飮食 漫步/중국요리

至味無味의 극치, 제비집수프

초암 정만순 2016. 11. 11. 11:57



至味無味의 극치, 제비집수프



 



중국요리 중에서도 최고급으로 꼽는 것은 제비집 수프다. 청나라 황제들이 즐겨 먹었다는 요리로 워낙 사치스런 고급요리이니 그림의 떡처럼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우리에게도 그다지 낯선 것만은 아니다. 고급 중식당이나 중국, 홍콩, 타이완 혹은 베트남 여행길에 코스요리를 주문하면 전채 요리로 제비집 수프가 나오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제비집을 통째로 먹는 것도 아니고, 수프 한 그릇에 겨우 몇 그램 녹아 있는 정도이니 아주 부자 아니면 구경도 못할 요리만은 아니지만 그래도 비싼 고급 재료라는 것만큼은 분명하다.

제비집 요리는 청나라 말기, 서태후가 특별히 좋아했다. 음식 사치로 유명했던 서태후는 맛있고 몸에 좋다는 음식은 가리지 않고 먹었던 대식가이면서 동시에 미식가였다. 만주 봉천으로 여행 갈 때는 전용열차를 탔는데 아궁이가 50개 딸린 주방 열차 두 칸이 딸려 있어 이동 중에도 50명의 요리사가 한 끼에 100가지의 음식을 준비했다. 보통 한 끼 식사로 평민의 일년치 수입을 넘는 백은(白銀) 100냥을 썼다는데 이렇게 많은 돈을 쓰면서 서태후는 도대체 어떤 음식을 먹었을까?

평소보다 더 특별한 요리를 준비했을 1861년 음력 10월 10일 서태후의 서른한 살 생일의 아침상에는 모두 스물네 종류의 요리가 차려졌다. 메인 요리로 만년 동안 복과 수명을 누리라는 뜻에서 복수만면(福壽萬年)이라는 글자가 한 글자씩 새겨진 네 개의 대형 접시에 두 종류의 오리고기, 그리고 닭고기와 돼지고기가 각각 올라왔다.

생일상에는 큰 접시 외에도 중간 접시 네 개, 작은 접시 여섯 개에 요리를 담고, 두 종류의 전골과 또 두 종류의 구이가 차려졌는데 과일과 사탕, 떡으로 이뤄진 디저트 넷을 뺀 스무 가지의 음식 중에서 무려 여덟 가지가 오리구이와 오리탕, 오리콩팥을 비롯한 갖가지 오리고기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먹은 주식이 닭고기 육수로 끓인 계사면(鷄絲麵), 즉 우리나라 중국음식점에서 흔히 먹는 기스면이었다.

서태후의 생일상에는 알려진 것과 다른 몇 가지 특별한 점이 있다. 만주 봉천으로 떠나는 여행길에도 100 종류의 음식을 준비해 그중에서도 서너 가지만 골라서 맛보았다는 서태후인데 생일상으로 차린 스물네 가지 요리는 오히려 검소할 정도다. 또 하나는 오리고기가 유별나게 많을 뿐 특별히 화려하다거나 소문만큼 사치스럽다고 할 만한 요리는 눈에 띄지 않는다. 그런데 왜 서태후를 보고 음식에 엄청난 돈을 흥청망청 쏟아 부은 미식가라고 비난하는 것일까?

생일상 요리가 스물네 종류였다는 것은 그만큼 핵심요리만 차렸다는 뜻이다. 또 음식 자체는 특별한 것이 없어 보여도 요리재료는 유별났기에 서태후가 미식가 소리를 들었던 것이다. 후식과 국수를 제외한 요리 중에서 일곱 종류의 요리가 그 귀하다는 제비집을, 그것도 소스로 이용해 조리했기 때문이다.

