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과의 對話/목본 일반

도토리는 떫은맛이 무기

초암 정만순 2017. 8. 25. 08:33



도토리는 떫은맛이 무기


다람쥐가 비상식량으로 숨겨놓은 도토리에서 싹이 터


지난주 산과일나무들과 가시 가득한 밤송이가 그 안에 담긴 씨앗을 어떻게 멀리 보내는지 예기한 데 이어 오늘은 도토리들의 생존법을 살펴보겠습니다.


모든 참나무의 열매를 도토리라고 합니다. 참나무는 아주 유명하지만 실제로 이런 나무이름이 식물도감에는 나오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갈참나무, 졸참나무, 상수리나무, 떡갈나무 등의 열매인 도토리가 열리는 나무를 도두 망라하여 그냥 참나무라고 부르기 때문입니다.


숲 속의 나뭇잎 빛깔이 막 변하기 시작하는 요즘 도토리도 익어갑니다. 도토리는 밤톨처럼 씨앗 그 자체를 다람쥐 같은 동물이나 사람이 먹습니다. 그러나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가시 같은 무기도 없고 기껏해야 귀여운 모자나 쓰고 있는 정도입니다. 무슨 방법이 없을까요?


도토리는 바로 떫은맛이 무기입니다. 우리는 다람쥐들이 도토리를 아주 좋아한다고 생각하지만 다람쥐들도 입맛을 아는 이상 떫은 도토리를 좋아할 리 없습니다. 하지만 도토리에는 전분이 많아 귀중한 겨울철 비상양식이 되는 만큼 다람쥐는 열심히 도토리를 모아 여기저기 묻어서 숨겨 둡니다. 다람쥐는 먹을 것이 풍부한 시절에는 구태여 도토리에 손을 대지 않다가 감추어진 곳을 까맣게 잊어버리기도 합니다.


그런 도토리는 어느새 뿌리를 내리고 이듬해 새로운 나무로 자랄 기회를 갖습니다. 무거운 씨앗을 멀리 보낼 방법이 없는 참나무들은 다람쥐의 이동성을 이용하는 것이지요. 그간 우리는 다람쥐가 도토리를 좋아하고, 그러한 다람쥐는 도토리의 약탈자라고 착각하고 있었던 셈입니다. 숲 속의 식구들은 이렇게 서로 얽히고 얽혀 잘살고 있는데 말입니다.


문제는 그 떫은맛마저 물에 우려 묵을 쑤어 먹는 사람들이지요. 사람이 다람쥐보다 더 막강한 도토리의 약탈자가 되어 온 나라의 산을 뒤지는 계절이 바로 요즈음입니다. 며칠 전엔 도토리를 주으러 입산금지된 산에 몰래 올랐다가 길을 잃고 헤맨다는 연락으로 한밤중에 온 산림공무원과 119구조대까지 출동하는 현장을 구경한 일도 있습니다. 좀 너무들 한다 싶으시죠?


산길에 구르는 도토리를 밟다가 넘어질 뻔한 체험은 아주 깊은 산이 아니고는 어렵게 되고 말았습니다. 그 도토리 가운데 장차 숲의 새 주인이 될 어린 나무로 싹이 터야 할 것도, 다람쥐의 비상식량이 되어야할 것도 있을 터인데 참 걱정입니다.


★다람쥐가 겨울철에 먹으려고 숨겨 놓았다가 잊어버린 도토리에서 싹이 트는 경우가 많습니다.


<광릉 숲에서 보내는 편지 / 이유미 저>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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