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라이 유술]
일본에서는 1700년대 이전에 무려 167개의 유술 유파가 존재하였다.
관절을 꺾거나 조르는 유술(柔術)은 한반도나 중국의 무술에서도 찾아볼 수 있지만 특히 일본에서 세분화되고 전문화된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전국 시대(戰國時代)가 그 답이다.
1467년 발생한 오닌(應仁)의 난을 시작으로 1600년 세키가하라 전투까지 100년 이상 지속된 내전을 겪으면서 사무라이의 살상 기술이 최고조에 달하여 검법과 더불어 유술이 각광을 받게 된 것이다. 전국시대는 하극상의 시대로도 불리며, 오로지 강자만이 약자를 지배하던 난세였다. 신하가 주군을 죽이고, 아들이 아비를 해치고 성을 차지하는 패륜이 연일 일어났으며, 각 성의 영주들끼리의 영토전쟁이 그치지 않았다.
<일본 유술 유파인 관구심신류(関口新心流)에서 전하는 유술 그림>
이 시기 일본을 방문한 중국의 사신이 “왜국의 강에는 물이 아니라 피가 흐른다.”라고 본국에 보고할 정도였으니 그 참상을 짐작할 만하다. 유술은 이러한 전국 시대의 사무라이들이 싸움터에서 최후에 사용하던 살상 기술이다.
에도 시대 병법서인 『병술요훈(兵術要訓)』은 이러한 유술의 특징을 명쾌하게 정의하고 있다.
“온몸에 갑주를 착용한 전장에서 베기와 찌르기만으로는 적을 죽이기 어렵다. 서로 싸우다 보면 무기가 뒤엉키는 경우도 많으므로, 결국 격투해서 적의 목을 자르는 수밖에 없다.”
이런 이유로 일본의 사무라이들은 검술과 더불어 유술을 기본적으로 익혔다. 유술을 모르면 검술이 뛰어나도 맨손으로 드잡이할 때 당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유술의 고수는 상대방의 손가락 하나만이라도 걸리면 온몸을 옴짝달싹 못하게 제압할 수 있다.>
20세기 초반까지만 해도 검도 대련에서는 죽도 혹은 목검으로 서로 치고 받고 하다가 상대방을 집어던지거나 관절을 꺾기도 했다. 그리고 넘어진 상대방의 얼굴에 쓰는 면(面)을 벗기면 한판승을 땄다. 전장터에서 사무라이들이 유술로 넘어뜨린 적의 목을 단검으로 자르던 관습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전국 시대 발생한 유술은 에도 막부가 들어서고 평화가 정착되면서 더욱 활성화되고 기술적으로 발전하게 된다. 검을 들고 전장에 나갈 일이 없게 된 사무라이들이 자신의 존재 가치를 확인하고 증명하기 위해서라도 무술 연마에 더욱 정진하게 된 것이다. 검술도 그렇고 유술도 마찬가지다.
에도막부 시기에 수많은 검술 유파와 유술 유파들이 등장하며, 갑주를 걸치고 전쟁터에서 적의 목숨을 빼앗는 데 쓰던 거친 기술들이 세련되고 정밀해지는 과정을 밟는다. 사실 전쟁터에서는 고급 기술이나 정밀한 기술이 그다지 필요 없다. 무거운 갑옷과 투구를 걸친 상태에서는 힘과 체력이 더 우선된다.
갑옷을 벗으면 얘기가 달라진다. 상대의 힘줄에 가볍게 칼날을 그어도 상대를 무력화시킬 수 있으며, 큰 힘을 들이지 않고도 상대의 관절이나 급소를 공격하여 제압할 수 있다. 몸이 가벼우니 동작도 빨라진다. 급소들도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으니 공격 기술도 다양해지고 정밀해진다. 그에 따라서 이를 막는 방어 기술도 다양해지고 정밀해진다. 무술이 진화하는 것이다.
이처럼 갑주를 입은 적을 상대하는 맨손 기술에서 출발한 유술은 근대 이전까지는 관절 기술뿐만 아니라 적의 급소를 주먹으로 가격하거나, 발로 차는 기술도 포함하고 있었다. 또한 유술 유파에서는 유술뿐만 아니라 검이나 장(杖) 등 무기술도 익히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이처럼 종합 무술이었던 유술은 메이지 유신 이후 새로운 선택을 강요받는다. 사무라이들은 더 이상 진검을 차고 다닐 수 없게 되었으며, 진검승부도 금지되었다. 전투의 살상 기술인 고류(古流) 유술로 그대로 남을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시대에 맞게 개량화의 길을 걸을 것인가.
다케다 소오가쿠의 대동류 합기 유술은 강력한 손아귀 힘을 바탕으로 하여 상대의 관절을 제압하고 꺾는 기술로 최고의 유술이라는 명성을 얻으며 고류 무술의 마지막을 장식한다. 또 다른 선택은 유술이 ‘안전한 무술’인 스포츠로의 변신을 꾀한 것이다. 바로 유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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