제비집 요리를 좋아한 것은 비단 서태후만은 아니었다. 남편인 함풍제의 섣달그믐날 저녁상에 모두 18 종류의 요리가 올랐는데 이중 6가지가 제비집 소스로 조리를 한 것이고 청나라 전성기를 이룩한 건륭황제 역시 매일 아침 자리에서 일어나면 공복에 시원한 제비집 수프 한 그릇을 마시며 하루를 시작했다고 한다. 청나라 황제들은 건륭제 이래로 마지막 황제인 부의에 이르기까지 아침이면 제비집 수프나 제비집 죽으로 빈속을 달랬으니 제비집 요리를 먹는 것이 청나라 황실의 전통 식사법이었다.

제비집은 많이 알려진 것처럼 금사연(金絲燕)이라는 바다제비가 절벽에 지어놓은 집이다. 지푸라기나 풀로 집을 짓는 보통 제비와 달리 바다제비는 식용이 가능한 해초를 물어다 자신의 분비물과 섞어 집을 짓는 까닭에 이 둥지를 채취해 가공해서 요리재료로 쓰는 것인데, 주성분은 단백질과 다당류, 그리고 소량의 미세원소다.

중국에서 제비집을 요리로 만들기 시작한 것은 명나라 때이지만 최고급 요리로 떠오른 것은 청나라 때로, 특히 청나라 황제들이 즐겨 먹었다. 청나라 황제들은 제비집 요리를 왜 그렇게 좋아했을까?

먼저, 제비집이 장수에 도움이 되는 보양식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호사가들은 여든여덟 살까지 산 건륭황제가 중국 최장수 황제가 될 수 있었던 비결, 서태후가 실제 나이보다 20년은 젊게 보였던 이유로 제비집 요리를 꼽는데 매일 제비집 요리를 먹으면 그만큼 젊어지고 오래 살 수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

제비집이 좋다고 믿었던 또 다른 이유는 아무나 먹을 수 없을 정도로 귀했기 때문이다. 제비집은 동남아에서 소량만 채취했는데 주로 베트남 등지에서 조공품으로 진상했던 품목이었다. 얼마나 제비집을 귀하게 여겼는지 중국과 교역을 원했던 네덜란드에서는 건륭 60년인 1795년, 제비집 100근을 구해 보내며 중국과 거래를 추진했다. 우리나라 정조실록에 실려 있는 기록이니 당시 아시아에 소문이 쫙 퍼졌다는 이야기가 되겠다.

제비집이 이렇게 귀하고 좋은 재료인데, 서태후의 생일상을 비롯해 역대 청나라 황제의 식단에서는 제비집과 관련해 특이점을 찾을 수 있다. 최고급 요리 재료라는 제비집 자체의 맛을 즐길 수 있는 별도의 요리는 거의 없다는 사실이다. 모두 다른 음식을 조리하는 보조 재료인 소스로만 제비집을 이용한 것이다. 우리에게도 익숙한 이름인 제비집 수프 역시 내용을 보면 제비집을 베이스로 해서 샥스핀이나 해삼, 죽순, 송이버섯 등의 다른 재료를 조리해 만든 음식이다. 값비싼 제비집을 왜 이렇게 쓰는 것일까?

제비집은 그 자체만으로는 아무런 맛이 없기 때문이다. 특별한 맛이 없는 제비집이 최고의 요리 재료로 대접받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지미무미(至味無味), 최고의 맛은 아무 맛이 없는 맛이라고 한다. 밥은 특별한 맛이 없지만 밥이 있어야 반찬이 진짜 맛있는 것과 마찬가지 이치다. 밥이 주식이 되는 이유도 바로 아무 맛이 없기 때문인 것처럼 제비집이 황제들이 청나라 황제의 사랑을 받았던 것도 제비집이 지미무미의 극치였기 때문이다.

청나라 시인으로 유명한 미식가였던 원매(袁枚)가 제비집 요리를 빗대어 “귀로 음식을 먹지 말라”고 했다. 소문만 듣고 알려진 명성만으로 지레 맛있다고 판단하지 말라는 말로 제비집은 마치 평범한 사람과 같아서 자체만으로는 아무 맛이 없지만 진정한 가치는 다른 재료와 조화를 이뤘을 때 제 맛을 낼 수 있다는 것이다. 굳이 음식에만 해당되는 이야기만은 아닌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