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기슭 한쪽에 점을 찍듯 들어선 먹점의 매실 농가는 총 34호. 빈집 10여채를 뺀 마을 전체 가구 수 역시 34호니 전 농가가 매실 농사에 주력하는 그야말로 순도 99.9%의 매화마을이라 하겠다.
다른 집들보다 키를 더 높이며 해발 500m 고지대에 안착한 ‘하동토종매실농원’의 최성도 이장은 불모지나 다름없던 40여년 전 매실 농사를 시작했다. 처음엔 조금씩 매실주를 담가 약재로 사용하는 게 전부였는데 매실의 효능이 차츰 알려지면서 주문량도 대폭 증가했다고. 물론 그때도 매실 농사에 주력한 이는 최이장 집뿐이었다. 지대가 높아 매화 개화 시기도, 매실 수확도 다소 늦은 편이지만 “향이 짙고 단단한 토종매실로만 연간 20t쯤 수확”한다며 자부심이 대단하다. 지난해 이미 무농약 농가로 인증을 받았고 화학성분이 들어간 비료 또한 일절 사용하지 않는단다.
지리산 인근을 샅샅이 다니며 살 곳을 찾아보다 결국 고향에 정착한 ‘산골매실농원’ 여태주씨는 처음 2년간 전기도 찻길도 없는 마을 중턱에서 매실 농사를 시작했다.16년이 지난 지금은 4만㎡ 규모에 매실 나무만 700여주,1년 생산량 45t의 대량 수확이 가능해졌지만 저절로 이뤄진 결실은 아무것도 없다. 관리가 훨씬 까다롭긴 해도 1년간 발효한 산야초액 등을 살포해 역시 무농약 농사를 짓고 있으며,2년간의 전환기 유기를 거쳐 올해 유기농 인증을 신청해 놓은 상태다.
여씨는 매화 만개시기에 맞춰 축제도 연다. 이제 겨우 5회째지만 매년 방문객이 증가하는 추세라고. 그 덕에 700만원 남짓했던 행사비가 1000만원을 훌쩍 넘어 버렸다. 군청에 몇 번 협조를 구해 봐도 뾰족한 수가 없더란다. 팸플릿 인쇄비용만이라도 지원받고 싶었지만 달걀로 바위 치는 격이었다. 하는 수 없이 올해도 전액 사비에 의존한다. 오는 30일 열리는 ‘산골매화축제 한마당’은 닥종이 인형 전시, 들차회 시음회, 록밴드 공연을 비롯해 사물놀이, 가야금 병창, 범패, 판소리 등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진행된다.
“여타 축제와 견줄 수는 없지만 이 작은 행사로 먹점은 물론 인근 매실농가들이 활성화됐으면 좋겠습니다. 고객들에게 행사 팸플릿을 발송하는 것만으로도 관심을 유발할 수 있거든요. 더 나아가선 지역특산품 판로에도 도움이 될 테고요.”
3월 하순, 먹점마을 곳곳에 먹물 번지듯 새하얀 매화가 꽃을 피운다. 산골짝 먹점은 여백의 미를 즐길 줄 아는 한 폭의 화선지 같다. 차창을 열면 그윽한 매화 향이 폐부 깊은 곳까지 들어차는 곳…. 꽃이 떨어지고, 꽃이 진 자리에 초록 열매 가득한 계절이면 마을은 또 매실을 수확하는 분주한 손길들로 푸른 수채화가 될 것이다.
글 사진 황소영 월간 마운틴 기자(www.emountain.co.kr)
자가용을 이용할 경우 호남고속도로 전주IC, 대전∼통영간 고속도로 장수IC에서 각각 남원으로 간 다음 구례와 악양을 거쳐 진행 방향 왼쪽 흥룡리 먹점마을 이정표를 따른다.19번 국도에서 3㎞쯤 좁은 시멘트 길을 올라서야 한다. 남해고속도로에서는 하동IC를 이용한다. 서울 서초동 남부터미널에 구례와 화개를 거쳐 하동으로 가는 버스가 있다. 하동읍에서 먹점까지 바로 가는 군내버스가 없어 택시를 이용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