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간주나무
다른 표기 언어 Needle Juniper , 老柯子木 , ネズ杜松
분류 | 측백나무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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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명 | Juniperus rigi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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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엽이 진 겨울 산, 간간이 몰아치는 눈바람 때문에 더욱 삭막하게 느껴지는 야산에서 홀로 껑충하게 서 있는 특별한 모습의 나무가 우리의 눈길을 끈다.
바로 노간주나무다. 멋없이 키만 큰 꺽다리 허깨비가 웃옷 하나만 달랑 걸치고 찬바람에 맞서는 것 같아 애처롭기까지 하다.
노간주나무는 메마르고 척박한 땅에서 자란다. 눈치 빠른 다른 나무들이 다 싫다고 버린 땅에 둥지를 튼다.
힘든 경쟁을 피하여 찾아든 최후의 선택이었을 것이다. 삶이 어렵다고 한탄만 해서는 냉혹한 이웃과의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 그래서 싹트는 힘이 강한 것은 기본이고, 잎은 뾰족뾰족하여 초식동물들이 함부로 먹을 수 없게 진화했다. 아울러 열매는 새들이 좋아하도록 설계하여 여기저기 널리 전파한 덕분에 어려운 환경에서도 자손을 이어가고 있다.
노간주나무는 양지바른 척박한 땅이면 우리나라 어디에서나 쉽게 만날 수 있는 나무다.
특히 석회암 지대를 좋아하여 충북 단양 등에서 오랜 친구인 회양목과 같이 살아가는 늘푸른 바늘잎나무다. 키 5~6미터, 지름이 한 뼘 정도까지 자란다고 하나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나무는 팔목 굵기가 보통이다. 하지만 강원도 정선 임계 골지리에서 자라는 보호수 노간주나무는 키 8.4미터, 줄기둘레가 두 아름이 넘는 360센티미터에 나이는 350년에 이른다.
노간주나무는 대체로 자람 터가 척박한 곳이다 보니 생명을 부지할 만큼만 먹고, 크게 빨리 자라려고 욕심을 부리지 않는다.
곧게 자라면서 가지가 모두 위를 향하여 다닥다닥 붙어 서로 사이좋게 의지한다.
그렇다 보니 영양 과잉의 염려가 없다. 덕분에 자연히 나무나라에서 제일 날씬한 몸매를 자랑하게 되었다.
잎은 손가락 마디보다 조금 긴 정도이고, 끝이 날카로워 함부로 만지면 마구 찌른다.
가지와 거의 직각으로 3개씩 일정한 간격으로 돌려나기 한다. 암수가 다른 나무이며, 암나무에는 5월쯤 꽃이 피고 열매는 한 해 건너 다음해 10월에 검붉게 익는다. 굵기가 콩알만 한 열매는 네덜란드 사람들이 특히 좋아하는 진(gin)의 향내를 내는 저장고다. ‘쥬니퍼(juniper)’라고 하는 서양노간주나무의 열매를 그들은 멀리 희랍시대부터 술 향기를 내는 데 사용했다.
우리나라의 노간주나무 열매도 진을 만드는 데 모자람이 없다.
완전히 익어버리기 전에 따다가 소주 한 되 기준으로 열매 20알 정도를 넣고 꽁꽁 싸서 묶어둔다. 이것을 한 달가량 두었다가 열어 보면 바로 노간주 술인 두송주(杜松酒)가 된다. 의심할 필요가 없는 순수 ‘코리안 진’이다. 그 외에 가을에 딴 열매를 달여 먹기도 하고, 기름을 짜서 약으로 쓰기도 했다. 통풍, 관절염, 근육통, 신경통에 특효약이라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서양에서는 사비나노간주나무(학명 Juniperus sabina)의 열매를 옛날에는 낙태시킬 목적으로 널리 사용했다. 강한 독성 때문에 생명을 잃기도 했다고 한다.
노간주나무는 자그마해도 목재의 쓰임이 예사롭지 않다.
유태인이 할례를 거쳐 성인이 되듯이 이 땅의 우공(牛公)들은 송아지 때 노간주나무 가지로 코뚜레를 하지 않으면 어미 소가 될 수 없었다. 나무를 불에 살살 구우면 잘 구부러지고 질기기 때문에 간단히 동그랗게 휠 수 있다. 우공들에게는 평생을 괴롭히는 저주의 나무가 된 셈이다. 흑갈색으로 갈라지는 나무껍질은 추출하여 천을 염색하는 데 쓰기도 한다.
《행포지(杏浦志)》각주1) 에 보면 “노간주나무가 옆에 있으면 배나무는 전부 죽는다”라고 했다.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붉은별무늬병의 중간 기주임을 밝힌 최초의 기록이다. 그래서 향나무와 함께 노간주나무는 배밭 주인이 근처에 얼씬도 못하게 한다. 노간주나무는 해변, 좀, 평강, 서울 등의 접두어가 붙은 여러 품종이 있다. 특히 해변노간주나무는 산림청이 지정한 ‘희귀 및 멸종위기식물’에 포함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