의 매화나무를 심고 가꾸어 왔다고 한다. 1863년 절을 이쪽으로 옮겨 지을 때, 그때까지 살아남은 홍매와 백매 한 그루씩도 같이 옮겨 심었다. 그러나 백매는 죽어 버리고 지금의 홍매 한 그루만 살아남았다. 1947년 부처님의 원래의 가르침을 기리자는 뜻으로 백양사 고불총림을 결성하면서 고불매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부르게 된 나무로 역사성과 학술적인 가치가 크다.


          

무주 삼공리 반송

 

ㅇ 문화재개요

  - 명칭       무주삼공리반송(茂朱 三公里 반송)

  - 분류      자연유산 /천연기념물/생물과학기념물/유전학

  - 수량/면적 1주(248㎡)

  - 지정일    1982.11.04

  - 소재지    전북 무주군 설천면 삼공리 31

  - 소유자    무주군

  - 관리자    무주군


 ㅇ 선정사유

  - 수 십 갈래로 갈라진 붉은 빛 가지가 우산 살 모양으로 뻗어 있고, 그 위에 다시 잔가지를 뻗쳐 푸른 솔잎을 달고 있어 반송 특유의 아치형 가지 뻗음이 마치 일부러 전정을 하여 모양새를 잡아 준 것처럼 아름답다.


ㅇ 문화재설명

  - 반송(盤松)은 소나무의 한 품종으로 소나무와 비슷하지만 밑동에서부터 여러갈래로 갈라져서 원줄기와 가지의 구별이 없고, 전체적으로 우산의 모습을 하고 있다.

  - 무주 설천면 보안마을에서 자라고 있는 이 반송의 나이는 약 350살 정도로 추정되며, 높이는 14m, 뿌리 근처의 둘레는 6.55m이다. 옛날에 이 마을에 살던 이주식(李周植)이라는 사람이 약 150년 전에 다른 곳에 있던 것을 이곳으로 옮겨 심었다고 전해지며, 구천동을 상징하는 나무라는 뜻에서 구천송(九千松), 가지가 아주 많은 나무라 하여 만지송(萬枝松)이라고도 한다.

  - 무주 설천면의 반송은 가지가 부챗살처럼 사방으로 갈라져 반송의 특징을 가장 잘 나타내주고 있으며, 오랜 세월을 자라온 나무로서 생물학적 보존가치가 크므로 천연기념물로 지정·보호하고 있다.

  - 수령(樹齡)은 350여년이며, 나무의 크기는 높이가 14m, 뿌리 근처의 둘레가 6.55m이고, 가지의 길이는 동서 12.9m, 남북 18.3m이다.

  - 소나무는 우리나라 전국에 다양하게 분포하고 있는 수종(樹種)의 하나로 여러 가지 형태를 지닌 것이 나타나고 있다. 그중에서 줄기가 곧게 자라고 옹이가 적은 춘양목이라는 것은 좋은 목재자원 식물(木材資源 植物)로 옛날부터 많이 논의(論議)되어 왔고 또한 재배생산(栽培生産)되어 왔다. 반송(盤松)은 소나무를 닮았으나 밑둥에서부터 여러 가지가 나와 수형(樹形)이 펼쳐놓은 우산같아서 품종명(品種名)이 umbeliformis로 붙여진 것이다. 보통 묘소앞이나 고찰경내(古刹境內)에서 볼 수가 있는 아름다운 관상수(觀賞樹) 이다.

  - 무주(茂朱) 설천면(雪川面)의 반송(盤松)은 우리나라에서는 가장 큰 반송이다. 이 반송을 설천(雪川)에 살았던 주민(住民) 이주식(李周植)이라는 분이 지금으로부터 약 150여년전에 다른 곳에 있던 것을 옮겨 심었다 한다.

                


장흥 삼산리 후박나무

 

ㅇ 문화재개요

  - 종목      천연기념물 제481호

  - 명칭      장흥삼산리후박나무(長興 三山里 후박나무)

  - 분류      자연유산 /천연기념물/생물과학기념물/생물상

  - 수량/면적 3주지정일2007.08.09

  - 소재지    전남 장흥군 관산읍 삼산리 324-8 외

  - 소유자    경주이씨종중

  - 관리자    장흥군(장흥군수)


ㅇ 선정사유

  - 후박나무 3그루가 1그루처럼 가지를 맞이고 있어 나무 속에 들어가면 작은 숲이 연상될 정도이다. 후박나무가 대체로 가지가 넓어 아름답지만 이 후박나무만큼 아름다운 모습은 다른 곳에서 찾기 어렵다.


ㅇ 문화재설명

  - 이 후박나무군은 세 그루가 마치 한 그루처럼 서로 어우러져 있는 노거수들로서 전체 수형이 특이하고 아름다우며, 새 가지도 잘 자라 남부지방에 자라는 후박나무의 대표성을 갖고 있음.  늘푸른 나무이니 일 년 내내 변함없이 넓은 휴식공간을 제공하는 마을의 당산나무다. 키는 세 그루 모두 11m, 줄기 둘레는 큰 나무 둘은 3.1m이며 작은 나무는 2.0m에 이른다. 나이는 400년 정도이다.

  - 산서(山西)마을 입구에 위치해 있는 이 나무는 1580년경 경주이씨 선조가 이곳에 들어올 때 동서남북에 나무를 심었는데 현재 남쪽에 심은 나무만 남아있다는 전설 등으로 볼 때 마을과 그 역사를 같이 해 온 당산나무로서 지금도 마을 주민들의 쉼터로 잘 이용되고 있어 민속·문화적 가치가 큼.



괴산 삼송리 소나무

 

ㅇ 문화재개요

  - 종목      천연기념물 제290호

  - 명칭      괴산삼송리소나무(傀山 三松里 소나무)

  - 분류      자연유산 /천연기념물/문화역사기념물/민속

  - 수량/면적 1주(3,849㎡)

  - 지정일    1982.11.04

  - 소재지    충북 괴산군 청천면 삼송리 산250

  - 소유자    사유

  - 관리자    괴산군


ㅇ 선정사유

  - 용송(龍松)으로 부를만큼 줄기의 뒤틀림이 아름답다. 주위에 10여그루의 아름다운 시녀 소나무를 거느릴 만큼 작은 소나무 왕국의 ‘왕솔’이다.


ㅇ 문화재설명

  - 괴산 청천면의 소나무는 마을에서 300m 정도 떨어진 작은 소나무 숲 가운데 서 있으며 나이는 약 600살 정도로 추정된다. 높이는 13.5m이고, 가슴높이의 둘레는 4.91m이다.

  - 이 숲에서 가장 커서 왕소나무라고 불리며, 줄기의 모습이 마치 용이 꿈틀거리는 것처럼 보인다 하여 용송(龍松)이라고도 한다. 근처에 이와 비슷한 노송 3그루가 있어서 마을 이름을 삼송리라 하였는데, 지금은 왕송만 남아 있다고 한다. 매년 1월에 마을 사람들은 이 나무에 제사를 지내며 새해의 풍년과 마을의 평화를 기원한다고 한다.

