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과의 對話/우리동네 나무얘기

느티나무

초암 정만순 2017. 5. 15. 08:24



느티나무



도시의 초등학교 교목이 되어, 아이들을 지켜주는 나무


- 느티나무 Zelkova serrata (Thunb.) Makino

 


우리가 좋아하는 나무라고 해서 무조건 도시에서 심어 키울 수 있는 건 아닙니다.

사람들도 좋아하는 환경이 서로 다른 것처럼 나무들도 자랄 수 있는 자연 환경이 제가끔 다르니까요.

특히 자연과 전혀 다른 조건을 가진 도시에서라면 나무를 심어 키우는 게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닙니다.


느티나무를 도시에서 찾기 어려운 건 그래서입니다.

우리의 시골 마을 어귀에서 흔히 보는 좋은 나무이건만 도시에서는 그처럼 크게 자란 나무를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래서인지 도시 환경에 잘 어울리지 않는 나무라는 생각까지 듭니다.


느티나무를 도시에서 보기 어려운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습니다.

우선 느티나무의 특징부터 살펴보며 하나하나 그 이유를 찾아보지요.



느티나무 ⓒ 고규홍


느티나무는 오랫동안 크게 잘 자라는 우리의 자랑스러운 토종 나무입니다. 우리나라에는 1천 년을 넘게 살아온 느티나무가 무려 19그루나 있습니다. 또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나무도 18그루나 되며, 보호수로 지정 보호되고 있는 나무는 무려 5천 그루가 훨씬 넘을 정도이니, 우리나라에 가장 많은 나무라고 해도 틀리지 않습니다.


하지만 느티나무는 공해에 약한 나무입니다. 또 나뭇가지를 넓게 펼치는 속성의 느티나무는 도시의 가로수처럼 촘촘이 줄을 지어서 자라기도 어렵지요. 나뭇가지를 펼칠 공간이 충분하지 않으면, 스트레스를 받아서 제대로 자라지 못하고 시들시들하다가 죽어버립니다. 그래서 한적한 시골 마을에서도 느티나무는 숲을 이루어 자라는 것보다는 홀로 우뚝하니 크게 자란 나무들을 더 많이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이유로 느티나무는 공해가 심하고 생육 공간도 넉넉지 않은 도시에서 자라기 어렵습니다. 그나마 도시의 공원이나 광장, 혹은 빌딩 화단에 조경수로 심는 경우가 있어서 가끔씩 볼 수는 있지만, 아무래도 흔치 않은 건 분명합니다.


그러나 우리 마을에서는 느티나무를 찾아볼 수 있어서 좋습니다. 아파트 단지에 붙어있는 초등학교 운동장 가장자리에서입니다. 학교가 세워진 게 불과 30년 정도 되었고, 그때 심은 나무이니, 나이도 그리 많은 나무는 아닙니다. 시골 마을에서 보았던 넉넉한 품의 커다란 느티나무는 아니지요.


이 학교에서 느티나무를 심어 키우는 건 단순히 우리가 오래 전부터 좋아한 나무라는 이유에서만은 아닙니다. 학교마다 그 학교의 특징을 강조하기 위해 설립 당시에 지정하는 교목(校木)이나 교화(校花)가 있잖아요. 바로 이 학교의 교목(校木)이 느티나무여서 심어 키우는 겁니다. 느티나무처럼 누구나 품어 안을 수 있는 푸근한 인격을 갖춘 아이들을 키우겠다는 뜻이 담겨있지 싶습니다.


물론 시골에서 보는 것처럼 푸근한 인상을 갖추려면 앞으로 시간이 많이 걸리겠지만, 그래도 도시에서 한 그루의 느티나무를 볼 수 있다는 건 고마운 일입니다. 학교의 교문에서 교실 건물 출입구로 들어가는 모퉁이에 서 있는 느티나무는 아이들이 바라보건 아니건 언제나 그 자리에서 아이들의 오가는 길을 지켜줍니다.


시골에서 느티나무는 대개 마을의 한가운데보다는 마을로 들어서는 어귀에서 볼 수 있지요. 그 나무를 시골 어른들은 ‘느티나무’라고 부르기보다는 정자나무나 당산나무라고 더 많이 부릅니다.


정자나무라고 하는 건, 마을 사람들이 쉴 수 있는 좋은 자리라는 뜻에서입니다. 느티나무는 사방으로 골고루 가지를 넓게 펼쳐서 넉넉한 그늘을 이루기 때문에 그 안에 들어서서 쉬기에는 안성맞춤이거든요. 그래서 사람들은 정자를 따로 짓지 않고, 느티나무 그늘 아래에 평상을 놓고 느티나무를 아예 정자나무라 부르는 것입니다.


또 당산나무라고 부르는 건, 마을 사람들이 해마다 나무 앞에 모여서 당산제를 지내는 나무라는 이야기입니다. 사람들은 커다란 느티나무가 마을 어귀에 서서 마을로 들어오는 나쁜 기운을 막아내고 마을의 안녕과 평화를 지켜주는 고마운 나무라는 생각에서 한 해에 한 번씩 날을 정해 제사를 올립니다. 그 제사를 당산제라 하고, 당산제를 지내는 나무를 당산나무라고 부릅니다. 물론 당산나무가 반드시 느티나무인 것은 아니지만, 우리나라에 가장 많은 당산나무는 느티나무라는 이야기입니다.



느티나무 잎 ⓒ 고규홍


 앞에서 느티나무 그늘이 넓고 좋다고 이야기했는데, 여기서 놀라운 이야기 한 가지 보탭니다. 적어도 삼백 년 넘게 잘 자란 느티나무 한 그루에서 돋아나는 잎사귀가 몇 장이나 될까요? 놀랍게도 한 그루에 달리는 잎은 무려 오백만 장이나 됩니다. 그 많은 잎사귀들이 살랑살랑 바람에 날리며 지어내는 그늘이 좋지 않을 수 없지요.


그밖에 느티나무의 두드러진 특징 가운데 하나는 나이가 들면서 차츰 줄기의 껍질이 두툼하게 벗겨져 너덜거린다는 겁니다. 이 특징은 어린 느티나무에서는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커다란 나무 가운데에 줄기 껍질이 너덜너덜 벗겨져 있다면 그 나무는 십중팔구 느티나무일 겁니다.


우리 마을 초등학교에 있는 느티나무는 아직 오백만 장의 잎사귀를 달 만큼 자라지도 못했고, 줄기 껍질이 벗겨지지도 않았습니다. 편안히 자라기에는 쉽지 않은 도시 환경에서 이 한 그루의 느티나무가 오래도록 잘 살아남기를 바랄 뿐입니다. 그건 이 초등학교에서 배움을 익혀나갈 어린 아이들이 느티나무처럼 너그러운 사람으로 자라나기를 바라는 마음이고, 아울러 느티나무가 더 평안하게 자랄 수 있을 만큼 우리 도시의 환경이 더 깨끗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이기도 합니다.


글 고규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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