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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화개 삼정에는 버스가 들어가지 못하므로 버스 종점인 의신에서 치자면 이 역시 6.8㎞. 따라서 남이든 북이든, 마천이든 화개든,‘삼정’을 거쳐 벽소령으로 오르는 길은 비슷비슷한 편이다. 굳이 걷는 맛을 따지자면 임도가 잘 뚫린 마천 쪽보다는 오롯한 산길이 남은 화개 쪽 길이 조금 더 나을 듯도 하다.
●의신서 벽소령까지 6.8㎞
‘화개면지’에 따르면 의신은 대성리의 중심 마을로 화개에서도 사찰이 가장 많았던 불교의 요람지였다.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의신사’ 혹은 의신의 암자에서 도를 닦은 ‘의신조사’에서 마을 이름이 유래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의신 윗마을 삼정은 삼각등, 말안장터 등 ‘세 곳의 길지가 있어 이곳에 묘를 쓰면 세 사람의 정승이 나올 것’이라 하여 삼정 혹은 삼점이 되었다 한다. 삼정에는 벽소령 등산로 말고도 빗점골, 왼골, 사태골, 절골 등의 샛길이 주능선까지 이어지는데 그 중 빗점골은 빨치산 남부군 총사령관 이현상의 최후 격전지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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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하에 9남매를 둔 채 빗점골에서 화전을 일구며 살았던 조성오(77)옹은 “지리산 산신령의 은총” 덕분에 산삼을 무더기로 캐는 횡재를 하고 20년 전쯤 의신마을의 가장 끝, 그리고 마을에선 거의 처음으로 ‘운해산장’이란 민박집을 열게 된다. 정확히는 전쟁이 끝나고 원래 살았던 집으로 돌아온 셈이었다. 의신에서 삼정을 지나 벽소령을 넘나들던 길은 1950년대까지만 해도 남녘에서 서울을 오가던 가장 짧은 길 중 하나였다. 가깝게는 남해의 소금가마를 지고 마천으로 넘나들던 길이기도 하다.
조옹의 장남과 차남은 국립공원 대피소가 생기기 전까지 그 길목에 간이천막을 치고 막걸리며 부침개를 팔았다. 그 대가로 묻혔던 샘물을 찾아내고 등산객들이 버리고 간 쓰레기를 수거하는 등 환경지킴이 역할을 자처해 왔다. 이들의 부침개 냄새를 맡고 멀리 선비샘에서부터 “지짐 해 놔라!” 소리를 지르며 달려온 등산객들도 있을 정도였다고. 산꾼들의 목을 적셔 주던 막걸리는 부인 최다엽(73)씨의 솜씨다. 지금도 운해산장에선 지리산 맑은 물로 빚은 최씨만의 비법을 맛볼 수 있다.
●1950년대까지 남녘서 서울가던 가장 빠른 길
약초꾼으로 살던 1978년까지만 해도 야생곰을 더러 보아 왔다는 조성오 옹은 선대와 자손까지 4대째 의신에 터를 잡고 있다. 그 이는 이곳을 청학동이라고 믿는다.“화개에서 제일 큰 부락인데도 그 난리(6·25전쟁) 속에 희생된 사람이 별로 없다.”는 게 그 이유. 게다가 50여 가구 대다수가 식당과 민박을 겸하지만 외지에서 들어와 정착했다 하여 원주민들과 갈등이 있는 것도 아니다.
“공기며 물이며 산이며 숲이며, 여기보다 더 좋은 데가 있습니까?” 고향에 대한 자부심이 큰 만큼 국립공원에 묶여 제한받는 불만과 불편은 별 수 없이 감내해야 한다. 먼당 칠불사가 불에 타고, 빨치산을 피해 몇 번씩 마을에서 쫓겨 가는 등 그보다 더한 고통도 잘 견디어온 까닭이다.
#가는 길
경남 하동군 화개면까지는 서울 서초동 남부터미널과 부산 사상 서부터미널을 이용한다. 자가용의 경우 호남고속도로 전주나들목, 대전∼통영간고속도로 장수나들목,88고속도로 지리산나들목, 남해고속도로 하동나들목 등에서 19번 국도를 따라 화개로 진입한다. 이후로는 쌍계사 방면으로 직진하여 길이 끝나는 곳까지 계속 올라간다. 도로 마지막 지점이 의신이고 의신에서 다시 비포장 수준의 소로를 2.7㎞ 올라가면 삼정마을에 닿는다.
글·사진 황소영 자유기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