  - 괴산 청천면의 소나무는 마을을 지켜주는 당산나무로 오랫동안 주민들의 보호를 받아왔으며 문화적·생물학적 자료로서의 가치가 인정되어 천연기념물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 수령(樹齡)은 600여년이며, 나무의 크기는 높이가 13.5m, 가슴높이의 둘레가 4.91m, 뿌리 근처의 둘레가 5.25m이고, 가지의 길이는 동서 14.92m, 남북 19.9m이다.

  - 도로(道路)에서 500m쯤 떨어졌고 마을에서는 300m정도 떨어진 작은 소나무 숲이며 18그루의 소나무가 자라고 있다. 그 중에서 가장 큰 소나무를 왕소나무라고 한다.

  - 매년 정초(正初)에 온 마을 사람들이 모여서 동제(洞祭)를 지내며 새해의 풍작(豊作)과 행운(幸運)을 기원(祈願)한다고 한다. 따라서 삼송리(三松里) 이구(二區) 사람들이 지키고 있는 서낭림이다.

  - 지상(地上) 5m정도에서 두 개로 갈라지고 하나는 두 개로 갈라져서 퍼졌다.

        


고창 삼인리 송악

 

ㅇ 문화재개요

  - 종목      천연기념물 제367호

  - 명칭      고창삼인리송악(高敞 三仁里 송악)

  - 분류      자연유산 /천연기념물/생물과학기념물/분포학

  - 수량/면적 330㎡

  - 지정일    1991.11.27

  - 소재지    전북 고창군 아산면 삼인리 산17-1

  - 소유자    고창군

  - 관리자    고창군


ㅇ 선정사유

  - 송악은 스스로 설 수 없는 덩굴인데 절벽에 붙어 아주 크게 자라는 모습이 무척 아름답다. 굵기와 길이, 나이에서 남다르다.


ㅇ 문화재설명

  - 송악은 두릅나무과에 속하는 늘푸른 덩굴식물로 줄기에서 뿌리가 나와 암석 또는 다른 나무 위에 붙어 자란다. 잎은 광택이 있는 진한 녹색이고 꽃은 10월에 녹색으로 피며, 열매는 다음해 5월에 둥글고 검게 익는다. 우리나라에서는 서남해안 및 섬지방의 숲속에서 주로 자라고 있다.

  - 고창 삼인리 송악은 선운사 입구 개울 건너편 절벽 아래쪽에 뿌리를 박고 절벽을 온통 뒤덮고 올라가면서 자라고 있으며, 정확한 나이는 알 수 없으나 크기로 보아 적어도 수 백년은 되었으리라 생각된다.

  - 고창 삼인리 송악은 그 크기가 보기 드물 정도로 크고, 고창 삼인리는 송악이 내륙에서 자랄 수 있는 북방한계선에 가까우므로 천연기념물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선비 나무



금산 요광리 은행나무         

 

ㅇ 문화재개요

  - 종목      천연기념물 제84호

  - 명칭      금산요광리은행나무(錦山 要光里 은행나무)

  - 분류      자연유산 /천연기념물/문화역사기념물/민속

  - 수량/면적 1주3,833㎡

  - 지정일    1962.12.03

  - 소재지    충남 금산군 추부면 요광리 329-8

  - 소유자    금산군

  - 관리자    금산군


ㅇ 선정사유

  - 둥그스름한 공 모양으로 주변 정자와 더불어 독특한 경관을 보이며 조선시대 김종직과 이이의 문집에도 ‘진산(珍山)의 은행정에 큰 나무가 있다’는 기록이 있어 학자들과 함께한 나무이다.


ㅇ 문화재설명

  - 은행나무는 살아 있는 화석이라 할 만큼 오래된 나무로 우리나라, 일본, 중국 등지에 분포하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중국에서 유교와 불교가 전해질 때 같이 들어온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가을 단풍이 매우 아름답고 병충해가 없으며 넓고 짙은 그늘을 제공한다는 장점이 있어 정자나무 또는 가로수로도 많이 심는다.

  - 금산 요광리 은행나무는 나이가 약 1,000살 정도로 추정되며, 높이 24m, 가슴높이 둘레 12.93m이다. 줄기가 썩어서 동굴처럼 비어 있고 사방으로 자란 가지 중에 남쪽 및 동쪽의 가지는 부러졌는데 그 가지로 3년 동안 밥상을 만들고 관 37개를 만들어 마을 주민이 나누어 가졌다고 한다.

  - 500년 전 이 마을에서 살던 오씨(吳氏)의 조상이 전라감사(현 전라도지사)로 있을 때 나무 밑에 정자를 짓고, 은행나무 정자라는 뜻의 행정(杏亭)이라고 불렀는데 금산 행정의 은행나무란 이름이 이렇게 생겼다. 현재는 행정헌(杏亭軒)이라는 육각정자가 있다. 전설에 의하면 머리가 둔한 아이를 밤중에 이 나무 밑에 한 시간쯤 세워두면 머리가 좋아진다고 하며, 잎을 삶아서 먹으면 노인의 해소병이 없어지고, 나무에 정성 들여 빌면 아들을 낳는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 외에도 나라와 마을에 무슨 일이 생기면 소리를 내어 알려준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이와 같은 전설을 믿는 사람들은 음력 정월 초사흗날 자정에 나무 밑에 모여 새해의 행운을 빌었다고 한다.

  - 금산 요광리 은행나무는 오랜 세월 동안 조상들의 생활과 문화 속에서 살아온 나무로 문화적 자료로서의 가치와 오래되고 큰 나무로서 생물학적인 가치도 높아 천연기념물로 지정·보호하고 있다.

  - 수령(樹齡)은 1000년이며, 나무의 크기는 높이가 24m, 가슴높이의 둘레가 12.93m이다. 가지의 길이는 동서가 21.8m, 남북이 24.1m이다. 마을에서 200m쯤 떨어진 앞에 서 있으며 100m쯤 앞에 시내가 있고 500m쯤 나아가면 도로가 있다. 이름 그대로 정자목(亭子木)으로서 마을 앞에 우뚝 서 있다. 지상(地上) 3m 정도 올라가서 4개로 갈라져서 자라다가 3개는 부러져 나가고 1개만이 남아 있다.

  - 전하는 바에 의하면 남쪽 가지는 100여년전 바람에 의하여 부러졌다 한다. 부러진 가지의 길이는 30m이었고 이것을 판자로 켠 넓이는 3사람이 누워서 잘 수 있었다 한다. 그리고 여기서 켠 판자로 3년동안 밥상을 만들었다 한다. 동북(東北)쪽 가지는 80여년전 강한 바람에 부러졌는데 길이가 40m로서 관(棺)을 37개 만들어서 부락민이 나누어 가졌다하며 동쪽 가지는 8·15후 태풍에 부러졌는데 혼란한 시기어서 적절한 처리가 어려웠다 한다. 가슴높이의 둘레는 12.93m이지만 부러진 가지가 떨어져 나간 부분을 더하면 16.43m로서 가슴높이의 크기에 있어서는 가장 큰 나무이다.

