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석지(瑞石池)
서석지(상서로운 돌로 된 연못이라는 뜻)는 조선시대 사대부 집안의 대표적인 지당(池塘),즉 연못이다.
기묘사화로 희생당한 조 광조의 제자 양 사노가 만든 전남 담양의 소쇄원(瀟灑園 ; 상쾌하고 깨끗한 정원이라는 뜻) 및 고산 윤 선도가 지은 전남 완도 보길도의 세연정(洗然亭 ; 씻은 듯이 깨끗한 자연속의 정자라는 뜻)과 더불어 현존하는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3대 정원으로 손꼽히는 곳이다.
서석지는 성리학과 시(詩)에 능하였다고 하는 석문 정영방(石門 鄭榮邦)선생이 1613년(광해군 5년) 영양군의 자양산(紫陽山) 남쪽 기슭에 조성한 것으로 약 460평 정도의 자그마한 정원이다.
흙담에 둘러싸인 연못은 흔히 구할 수 있는 잡석을 다듬어 쌓아 만들었고 바닥에는 60개의 돌이 깔려 있다. 이 돌들은 물속에 40개, 물 밖에 20개가 드러나 있는데 석문 선생은 이 돌 하나하나에 이름을 붙여서 감상(感想)하며 즐겼다고 한다.
못의 서쪽에는 이곳의 주 건물인 경정(敬亭)이 서 있는데 좌우로 온돌방이 있고 방 앞부분과 가운데는 널찍한 대청마루가 있는 것이 정자라기보다는 작은 루(樓)라고 하는 편이 나을 듯 했다. 마루에는 중수기(重修記)와 더불어 당시의 이름난 명사들이 쓴 정기(亭記), 경정운(敬亭韻) 등의 시가 걸려 있다.
경정의 마루에서 본 사우단과 주일제의 모습
경정의 왼편, 즉 연못의 북쪽에는 두 칸짜리 작은 별채를 따로 지어 주일제(主一齋)라 부르고 서실(書室)로 사용했다고 한다. 이 주일제 앞은 연못으로 튀어 나온 네모난 단(檀)을 만들어 매화, 소나무, 대나무 그리고 국화를 심어서 사우단(四友檀)이라 부른다.
이렇게 사우단을 만들어 둔 것은 남쪽의 출입문과 서일제가 바로 마주 보게 되어 있어 외부의 시선을 차단하고 서실의 집중도를 높이기 위한 것이 아닌지 나름대로 생각해 본다.
연못에는 연꽃이 심어져 있는데 우리가 갔을 때는 연꽃이 피기에는 조금 이른 때였지만 자랄 대로 자란 연잎은 내리는 빗물을 동글동글 함초롬히 담고 있어 싱그러운 초여름 정취를 느끼게 해 주고 있었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경정 좌우의 방에 불을 떼는 아궁이가 낮은 마루 아래로 들어가야 있다는 사실이다. 방 뒤나 옆으로도 충분히 아궁이를 낼 수 있는 공간이 있는데 굳이 왜 그토록 어려운 위치, 그것도 불이 옮겨 붙기 쉬운 나무 마루 밑에 두었는지 참으로 알 수 없는 일이다.
해설사의 설명을 듣고 있는 행님들
경당 마루에서 연못을 내려보고 있는 행님들
서석지에서의 답사기념사진
서석지의 담장 밖에서 본 은행나무의 전체 모습
서석지의 남동쪽 모서리에는 영양군 보호수(保護樹)인 엄청난 크기의 은행나무가 이곳의 오랜 연륜(年輪)을 증명이라도 하는 듯 당당히 서 있다. 수령은 대략 400년, 이 서석지와 함께 세월을 보낸 나이다.
이 은행나무는 석문 선생의 부인이 이곳으로 올 때 가마 속에 작은 묘목을 가져와 심은 것이라고 전해진다.
담장 안에서 본 은핸나무의 둥치
역시 연못의 남동 쪽 모서리에는 몸체가 두 번씩 꼬여 있지만 그다지 커 보이지는 않는 향나무 두 그루가 심어져 있다. 그런데 이런 종류의 향나무는 몸체가 저절로 꼬여지는데 한번 완전히 꼬이는데 100년이라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하니 이 향나무들 역시 오랜 연륜을 말하는 것들이라 할 수 있다.
서석지로 들어가는 길 입구에는 후손들이 세운 석문정선생사적비(石門鄭先生事蹟碑)가 세워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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