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적박발 (厚積薄發)
임종칠(林宗七)이 자신을 경계하는 글을 벽에 써서 붙였다.
"네가 비록 나이 많고, 네 병은 깊었어도, 한 가닥 숨 남았다면 세월을 아껴야지. 허물 깁고 성현 배움에 네 마음을 다하여라.
날 저물고 길은 멀어 네 근심 정히 깊네. 두껍게 쌓아 얇게 펴니 겉과 속이 순수하니, 한 번 보면 도를 지닌 군자임을 알게 되리
(汝年雖暮, 汝疾雖沈. 一息尙存, 可惜光陰. 補過希賢, 用竭汝心. 日暮行遠, 汝憂正深. 及其厚積薄發, 表裏純如,
一見可知其爲有道君子也)."
조두순(趙斗淳)의 '둔오임공묘갈명(屯塢林公 墓碣銘)'에 나온다.
글 속의 후적박발(厚積薄發)은 쌓아둔 것이 두껍지만 펴는 것은 얇다는 의미로 온축을 쌓되 얇게 저며 한 켜 한 켜 펼친다는
말이다.
소동파가 서울로 떠나는 벗 장호를 전송하며 쓴'가설송장호(稼說送張琥)'란 글에 처음 나온다.
소동파는 부자의 농사와 가난한 이의 농사를 비교하는 것으로 글의 서두를 열었다.
부자는 밭의 토양이 좋고, 생활도 여유가 있다. 땅을 놀려가며 농사를 지어 땅의 힘이 살아있다.
제때에 씨를 뿌려 익은 뒤에 거둔다. 가난한 집은 얼마 안 되는 땅에 달린 입은 많아서, 밤낮 식구대로 밭에 달라붙어 김매고 호미질하기 바쁘다. 놀릴 땅이 없는지라 땅의 힘이 쇠하여 소출도 적다.
제때에 파종하기도 어렵고, 주림을 구하기 바빠 익을 때까지 기다릴 여유도 없다.
이어 소동파는 옛 사람을 부잣집에, 지금 사람은 가난한 집에 견줘, 여유롭게 기르고 채워 마침내는 차고 넘치게 되는 옛사람과, 그때그때 써먹기 바빠 온축의 여유가 없는 지금 사람의 공부를 대비했다.
소동파는 "아! 그대는 이를 떠나 배움에 힘쓸진저! 널리 보고 핵심을 간추려 취하고(博觀而約取), 두껍게 쌓아서
얇게 펴는 것(厚積而薄發), 나는 그대에게 여기에서 멈추라고 말해주겠다."
폭넓게 보고 그 가운데 핵심만을 취해 간직한다.
두껍게 차곡차곡 쌓아두고 한꺼번에 쏟아내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아껴서 꺼내 쓴다.
그래야 수용이 무한하고 응대가 자유로워진다.
가난한 집 농사짓듯 하는 공부는 당장에 써먹기 바빠 쌓일 여유가 없다. 허둥지둥 허겁지겁 분답스럽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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