  - 500년전 이 부락에서 살고 있는 오씨(吳氏)의 선조(先祖)께서 전라감사(全羅監司)로 계실 때에도 은행나무의 크기가 지금과 비슷하였다고 한다. 따라서 이 나무 밑에 정자(亭子)를 짓고 이를 행정(杏亭)이라고 불렀다. 금산(錦山) 행정(杏亭)의 은행나무란 이름이 이렇게 생겼다.

  - 이 나무의 잎을 삶은 물을 마시면 해소병이 없어지고 이 나무에 치성을 드리면 아들을 낳을 수 있다거나 무더운 여름 밤에 개를 데리고 이 나무 밑에서 자고 있었는데 지나가던 호랑이가 도망을 쳤다거나 머리가 둔한 애들을 밤중에 이 나무 밑에서 한시간쯤 세워두면 머리가 좋아진다는 등의 전설이 남아 있다.

  - 이같은 전설을 믿고 있는 마을 사람들은 음력 1월 3일 자정(子正)에 이 나무 밑에 모여서 새해의 행운(幸運)을 빌어왔다고 한다.




제주 산천단 곰솔

 

ㅇ 문화재개요

  - 종목      천연기념물 제160호

  - 명칭      제주 산천단 곰솔 군(濟州 山川壇 곰솔 群)

  - 분류      자연유산 /천연기념물/문화역사기념물/민속

  - 수량/면적 8주7,253㎡

  - 지정일    1964.01.31

  - 소재지    제주 제주시 아라동 375-1

  - 소유자    제주시

  - 관리자    제주특별자치도


ㅇ 선정사유

  - 옛날 제주에 부임한 목사는 매년 산천단(山川壇)이 있는 백록담까지 올라가서 산신제를 모셨는데 산길이 험하여 백성들의 고생이 심하자 조선 성종1년(1470) 이약동 목사가 부임하면서 과감하게 이곳에 산천단을 새로 만들고 제사를 지내며 심은 곰솔들이다.    


ㅇ 문화재설명

  - 곰솔은 소나무과로 잎이 소나무 잎보다 억세기 때문에 곰솔이라고 부르며, 소나무의 겨울눈은 붉은색인데 반해 곰솔은 회백색인 것이 특징이다. 바닷가를 따라 자라기 때문에 해송(海松)으로도 부르며, 또 줄기 껍질의 색이 소나무보다 검다고 해서 흑송(黑松)이라고도 한다. 바닷바람과 염분에 강하여 바닷가의 바람을 막아주는 방풍림(防風林)이나 방조림(防潮林)으로 많이 심는다.

  - 제주시 곰솔은 나이가 500∼600년 정도로 추정되며, 평균높이는 29.7m, 평균둘레는 4.35m이다. 이곳에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것 외에도 8그루의 곰솔이 더 있으며, 주변에는 팽나무, 예덕나무, 멀구슬나무 등이 있다.

  - 예로부터 제주에서는 한라산 백록담에 올라가 하늘에 제사를 지냈는데, 가는 길이 험하고 날씨가 나쁠 때에는 이 곰솔이 있는 산천단(山川壇)에서 제사를 올렸다 한다. 예전의 우리 조상들은 하늘에 있는 천신이 인간세상에 내려올 때는 큰 나무에서 잠시 쉬어 내려 온다고 믿어 왔으며, 마을 사람들은 이 곰솔도 신이 땅으로 내려오는 통로에 있는 나무라고 믿어 신성시 여겨 잘 보호되어 온 것으로 보인다.

  - 제주시 곰솔은 매우 오래되고 큰 소나무로서 생물학적 가치가 크고, 우리 조상들이 자연물에 대해 어떠한 생각을 하고 있었는가를 알 수 있는 자료로서의 가치가 매우 크므로 천연기념물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 수령은 500-600년이며, 가장 큰 나무의 크기는 높이 29.7m, 가슴높이의 둘레 4.35m이다.

  - 곰솔은 흔히 해송으로도 말하며 소나무과에 속하고 높게 자라는 상록침엽교목이다. 우리나라에 있어서는 소나무와 함께 쌍유관속아속(雙維管束亞屬)에 포함되고 주로 남쪽 해안지대에 분포하고 있고 내륙지방에서는 보기 힘들다. 가지 끝에 형성되는 겨울눈의 색깔이 희어서 붉게 보이는 소나무와 쉽게 구별이 된다.

  - 제주시의 곰솔은 산천단(山川壇)으로 부르고 있는 곳에 서있는데 제주시에서 서귀포로 향하는 제1횡단도로로 따라 약 8㎞를 가면 큰 곰솔이 8주 무리지어 있다.

  - 예전에는 제주목(濟州牧)이 한라산을 올라 백록담(白鹿潭)에서 하늘에 제를 올렸지만 길이 험준하고 일기가 불순하여 그 시행이 어려웠으므로 가까운 곳에 산천단을 설립해서 천제를 올렸다고 한다. 하늘에 있는 신이 인간사회에 내려올 때에는 제관이 마련되어 있는 근처의 큰나무에 일단 내려와서 안정한다는 것을 믿어 왔었다. 그래서 생각되는 것은 이곳 곰솔들도 산천단 천제와 관련해서 천신의 하강통로의 역할이 부여된 것이 아닌가 한다. 그래서 이 곰솔들이 오랫동안 잘 보존된 것으로 믿어진다.

  - 큰 곰솔은 나이 500년 이상으로 추정되고 당당한 모습을 지니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보다 더 큰 곰솔을 찾기 어려울 것이다.



창덕궁 향나무         

 

ㅇ 문화재개요

  - 종목      천연기념물 제194호

  - 명칭      창덕궁향나무(昌德宮 향나무)

  - 분류      자연유산 /천연기념물/문화역사기념물/기념

  - 수량/면적 1주314㎡

  - 지정일    1968.03.04

  - 소재지    서울 종로구 와룡동 2-71 창덕궁

  - 소유자    국유

  - 관리자    국유


ㅇ 선정사유

  - 궁궐을 통틀어 가장 오래 살고 있는 생명체는 창덕궁의 터줏대감인 이 향나무다. 정조가 선대 임금들의 유훈(遺訓)을 보관하려고 지은 봉모당(奉謨堂) 뜰 앞에 서 있다.


ㅇ 문화재설명

  - 향나무는 우리나라 중부 이남을 비롯해 울릉도와 일본 등에 분포하고 있으며, 상나무·노송나무로도 불린다. 이 나무는 강한 향기를 지니고 있어 제사 때 향을 피우는 재료로도 쓰이며 정원수·공원수로 많이 심는다.

