雲水 天下/지리산 마을

전남 구례군 토지면 직전마을

초암 정만순 2017. 1. 16. 08:23



전남 구례군 토지면 직전마을

 

피아골 훑는 바람에 시름 잊어보세

조정래는 그의 소설 ‘태백산맥’에서 피아골 단풍이 유독 붉은 이유를 “그 골짜기에서 죽어간 사람들의 원혼이 그렇게 피어나는 것” 또는 “양쪽 비탈에 일구어낸 다랑이논마저 바깥세상 지주들에게 빼앗기고 굶어죽은 원혼들이 그렇게 환생하는 것”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지리산 산장지기로 약 40년, 피아골대피소에서만 20년을 지낸 함태식(81)옹의 저서에 따르면 1984년 산장 신축 굴착공사 중에 나온 인골만도 한 트럭분이나 된다고 한다.

클릭하시면 원본 보기가 가능합니다.

피아골, 피로 물든 격전지쯤으로 각인되기 쉽지만 실은 식용 피가 많이 재배돼 피밭골로 불리던 것이 피아골로 바뀐 것이다. 계곡 초입의 직전(稷田)마을도 그로 인해 유래했다는 게 보편적이다.

원래는 8세기 중엽 연곡사를 찾던 사람들 중 김해김씨와 밀양박씨 2가구가 농경지 이용이 가능한 이곳에 정착해 마을을 형성했고 그 후 평도·직전·죽리 등의 자연마을을 합쳐 토지면 내동리가 되었지만 국립공원 구역 내 자리한 지리적 특수성을 감안, 직전마을을 따로 떼어내 직전리가 되었다. 하지만 지난 2006년 봄, 국립공원관리공단 지리산 남부사무소가 자연환경 복원을 위해 마을을 철거하고 오는 2011년까지 주민 이주 작업을 완료키로 결정했으니 오히려 직전만 외톨이가 된 셈이다.

규제 심해 관광객 발길 뜸해져

마을에서도 제일 깊은 곳에 자리한 ‘산아래첫집’ 한형석(46) 한선임(40) 부부는 20년 전 피아골로 들어왔다. 남편 형석씨는 결혼 전부터 설악과 지리를 누볐던 산꾼이었다. 멋모르고 들어와 적응하지 못하고 쫓기듯 떠나는 이도 많지만 다행히 한씨 부부는 TV도 라디오도 접할 수 없던 산중생활을 슬기롭게 견뎌냈다. 적어도 철거 소식이 전해지기 전까지는 말이다.

“여타 관광지가 그렇듯 비수기와 성수기 구분이 뚜렷한 데다 국립공원관리공단의 규제가 심해 관광객들의 발길이 뜸해졌습니다. 심지어 이미 ‘마을이 철거된 게 아니냐?’고 문의 전화를 해오는 손님들도 있을 정도예요.”

이주 단지 신규 조성이나 금전적 보상 등의 대안이 있긴 하지만 용역만 끝냈을 뿐 구체적인 계획은 전무하다는 게 한선임씨의 설명이다.

주민들은 국립공원 권역을 아예 마을 위쪽으로 옮겨 규제가 심한 공원에서 제외시켜 줄 것을 바라기도 한다. 마을 진입로에서 징수하는 연곡사 문화재관람료(2000원)도 관광객들에게 부담을 준다. 따라서 이주단지는 연곡사 아래쪽이 될 가능성이 크다. 어찌 되었든 피아골 산행 초입, 가장 끝 마을은 유지해야 한다는 게 주민들 대다수의 의견이다.

성수기는 고로쇠 한달, 여름 한달, 가을 한달뿐

8년 전 ‘노고단산장’(상호)을 인수한 정명곤(48)씨는 이주단지가 연곡사 아래로 정해질 경우 그냥 그곳에 머물 계획이다. 어중간한 지역에 뚝 떨어져나가 식당을 계속 꾸려갈 자신이 없어서다.

정씨의 말대로라면 피아골 주민들의 성수기는 고로쇠 한 달, 여름 한 달. 가을 한 달뿐. 그렇다고 나머지 달은 마냥 노는 게 아니어서 고로쇠가 끝나는 3월 말부터 산나물을 뜯고, 새끼를 낳은 벌들을 위해 분봉 작업을 해야 하고, 그것마저 끝나면 슬슬 여름 장사를 준비하며 짬짬이 죽순 수확도 한다. 여름이 정신없이 지나면 산열매를 따고, 가을 장사 준비도 해야 하고, 후딱 단풍철이 지나면 눈 오기 전 고로쇠 호스 점검 작업에 들어간다. 눈이 폴폴 쌓여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1월에나 자녀들과 시간을 보낼 수 있다고. 그저 “실속은 없이 바쁜 생활”이라며 너스레다.

클릭하시면 원본 보기가 가능합니다.
적어도 이번 여름 동안은 민박과 식당을 겸한 직전의 30여집들 모두 철거와 이주의 머리 아픈 시름을 접어둔 채 복작복작 관광객들로 바빠져야 할 터, 피아골을 훑는 시원한 바람이며 맑은 물줄기도 덩달아 분주하다.

▶가는 길

서울 서초동 남부터미널과 부산 사상 서부터미널에 구례까지 가는 버스가 있다. 기차는 전라선 구례구역에서 하차한다. 자가용을 이용할 경우 호남고속도로 전주IC, 대전∼통영간 고속도로 장수IC,88고속도로 남원IC 등으로 나와 구례로 진입한다. 남해고속도로는 하동IC를 경유해 구례로 갈 수 있다. 이후 19번 국도 외곡삼거리에서 피아골 방향으로 들어선다. 연곡사 입장료 2000원은 마을에 식사하러 간다고 얘기하면 안 낼 수도 있다.

 

글 사진 황소영 월간 마운틴기자 (www.emounta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