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산 쌍릉
혈의 기운 약하고 발복 오래 가지 못해
백제 무왕과 선화공주의 무덤으로 전하는 익산 쌍릉은 전북 익산시 석왕동 6-13(쌍능길 65)에 위치한다.
남북으로 180m의 거리를 두고 두 개의 능이 자리하고 있다.
규모가 큰 대왕릉은 백제 30대 무왕(재위 600~641), 소왕릉은 선화공주의 무덤으로 추정하고 있다.
두 무덤은 규모 차이는 있지만 구조는 동일하다.
그러나 무덤의 주인공에 대해서는 오랫동안 논란이 있어왔다.
청주한씨들은 문중의 시조인 마한 왕의 능이라며 오래전부터 제사를 지내왔다.
그 근거는 조선전기에 편찬된 《고려사》 〈지리지〉다.
전주목 금마군 편에 “후조선 무강왕과 왕비의 능이 있다.”는 기록이 있다.
한씨들은 본래 기자의 후손으로 고조선의 준왕이 위만에게 나라를 빼앗기자 바닷길로 남쪽으로 와서, 지금의 익산 땅에 나라를 세웠다.
나라 이름을 마한이라 했으며 무강왕이 되었다.
마한은 8왕 202년 동안 이어졌다.
8세 원왕은 세 아들이 있었다.
마한이 백제에게 망하자 우평은 고구려에 들어가 북원선우씨가 되고, 우성은 백제에 들어가 행주기씨, 우성은 신라에 들어가 청주한씨가 되었다.
그러므로 쌍릉은 청주한씨들의 조상 묘라는 것이다.
그런데 《고려사》에는 “무강왕의 묘를 민간에서는 말통대왕릉이라 부르는데 백제 무왕을 말하며, 그의 어릴 때 이름은 서동이다”는 기록도 있다.
이 때문에 익산시와 학계에서는 쌍릉을 서동과 선화공주의 무덤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쌍릉은 고려 충숙왕 13년 왜구의 노략질로 여러 차례 도굴되었다고 한다. 부장품이 없는 이유다.
1917년 일본인 학자 야쓰이 세이치는 조선총독부의 촉탁을 받아 쌍릉을 발굴 조사했다.
그는 백제 말기의 왕릉지역인 부여 능산리고분과 규모 및 형식이 비슷하다고 발표했다.
이 때문에 쌍릉은 서동과 선화공주의 무덤으로 확실시 하였다.
그런데 2009년 미륵사지 석탑 해체 과정에서 “미륵사 서탑은 사택적덕의 따님이 무왕의 건강회복을 위해 사리를 봉안했다”는 금제사리봉안기가 발견되었다.
《삼국유사》는 무왕의 왕비인 선화공주가 발원해서 미륵사가 세워졌다고 기록하고 있다.
왕비가 선화공주가 아니라면 서동과 선화공주에 관련된 서동설화는 허구가 되어 버릴 수 있다.
이러한 논란을 잠재우기 위해 마한백제문화연구소가 2018년 재 발굴조사에 들어갔다.
대왕릉의 무덤을 열고 들어가니 나무상자 안에 작게 조각난 사람 뼈가 소복이 담겨 있었다.
뼈의 연대측정 등 102개 항목에 걸쳐 정밀분석을 한 결과 무왕의 기록과 일치한 점이 많다는 것을 밝혀냈다.
2019년에는 소왕릉에 대한 발굴조사가 이루어진다고 한다.
선화공주와 사택왕후, 과연 누구의 무덤인지가 궁금해진다.
이곳 산맥은 금남정맥 왕사봉(701m)에서 서쪽으로 갈라져 나온 산줄기에서 비롯된다.
천호산(501.1m)과 용화산(321.2m)을 거쳐 익산의 주산인 미륵산(429.6m)을 세웠다.
익산·논산평야에 우뚝 솟아 있어서 이 일대에서는 기가 가장 센 산이다.
산 정상에는 기준이 성을 쌓았다는 기준산성이 있고 그 아래에는 미륵사지가 있다.
미륵산에서 남쪽으로 내려온 용(산맥)은 낮고 순해지며 오금산(123m)을 만들었다.
그리고 야산지대로 내려오는데 바위 하나 보이지 않을 정도로 순하다.
용맥은 논의 봇도랑 물을 만나 멈추었다.
두 능은 기가 모여 있는 능선 끝자락에 위치하고 있다.
봉분이 커서 확인할 수 없지만 혈장의 4요소인 입수도두, 선익, 순전 등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4요소 중 하나인 혈토는 쌍릉 발굴할 때 공개된 무덤 속의 흙에서 확인되었다.
그야말로 홍황자윤한 혈토였다. 물론 이 일대 흙은 기후적 영향으로 심층풍화한 적색 황토가 대부분이다.
그렇지만 이곳처럼 밝고 깨끗한 흙을 보기는 쉽지 않다.
백제 무왕의 뼈가 지금까지도 남아 있는 이유라 할 것이다.
아쉬운 것은 주변 산들이 모두 이곳을 향해 있지 않다는 점이다.
혈의 기운이 약하다는 뜻이며 발복이 오래가지 못한다.
그래서일까 그의 아들 의자왕은 초기에는 영토를 넓히는 등 통치를 잘했지만 결국은 나당연합군에게 나라를 잃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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