  - 창덕궁의 향나무는 나이가 약 700살 정도로 추정되며, 높이 12m, 뿌리부분 둘레 5.9m이다. 가지는 동서남북으로 1개씩 뻗어나갔는데 남쪽 가지는 잘라졌고, 북쪽 가지는 죽었으며, 동쪽 가지는 꼬불꼬불한 기형으로 자랐다. 나무의 모양은 마치 용(龍)이 하늘을 오르는 모습처럼 생겼다.

  - 창덕궁은 조선 태종 4년(1404)에 왕실의 별궁으로 지었는데, 별궁을 지은 다음 어느 정도 자란 커다란 나무를 심었을 것이라고 생각해서 나무나이를 700년이라 추정한 것이다.

  - 창덕궁의 향나무는 오랜 세월동안 조상들의 관심과 보살핌 가운데 살아온 나무로 문화적 자료로서의 가치가 높아 천연기념물로 지정·보호하고 있다.

  - 수령(樹齡)은 700여년이며, 나무의 크기는 높이가 12m, 뿌리부분의 둘레가 5.9m이고, 가지의 길이는 동서 12.2m, 남북 7.5m로 퍼져있다.

  - 창덕궁(昌德宮)은 태종(太宗) 4년(1404년)에 왕실(王室)의 별궁(別宮)으로 창건(創建)된 것이다. 창덕궁(昌德宮)의 향나무는 창덕궁 창건후(昌德宮 創建後) 상당히 큰 향나무를 다른 곳에서 창덕궁내(昌德宮內)로 옮겨 심었다고 가정하고 이 나무의 수령(樹齡)을 700년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 『창덕궁(昌德宮)은 조선시대(朝鮮時代)에 있어서 고관대작(高官大爵)이라 하더라도 임금님이 부르실때만 비로소 들어갈 수 있었던 곳이었다.』이 향나무는 궁안에서 왕가(王家) 여러분의 사랑을 독차지하면서 왕가(王家)의 온갖 화려한 모습을 보고 지내왔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나무가 동서(東西)로 왕성하게 자라고 있어 마치 용(龍)이 하늘을 오르는 것 같이 보인다.

  - 원래 향나무의 목재는 향불용으로 쓰이었고 옛날에는 울릉도에서 자란 향나무 즉 닭의 울음소리도 듣지 않고 자란 울릉향으로 제사용 향을 피우는 자(者)가 가장 효자(孝子)라는 말을 들었다 한다.



서울 문묘 은행나무

 

ㅇ 문화재개요

  - 종목      천연기념물 제59호

  - 명칭      서울 문묘 은행나무(서울 文廟 은행나무)

  - 분류      자연유산 /천연기념물/문화역사기념물/종교

  - 수량/면적 1주12,383㎡

  - 지정일    1962.12.03

  - 소재지    서울 종로구 명륜동 3가 53

  - 소유자    국유

  - 관리자    서울시


ㅇ 선정사유

  - 서울 명륜동 성균관대학교 안 공자의 신주를 모시는 문묘에 4그루 중 입구 쪽의 한 나무이다. 공자가 제자를 가르친 행단(杏壇)의 제도를 본 따서 은행나무를 심은 것으로 보인다.


ㅇ 문화재설명

  - 은행나무는 살아 있는 화석이라 할 만큼 오래된 나무로 우리나라, 일본, 중국 등지에 분포하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중국에서 불교와 유교가 전해질 때 같이 들어온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가을 단풍이 매우 아름답고 병충해가 없으며 넓고 짙은 그늘을 제공한다는 장점이 있어 정자나무 또는 가로수로도 많이 심는다.

  - 서울 문묘의 은행나무는 나이가 약 400살 정도로 추정되며, 높이 26m, 가슴높이 둘레 12.09m에 이르는 웅장한 나무로 가지 발달이 왕성하고, 유주(乳柱)가 잘 발달되어 주목을 받고 있다.

  - 이 은행나무는 성균관대 근처에 있는 문묘(文廟)의 명륜당(明倫堂) 경내에 서 있는데, 임진왜란(1592) 당시 불에 타 없어졌던 문묘를 다시 세울 때(1602)에 함께 심어진 것으로 생각된다.

  - 서울 문묘의 은행나무는 오랜 세월 동안 조상들의 관심과 보살핌 가운데 살아온 나무로 생물학적·문화적 자료로서의 가치가 높아 천연기념물로 지정·보호하고 있다.

  - 수령(樹齡)은 400년이며, 나무의 크기는 높이가 26m, 가슴높이의 둘레가 12.09m이다. 가지의 길이는 동서로 26.8m, 남북으로 27.2m이다.

  - 우리나라에서 은행나무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것은 19점에 이르는데 그 중 이 문묘의 은행나무는 유주(乳柱)를 잘 발달시키고 있는 유일한 존재라는 점에서 주목을 받고 있다. 유주는 일종의 기근(氣根)이라고 믿어지는데 일본에서는 더 흔하고 그 발달도 현저하나 우리나라에 있어서는 그러하지 못하다.

  - 이 은행나무는 성균관대학교에 가까운 문묘(文廟)의 명륜당(明倫堂) 경내에 자라고 있다. 몸집이 웅장하고 가지의 발달이 왕성해서 넓은 수관폭을 가지고 있다. 명륜당은 선조(宣祖) 39년(1606년)에 세워졌고 그 앞에 서 있는 대성전(大成殿)은 이보다 4년 앞서 세워졌다. 그리고 문묘 자체는 태조 7년(1398년)에 창건되었으나 임진왜란까지 기록이 있다.

  - 이 은행나무는 화재를 입은 흔적이 있다. 조선 중종 14년(1519)에 대사성 윤탁이 심었다는 설도 있으나 확실하지 않고, 문묘가 창건된 뒤에 심어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약 60년전의 기록에 의하면 경학원(經學院) 경내에 4그루의 거대한 은행나무가 있었다고 한다.


        

함양 학사루 느티나무         

 

ㅇ 문화재개요

  - 종목      천연기념물 제407호

  - 명칭      함양학사루느티나무(咸陽 學士樓 느티나무)

  - 분류      자연유산 /천연기념물/문화역사기념물/기념

  - 수량/면적 1주(4,486㎡)

  - 지정일    1999.04.06

  - 소재지    경남 함양군 함양읍 운림리 27-1번지

  - 소유자/관리자   함양교육청


ㅇ 선정사유

  - 조선초 김종직이 함양군수로 있을 때 학사루 앞에 오래 사는 나무로 널리 알려진 느티나무 한 그루를 기념으로 심은 것이다.


ㅇ 문화재설명

  - 느티나무는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일본, 대만, 중국 등의 따뜻한 지방에 분포하고 있다. 가지가 사방으로 퍼져 자라서 둥근 형태로 보이며, 꽃은 5월에 피고 열매는 원반모양으로 10월에 익는다. 줄기가 굵고 수명이 길어서 쉼터역할을 하는 정자나무로 이용되거나 마을을 보호하고 지켜주는 당산나무로 보호를 받아왔다.

