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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공주 ‘공산성’

초암 정만순 2014. 3. 15. 12:04

고난의 백제역사 간직한 충남 공주 ‘공산성’

 

성곽길 깃발 따라 걸으며 ‘망국의 아픔’ 헤아리다

 

충남 공주의 공산성. 성곽길이 동쪽에서 북쪽으로 향하면서 금강이 조망된다.
공산성 금서루 진입 도로변의 비석군. 공주 곳곳에 흩어져 있던 송덕비 등을 모아 놓았다.
쌍수정과 쌍수정 사적비. 전면의 터는 백제 왕궁지로 추정된다.

◆백제 웅진시대 60여 년의 중심

백제 시대, 성의 이름은 웅진성이었다. ‘택리지’에는 ‘공주읍 북쪽에 작은 산 하나가 있는데 강가에 서리고 얽힌 그 모양이 공(公)자와 같기 때문에 공주라는 이름은 여기서부터 유래되었다. 산세를 따라서 작은 성을 쌓고 강을 해자로 삼아 지역은 좁으나 형세는 견고하다’고 쓰여 있다. 완벽한 설명이다.

처음에는 토성이었다. 석성으로 개축된 것은 조선시대다. 공산성이란 이름은 고려 때부터다. 조선시대에는 쌍수성이라 불리기도 했다. 성은 작으나 시대를 이어 쓰일 만큼 중요한 요새였다는 뜻일 게다. 웅진성은 사비 천도 이후에도 백제의 중요한 거점성이었다. 나당 연합군에 의해 사비도성이 포위되자 의자왕이 도망쳐 들어간 곳이 바로 웅진성이다. 통일신라 이후에도 웅천주의 거점성이 웅진성이었고 조선시대에도 감영이 자리했다. 지금도 공주의 한가운데서 사람들의 휴식처로, 산책로로, 아름다운 전망대로 당당하게 자리한다. 공산성에는 백제부터 조선, 그리고 오늘까지의 시간이 쌓여 있다.

성벽 위에 깃발이 펄럭인다. 저 가벼운 움직임이 성을 더욱 강고하게 만든다. 깃발은 인근 송산리 고분 벽화에 있는 사신도를 재현해 만들었다. 사신도는 우주의 질서를 지키는 상징적인 동물이다. 깃발의 바탕색은 황색이다. 황색은 백제의 색이다. 그 시대 사람들은 황색을 우주의 중심이 되는 색으로 생각하며 중히 여겼다고 한다. 깃발의 테두리는 각 동물이 상징하는 색이다. 청색은 청룡, 백색은 백호, 적색은 주작, 흑색은 현무다. 그들은 각자 동서남북을 관장하며 외부의 나쁜 기운을 막아준다. 깃발을 따라 걸으면 언제나 내가 어디로 향하는지 알 수 있다.

백제가 공주로 천도한 것은 475년의 일이다. 장수왕에게 한강 유역을 빼앗기면서 500년 넘는 한성시대가 막을 내렸고, 밀려 밀려 당도한 곳이 공주의 금강 변이었다. 존속 역사 678년 중 60여 년. 백제의 역사 속에서 공주에서의 웅진시대는 짧았다. 그 기간 공주는 한 나라의 중심이었고, 그 심장이 공산성이었다.

◆깃발을 따라 성곽길을 걷다

성곽의 총 길이는 2천660m. 지금 공산성의 입구로 쓰이는 문은 금서루다. 유지만 남아 있던 것을 조선시대 문루양식을 재현해 복원한 것이다. 금서루에서 오른쪽 성곽길로 오른다. 깃발의 테두리는 백색, 서쪽이다. 약간 가파르게 오르던 길이 마치 정점에 도달한 듯 부드럽게 하강하면서 너른 터와 정자 하나를 활짝 펼쳐 놓는다. 웅진시대 초기의 것으로 추정되는 왕궁지와 조선시대에 건립된 쌍수정이다.

1623년 이괄의 난을 피해 공산성에 머물던 인조는 두 그루의 나무 밑에서 반란의 진압 소식을 기다렸다고 한다. 난이 진압되자 왕은 그 두 그루의 나무, 즉 쌍수에 정삼품 통훈대부를 명하고 성을 쌍수성이라 부르도록 했다. 이후 나무는 늙어 사라졌고 영조 때 관찰사로 부임한 이수황이 그 자리에 쌍수정을 건립했다. 현재 모습은 조선 후기의 형태로 복원한 것이고 처음에는 이층 누각에 담장이 있었다고 전한다. 성곽길 아래로는 공주의 시가지가 환하게 열려 있다.

부드럽게 이어지는 길이 조금씩 계단식으로 오른다. 그러다 거의 직각으로 꺾이면서 깃발은 붉은색이 된다. 남쪽이다. 성의 남문인 진남루가 나타난다. 조선시대에는 삼남의 관문이었고 지금도 출입 통로로 이용되고 있다. 공산성이 석성으로 개축될 때 진남루가 세워졌고 1971년 전부 해체하여 복원한 것이다.

성곽이 다시 한 번 꺾이는 곳에 치성이 위치한다. 성 안 숲 속에 임류각지가 보인다. 백제 동성왕 때의 누각 터다. 앞쪽으로 동문인 영동루가 보인다. 다시 오르막이다. 여기서부터 금강이 나타나는 북벽까지 467m가량이 토성이다. 어느새 깃발은 청색이다. 동쪽 마루에 광복루가 보인다. 원래는 계상루라 했고 일제 때는 웅심각 또는 해상루라 했던 것을 1945년에 보수한 후 국권회복의 뜻을 기념해 광복루라 했다.

광복루 입구에 이르면 발 아래로 금강이 흐른다. 토성은 끝나고 석성이 나타난다. 길은 강으로 뛰어들 듯 곤두박질친다. 아찔하다. 고전적인 스카이워크다. 번지점프 하듯 내려선다. 성벽은 잠시 끊어지고, 금강을 지척에 두고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되었다는 연지, 조선시대의 것인 만하루, 그리고 영은사가 나지막이 자리한다. 여기서부터 북쪽 성곽길은 출입이 통제된다. 북문인 공북루를 실견할 수 없다. 지난해 성벽의 일부가 붕괴되었고, 4대강 사업의 무리한 추진이 원인인 것으로 밝혀졌다. 북쪽 깃발은 흑색이다. 천년이 넘게 성의 북쪽을 지켜 온 현무의 힘도 현대의 무작스러움은 이겨내지 못한 것인가.

>> 여행정보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대전 지나 회덕 분기점에서 당진 영덕 고속도로를 따라가다 공주IC에서 내린다. 계룡산, 공주, 공주보 방면으로 간 후 생명과학고 교차로에서 좌회전, 전막교차로에서 우회전하면 공산성 금서루 앞 매표소다. 성곽 붕괴로 출입이 통제되는 동안 입장료는 무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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