  - 함양 학사루(學士樓)의 느티나무는 약 500년 정도 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높이 22.2m, 둘레 7.25m의 크기이다. 점필재 김종직 선생이 함양현감으로 있을 때 학사루 앞에 심었다고 한다. 조선 초기의 대학자 김종직은 함양군수로서 임기가 거의 끝나갈 때 즈음, 마흔이 넘어 얻은 5살짜리 아들을 홍역으로 잃어버린다. 어린 자식을 잃은 다음해인 1475년, 정3품 통훈대부로 승진하여 함양을 떠난다. 그는 학사루 앞에 오래 사는 나무로 널리 알려진 느티나무 한 그루를 기념으로 심고, 부모 가슴에 못을 박고 훌쩍 가버린 아이의 짧은 삶에 대한 아쉬움을 달랬을 것으로 짐작해 본다. 그로부터 세월은 흘러 530년, 나무는 키 22m, 줄기 둘레 7.3m의 거대한 크기로 자랐다.       

  - 함양 학사루의 느티나무는 함양의 역사가 깃들어 있는 귀중한 자료로서 가치가 높아 천연기념물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경주 독락당 조각자나무      

 

ㅇ 문화재개요

  - 종목      천연기념물 제115호

  - 명칭      경주독락당조각자나무(慶州 獨樂堂 조각자나무)

  - 분류      자연유산 /천연기념물/문화역사기념물/종교

  - 수량/면적 1주30㎡

  - 지정일    1962.12.03

  - 소재지    경북 경주시 안강읍 옥산리 1600

  - 소유자    경주시

  - 관리자    경주시


 ㅇ 선정사유

  - 조선 중종 때의 문신 이언적은 중종 27년(1532)년 잠시 낙향하여 지금의 독락당(獨樂堂)을 짓고 은거 하면서, 건물 뒤뜰에다 조각자나무라는 특별한 약나무 몇 그루를 심는다. 중국을 다녀오는 친구로부터 종자를 얻어 심은 것으로 보이며 다른 나무는 없어지고 지금의 이 나무만 홀로 살아남았다.


ㅇ 문화재설명

  - 독락당의 조각자나무는 나이가 약 470년 정도로 추정되며, 높이 14.5m, 둘레 4.90m(62cm높이)이다. 이 나무는 옥산서원(玉山書院)의 독락당 울타리 안에서 자라고 있으며, 주변은 감나무로 둘러싸여 있다. 나무의 모습은 매우 아름다우나 밑부분과 2개의 가지만 살아있고 대부분 썩어 나무의 상태는 좋지 않은 편이다. 이 나무는 조선 중종 27년(1532) 회재 이언적이 잠시 벼슬을 그만두고 고향으로 내려와 독락당을 짓고 학문에 전념할 때 중국에 사신으로 다녀온 친구로부터 종자를 얻어 심은 것이라고 전해진다.

  - 독락당의 조각자나무는 오래되고 희귀한 나무로서 생물학적 보존 가치가 클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와 중국과의 교류관계와 독락당의 역사를 알려주는 문화적 가치도 크므로 천연기념물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 수령(樹齡)은 470년이며, 나무의 크기는 높이가 14.5m, 가슴높이의 둘레 4.90(62cm높이)이다. 수관폭은 동-서 16.4m, 남-북 14.0m이다. 높이 15m에 달하는 콩과식물이며 중국산이다. 잎은 어긋 나고 소엽(小葉)은 타원형 내지 피침형이고 가장자리에 파상(波狀)의 둔한 톱니가 있으며 털이 다소 있다. 꽃은 6월에 피고 희며 고투리는 편평하며 길이 20-30㎝로서 곧고 쪼개면 매운 냄새가 난다. 원줄기에 길이 10㎝, 지름 1㎝정도의 갈라진 가시가 있다. 종자와 가시를 모두 약용으로 한다.

  - 이 나무는 독락당(獨樂堂) 울안에서 자라고 있다. 나무를 중심으로 동 5.80m, 서 6.20m, 남 6.90m, 북 6.50m의 거리에 높이 약 1.56m∼1.66m의 방형의 담이 둘러싸고 있다. 서쪽 담 밖 1m 거리에 약 높이 2m의 무화과와 음나무, 4m의 모과나무, 6m의 감나무가 있다. 남쪽 담 밖 1m에는 감나무와 석류, 주엽나무가 있다. 밑부분과 두 개의 가지가 살아 있을 뿐이며 나머지는 거의 썩었다. 독락당(獨樂堂)은 옥산서원(玉山書院)보다 100여년 전에 건축되었다고 하며 그 뒤뜰에서 조각자나무가 자라고 있다.

  - 옥산서원은 회재 이언적(晦齋 李彦迪)선생을 모신 곳이며 이 마을에서 사는 300여호 중에서 200여호가 회재선생의 후손인 여강 이씨(驪江 李氏)라고 한다. 서원은 옥계(玉溪)라고 하는 냇가에 자리잡고 있으며 주위에는 느티나무, 은행나무 및 이팝나무 등의 늙은 나무가 있고 밑에서 자라는 해변싸리가 특히 눈에 뛴다.

  - 회재선생은 의정부(議政府) 좌찬성(左贊成)이었으나 정미사화(丁未士禍)때 간신들에게 몰려서 강계(江界)로 유배되어 돌아가셨다. 만년(晩年)의 대부분을 여기서 지냈다고 한다. 회재선생은 중국(中國)에 간 일이 없으므로 중국사절(中國使節)로 다니던 친구한테 받은것이라고 보고 있다. 강계(江界)로 유배된 것이 정미사화(丁未士禍)가 일어난 1547년이었으므로 450여년 이상이란 생각이 든다.

 

나라지킴이 나무


광양읍수와 이팝나무          

 

ㅇ 문화재개요

  - 종목      천연기념물 제235호

  - 명칭      광양읍수와이팝나무(光陽邑藪와 이팝나무)

  - 분류      자연유산 /천연기념물/문화역사기념물/기념

  - 수량/면적 30,766㎡

  - 지정일    1971.09.13

  - 소재지    전남 광양시 광양읍 인동리 193-1 외

  - 소유자    국유,사유

  - 관리자    광양시


 ㅇ 선정사유

  -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50여 년 전인 1547년, 광양현감으로 내려온 박세후는 노략질을 하러온 왜구에 대비하여 광양읍이 보이지 않게 이곳에다 연못을 파고 나무를 심어 현재의 광양읍수가 되었다.   


ㅇ 문화재설명

  - 이팝나무란 이름은 꽃이 필 때 나무 전체가 하얀꽃으로 뒤덮여 이밥, 즉 쌀밥과 같다고 하여 붙여진 것이라고도 하고, 여름이 시작될 때인 입하에 꽃이 피기 때문에 ‘입하목(立夏木)’이라 부르다가 이팝나무로 부르게 되었다고도 한다. 곳에 따라서는 이팝나무의 꽃이 활짝 피면 풍년이 든다는 얘기도 있다.

  - 광양 유당공원의 이팝나무는 나이가 알려지지 않았고 높이는 18m, 가슴높이의 둘레는 3.42m이다. 나무의 줄기가 중간에서 크게 둘로 갈라져 전체적으로 아름다운 모양을 하고 있다. 다른 이팝나무에 비해 균형잡힌 모습을 가지고 있다.

  - 유당공원은 조선 명조(재위 1545∼1576) 때 광양읍성(光陽邑城)을 쌓고, 멀리 바다에서 보이지 않도록 하기 위해 나무를 심었던 곳이다. 성(城)은 없어졌으나 팽나무, 느티나무, 이팝나무 등 당시에 자라던 나무들이 남아 있다. 그 중의 하나가 이 이팝나무이다. 처음에 나무를 심을 때는 성이 보이지 않게 하기 위한 군사보안림이었으나, 태풍으로 풍수해가 큰 지역이므로 바람의 피해를 막는 방풍림의 역할도 하게 되었다. 그 역할이 커서 지금까지 잘 보호해 왔으리라고 생각된다.

  - 광양 유당공원의 이팝나무는 우리 조상들의 군사적 문화 및 바닷바람을 막는 지혜를 볼 수 있는 문화적 자료가 되고, 이팝나무로서는 매우 크고 오래된 나무로서 생물학적 보존가치도 크므로 천연기념물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 수령(樹齡)은 알 수 없으나 광양읍성(光陽邑城) 축조 후에 심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나무의 크기는 높이가 18m, 가슴높이의 둘레가 3.42m로서 1.9m 높이에서 2개로 갈라졌으며 갈라진 부분의 밑둘레는 2.3m 및 2m이다. 물푸레나무과의 낙엽교목(落葉喬木)이며 잎은 마주 나고 난상타원형(卵狀楕圓形) 또는 도란형(倒卵形)이며 가장자리가 밋밋하지만 어린 나무는 톱니가 있다. 꽃은 5-6월 아까시나무 꽃이 필 때 피며 백색(白色)이고 원추형으로 배열한다. 열매는 핵과(核果)이며 길이 1-1.5㎝로서 9-10월에 검은 하늘색으로 익는다. 농민(農民)들은 꽃 피는 상태에 따라서 흉년(凶年)과 풍년(豊年)을 점(占)치고 있다.

  - 나무의 크기에 있어서는 우리나라에서 자라는 이팝나무 중에서 넷째이지만 싱싱한 수세(樹勢)와 균형 잡힌 수형(樹形)은 첫째로 꼽히고 있다.

  - 유당공원(柳唐公園)은 조선(朝鮮)때에 광양읍성(光陽邑城)을 쌓고 먼 바다에서 보이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나무를 심었던 곳이다. 성(城)은 없어졌으나 팽나무, 느티나무 및 이팝나무 등 당시에 자라던 나무들은 남아 있다. 그 중의 하나가 이 이팝나무이다.

  - 이 지역(地域)은 우리나라에 있어서 태풍(颱風)의 상륙지(上陸地)이므로 때로 풍수해(風水害)가 심하였다. 기록에 보면 1925년, 1933년 그리고 특히 1936년에는 초속(秒速) 32m의 강풍에 의한 해(害)가 컸었다. 따라서 이 숲은 방풍림(防風林)의 역할(役割)을 하게 되어 잘 보호되었으나 지금은 몇 나무만이 남아 있을 따름이다.



남해 창선도 왕후박나무              

 

ㅇ 문화재개요

  - 종목      천연기념물 제299호

  - 명칭      남해창선도왕후박나무(南海 昌善島 왕후박나무)

  - 분류      자연유산 /천연기념물/문화역사기념물/민속

  - 수량/면적 1주(707㎡)

  - 지정일    1982.11.04

  - 소재지    경남 남해군 창선면 대벽리 669-1

  - 소유자    남해군

  - 관리자    남해군


ㅇ 선정사유

  - 이 나무는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이 일본군과 힘겨운 싸움을 벌이는 틈틈이 병사들과 함께 쉬어간 나무로 알려져 있다. 격전지인 사천, 당포해전 터가 가까우며, 장군이 전사한 노량 입구가 가물가물 내려다보이는 넓은 들판의 가운데 자란다.


ㅇ 문화재설명

  - 후박나무는 녹나무과에 속하며 제주도와 울릉도 등 따뜻한 남쪽 섬지방에서 자라는 나무로 일본, 대만 및 중국 남쪽에도 분포하고 있다. 주로 해안을 따라 자라며 껍질과 열매는 약재로 쓰인다. 나무가 웅장한 맛을 주고 아름다워서 정원수, 공원수 등에 이용되고 바람을 막기 위한 방풍용으로도 심어지고 있다.

  - 마을 앞 농경지 안에서 자라고 있는 남해 창선면의 왕후박나무는 나이가 500년 정도로 추정되며 높이는 8.6m로 가지는 밑에서 11개로 갈라져 있다. 전하는 이야기에 의하면 약 500년 전 이 마을에서 고기잡이를 하는 노부부가 어느 날 큰 고기를 잡았는데 고기의 뱃속에 씨앗이 있었다. 이상해서 씨를 뜰에 뿌렸더니 지금의 왕후박나무가 되었다는 것이다. 마을 사람들은 이 나무를 신성스럽게 여겨 매년 마을의 평안과 왕성한 고기잡이를 위해 제사를 지내고 있다.

  - 남해 창선면의 왕후박나무는 오랜 세월동안 조상들의 관심과 보살핌 가운데 살아온 나무로 민속적·문화적·생물학적 보존가치가 높아 천연기념물로 지정하였다.

  - 수령(樹齡)은 500여년이며, 나무의 크기는 높이가 8.6m, 11개 줄기의 가슴높이 주간 둘레가 1.1m-2.8m이고, 수관폭은 동-서 16.1m, 남-북 19.5m이다.

  - 왕후박나무는 녹나무과에 속하는 상록활엽교목이고 거대한 몸집을 가진다. 후박나무의 변종인 왕후박나무는 그 잎이 비교적 더 넓다. 잎은 가지 끝에 모여나는 모양을 갖추고 핵질이며 진한 녹색으로 광택이 있다. 잎의 가장자리에는 거치가 없다. 가지가 잘 갈라져서 빽빽한 수관을 형성하고 수피는 회백색 또는 회황색이고 어린가지는 녹색이다. 후박나무는 수성이 원래 강인하고 뿌리가 깊게 들어가 바람의 해가 적고 해안가에 잘 자란다.

  - 이 나무는 대벽리 단항(丹項) 마을 앞 밭으로 된 농경지 안에 서 있고 이 나무 아래를 지나가는 농로(農路)가 있으며 가까운 거리에 푸른 남쪽바다가 보인다. 줄기 아랫쪽부터 갈라져서 11개의 줄기가 무더기로 자라고 있는 모습인데 확장된 수관을 형성하고 있으며 대단히 장엄하게 보이는 당당한 풍채의 수형이다.

  - 전설에 의하면 약 500년전 이 마을에 늙은 부부가 살고 있었고 고기잡이가 직업이었다. 어느날 이 부부는 큰 고기 한 마리를 잡았는데 그 뱃속에 씨앗이 들어 있었다. 이상하게 여겨서 이 씨를 뿌렸더니 이곳 왕후박나무가 되었다는 것이다. 동네사람들은 해마다 이 나무에 당제(堂祭)를 올리고 평안과 풍어를 빌고 있다. 또 전해오고 있는 말에 임진왜란때 이순신장군이 왜적을 무찌르고 이 나무 아래에서 휴식의 시간을 가졌다는 것이다.



 강진 삼인리 비자나무 

 

ㅇ 문화재개요

  - 종목      천연기념물 제39호

  - 명칭      강진삼인리비자나무(康津 三仁里 비자나무)

  - 분류      자연유산 /천연기념물/문화역사기념물/기념

  - 수량/면적 1주2,248㎡

  - 지정일    1962.12.03

  - 소재지    전남 강진군 병영면 삼인리 376

  - 소유자    강진군

  - 관리자    강진군


ㅇ 선정사유

  - 조선 태종 17년(1417) 백제 때부터 있던 옛 성곽을 고치고 병영(兵營)을 만들어 왜구의 침입에 대비하였다. 성을 쌓으면서 수많은 나무를 베었지만 비자나무의 열매는 기생충을 없애주는 특효약이어서 베지 않고 군사들의 건강지킴이 나무가 되게 하였다.


ㅇ 문화재설명

  - 비자나무는 우리나라의 내장산 이남과 일본에서 자란다. 나무의 모양이 아름다워 관상용으로 많이 이용되며, 열매는 구충제 및 변비 치료제나 기름을 짜는데 쓰인다.


  - 병영면의 비자나무는 나이가 약 500살 정도로 추정되며, 높이 11.5m, 가슴높이 둘레 5.8m의 크기이다. 지상 1.5m 부근에서 커다란 가지가 넷으로 갈라졌다. 이 나무가 500여 년 동안이나 벌채를 피해 자랄 수 있었던 것에 대해서는 두 가지 견해가 있다. 첫째는 태종 17년(1417)에 이 곳에 전라병마절도사영을 설치하기 위해 주변의 쓸만한 나무는 모조리 베었으나, 당시 이 나무는 키가 작고 휘어서 건축용 목재로 부적당하였기 때문에 오늘날까지 살아남게 되었으리라는 견해와, 둘째는 당시 이 나무의 열매는 기생충을 구제하는 유일한 약이었기 때문에 이 곳 사람들의 보호를 받아왔을 것이라고 보는 견해이다.

  - 마을 사람들은 이 나무를 마을을 지키는 수호신으로 여겨 매년 음력 1월 15일에 나무 주위를 돌면서 마을의 평안을 빌고 있으며, 한여름에는 더위를 식혀 주는 피서처가 되기도 한다. 이와 같이 병영면의 비자나무는 오랜 세월동안 마을 사람들의 관심과 보살핌 속에 살아온 역사적·문화적 자료로서의 가치가 높아 천연기념물로 지정·보호하고 있다.

  - 수령(樹齡)은 500년이며, 나무의 크기는 높이가 11.5m, 가슴높이의 둘레가 5.8m이다. 수관폭은 동·서가 10.8m이며, 남·북이 15.9m이다.

  - 주목과(朱木科)의 상록침엽수(常綠針葉樹)로서 높이 20m에 달하고 가슴높이의 둘레 6m 정도 자란다. 비자나무의 가지는 사방으로 퍼지며, 잎은 호생(互生)하지만 밑부분이 비틀려서 두줄로 배열하고 딱딱하며, 끝이 뾰족하고 표면은 짙은 녹색이고 뒷면은 갈색이지만 주맥과 가장자리는 녹색이다. 꽃은 암수 딴 꽃이며 수꽃은 엽액에 달리고 암꽃은 가지 끝에 2-3개씩 달린다. 열매는 도란형 또는 타원형이며 9-10월에 익는다. 종자는 약용 또는 식용으로 하고 기름을 생산한다.

  - 북향의 경사지에서 밑을 향하여 자라며 뒷면과 옆은 대나무밭으로 되어있다. 비자나무 밑에는 자주괴불주머니가 특히 눈에 띈다.

  - 이 나무의 유래는 태종(太宗) 17년(1417)에 전라도(全羅道) 병마절도사영(兵馬節都使營)을 이곳에 설치하기 시작하면서 심어졌다고 한다.

  - 조선(朝鮮) 500년 동안 호남지방(湖南地方)의 진수부(鎭守府)로 내려오던 병영성(兵營城)이 동학군(東學軍)에 함락되어 폐영(廢營)될 때까지 많은 군사적 사건들이 있었으나 열매를 약용으로 하였기 때문에 잘 보호되어 온 것 같다.

  - 현재는 마을의 수호목으로 되어 있다.



의령 세간리 현고수(느티나무) 

 

ㅇ 문화재개요

  - 종목      천연기념물  제493호 

  - 명칭      의령 세간리 현고수(느티나무)(宜寧 世干里 懸鼓樹(느티나무)) 

  - 분류      자연유산 /천연기념물/생물과학기념물/생물상 

  - 수량/면적 1주

  - 지정일    2008.03.12

  - 소재지    경남 의령군  유곡면 세간리 1000 

  - 소유자    의령군

  - 관리자    의령군


 ㅇ 선정사유

  - 높이 5m쯤에서 굵은 가지 하나가 옆으로 뻗어 ㄱ자의 매우 독특한 모양을 가지고 있다. 임진왜란 때 의병대장 곽재우가 여기에다 북을 걸어두고 의병을 모아 군사 훈련을 시켰다고 하며, '북을 매단 나무' 란 뜻의 현고수(懸鼓樹)로 더 잘 알려져 있다.


ㅇ 문화재설명

  - 느티나무는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일본, 대만, 중국 등의 따뜻한 지방에 분포하고 있다. 꽃은 5월에 피고 열매는 원반모양으로 10월에 익는다. 예전부터 우리나라 마을에는 대개 큰 정자나무가 있었는데 가장 뛰어난 기능을 했던 것이 느티나무였다.

  - 세간마을 앞에 있는 현고수(懸鼓樹)는 느티나무로, 나이는 520여 년 정도로 추정되며, 높이는 15m, 둘레는 7m이다.

  - 현고수는 북을 매던 나무라는 뜻으로 임진왜란(1592) 때 곽재우 장군이 이 느티나무에 큰 북을 매달아 놓고 치면서 전국 최초로 의병을 모아 훈련시켰다는 전설에서 나온 말이다.

  - 현고수는 임진왜란 때 의병이 처음으로 일어난 곳이라 할 수 있고, 해마다 열리는 의병제전 행사를 위한 성화가 이곳에서 채화되고 있다.

  - 이 나무는 느티나무로서 가슴높이의 줄기둘레 7m, 키가 15m에 달하며 나이는 약 520여년 정도이다. 이 느티나무가 현고수(懸鼓樹)라는 별칭으로 불리게 된 데에는 다음과 같은 연유가 있다. 조선(朝鮮) 선조(宣祖) 25년(1592) 4월 13일 왜적이 부산포(釜山浦)에 침입하자 당시 41세의 유생(儒生)이었던 곽재우(郭再祐)는 4월 22일 이곳 유곡면(柳谷面) 세간리(世干里)에서 이 느티나무에 큰 북을 매달고 치면서 전국 최초로 의병(義兵)을 모아 훈련시켰고 의병들의 의식주(衣食住)는 가재(家財)를 털어 해결하였다 한다. 이때부터 이 나무는 느티나무보다는 현고수로 불리며 뜻있는 이들의 아낌을 받아 왔다. 

         


부산 수영동의 곰솔           

 

ㅇ 문화재개요

  - 종목      천연기념물 제270호

  - 명칭      부산수영동의곰솔(釜山水營洞의곰솔)

  - 분류      자연유산 /천연기념물/문화역사기념물/역사

  - 수량/면적 1주314㎡

  - 지정일    1982.11.04

  - 소재지    부산 수영구 수영동 229-1

  - 소유자/관리자   부산광역시 북구청


ㅇ 선정사유

  - 이곳은 경상좌도 수군절도사영(水軍節度使營) 자리다. 동쪽 홍예문 안에는 군신목(軍神木)으로 알려진 곰솔 한 그루가 몇 그루 소나무의 호위를 받으며 당집을 옆에 끼고 웅장한 몸집을 자랑한다.


ㅇ 문화재설명

  - 곰솔은 소나무과로 잎이 소나무 잎보다 억세기 때문에 곰솔이라고 부르며, 소나무의 겨울눈은 붉은 색인데 반해 곰솔은 회백색인 것이 특징이다. 바닷가를 따라 자라기 때문에 해송으로도 부르며, 또 줄기 껍질의 색이 소나무보다 검다고 해서 흑송이라고도 한다. 바람과 염분에 강하여 바닷가의 바람을 막아주는 방풍림이나 방조림으로 많이 심는다.

  - 부산 수영동의 곰솔은 나이가 400년 정도로 추정되며 높이 23.6m, 둘레 4.50m로 현재 수영공원 안에 있다. 땅에서부터 가지가 갈라지는 부분까지의 길이가 7.0m에 이르며 껍질은 거북의 등처럼 갈라져 있다.

  - 전설에 의하면 조선시대에는 이곳에 좌수영(左水營)이 있었는데 그 당시 군사들은 이 나무를 군사를 보호해주고 지켜주는 신성스런 나무로 여겨 나무에게 자신이 무사하기를 기원했다고 한다. 옆에는 신을 모셔 놓은 당집과 장승이 서 있고, 앞쪽에는 곰솔 한 그루가 더 있다.

  - 부산 수영동의 곰솔은 오랜 세월 동안 조상들의 관심과 보살핌 가운데 살아온 나무로 민속적·문화적 자료로서의 보존가치가 높아 천연기념물로 지정·보호하고 있다.



구례 화엄사 올벚나무         

 

ㅇ 문화재개요

  - 종목      천연기념물  제38호 

  - 명칭      구례 화엄사 올벚나무(求禮 華嚴寺 올벚나무) 

  - 분류      자연유산 /천연기념물/문화역사기념물/종교 

  - 수량/면적 1주175㎡

  - 지정일    1962.12.03

  - 소재지    전남 구례군  마산면 황전리 20-1 

  - 소유자    화엄사

  - 관리자    구례군


ㅇ 선정사유

  - 화엄사 일대에는 올벚나무가 유난히 많은데, 옛날 벚나무는 껍질을 벗겨 활을 만드는 재료로 쓰는 군수물자였다. 병자호란 이후 효종이 북벌을 추진할 때 화엄사의 벽암대사가 이곳에 잘 자라는 올벚나무를 많이 심었다


ㅇ 문화재설명

  - 올벚나무는 황해도, 지리산, 보길도 및 제주도에서 자란다. 꽃이 잎보다 먼저 피고 다른 벚나무보다 일찍 꽃이 피기 때문에 올벚나무라고 부른다.

  - 이 올벚나무는 나이가 약 300살 정도로 추정되며, 높이 12m, 뿌리부분 둘레 4.42m이다. 병자호란(1636) 이후 인조(재위 1623∼1649)는 오랑캐에게 짓밟혔던 기억을 되새기며 전쟁에 대비하고자 활을 만드는데 쓰이는 벚나무를 많이 심게 했다. 당시 화엄사의 벽암스님도 그 뜻에 찬성하여 주변에 올벚나무를 많이 심었는데, 그 중의 한 그루가 살아남은 것이다.

  - 나라를 지키려는 조상들의 의지가 담겨있는 나무이며, 생물학적 자료로서도 가치가 높아 천연기념물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 수령(樹齡)은 300년이 넘고, 나무의 크기는 높이가 12m, 뿌리부분 둘레는 4.42m이다. 두갈래로 갈라진 줄기 중 큰 줄기의 가슴높이 둘레는 2.41m이고, 작은 줄기의 가슴높이 둘레는 0.9m이다.

  - 이른 봄에 꽃이 피는 벚나무의 일종(一種)으로 화엄사(華嚴寺)의 맞은편 암자(庵子) 앞에서 자라고 있다. 화엄사(華嚴寺) 앞을 흐르는 냇가에서 그리 멀지 않은 거리에 있으며 80여년 전까지 두 그루가 남아 있었으나 한 그루는 절을 수리할 때 베어서 사용하였다고 한다. 그 나무의 판자 한 조각으로 적묵당(寂墨堂)의 안마루를 깔고도 남았다고 하는 것으로 보아 거목(巨木)이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 올벚나무의 주변에 자라는 나무로서는 푸조나무,서어나무, 동백, 팽나무, 갈참나무, 느티나무 등이 자라고 있다.

  - 현재 남아있는 올벚나무도 1945년 8월 폭풍으로 나무줄기의 가운데가 부러져 수세(樹勢)가 많이 약해졌다.

  - 벚나무는 무기(武器)를 만드는데 중요(重要)한 자원이었다. 병자호란(丙子胡亂) 이후 인조대왕(仁祖大王)께서는 오랑캐에게 짓밟혔던 옛날을 생각하여 무기(武器)를 만드는 자원식물(資源植物)인 벚나무를 많이 심게 하였다. 이때 벽암대사(碧岩大師)가 화엄사 근처에 많은 벚나무를 심었는데, 그 중 한 나무가 천연기념물(天然記念物)로 지정된 것이다.

  - 이른 봄에 잎이 나오기 전에 꽃이 아름답게 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