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과의 對話/한국의 숲

곰배령이야기 ① 꽃보다 숲

초암 정만순 2017. 7. 27. 12:23



곰배령이야기


 ① 꽃보다 숲…우리땅에도 원시림이?

                                                                       


[곰배령이야기] ① 꽃보다 숲…우리땅에도 원시림이?
  


■ 곰배령의 진짜 매력은?…‘이곳이 바로 원시림’

'천상의 화원' 곰배령, 다양한 야생화가 있기에 붙여진 이름입니다.
봄이면 야생화를 보기 위해 많은 사람이 찾아옵니다.
하지만 곰배령의 진정한 가치는 야생화에 있는 게 아닙니다.
곰배령을 품고 있는 점봉산 일대의 숲, 그 원시림의 풍부한 생태 자원에 있습니다.




점봉산 숲 속에서는 하늘이 보이지 않습니다. 조금이라도 더 햇빛을 받으려는 나무들의 치열한 경쟁이 하늘을 촘촘히 덮어버렸습니다. 신갈나무, 박달나무, 엄나무, 피나무, 서어나무 등 온통 잎이 넓은 활엽수들입니다. 곰배령 가는 길에 하늘을 볼 수 있는 곳은 오직 세 곳, 탐방로 주변과 고사목이 넘어진 곳 그리고 곰배령 정상 초지 부근뿐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서어나무. 활엽수 극상림에 나타나는 대표적 수종서어나무. 활엽수 극상림에 나타나는 대표적 수종


수령이 백 년을 넘어 보이는 산벚나무.수령이 백 년을 넘어 보이는 산벚나무.


어린잎이 식용으로 이용되는 엄나무. 밑동부터 세 가닥으로 올라온 줄기가 각기 한 아름이다.어린잎이 식용으로 이용되는 엄나무. 밑동부터 세 가닥으로 올라온 줄기가 각기 한 아름이다.


점봉산에서 소나무 같은 침엽수는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활엽수와의 경쟁에서 침엽수는 밀려나고 이제는 활엽수만 자라는 안정적인 상태에 이른 겁니다. 오랜 세월을 거쳐 활엽수의 종 구성이 평형에 이른 상태, 바로 식물 천이의 마지막 단계인 활엽수 극상림입니다.

관중 군락관중 군락


■ 곳곳 양치류 군락…‘공룡시대의 숲’

원시림의 향취는 나무 아래 식생에서도 고스란히 느껴집니다. 2억 년 전 번성했던 양치류가 곳곳에서 군락을 이룹니다. 대형 양치류인
이 커다란 원을 그리며 빽빽하게 늘어선 모습은 태곳적 공룡시대의 숲을 떠올리게 합니다. 양치류는 적당한 습도와 그늘이 유지돼야 잘 자랍니다. 바닥에 층층이 쌓인 부엽토가 비가 오면 수분을 흠뻑 머금었다가 시간을 두고 천천히 다시 공기 중으로 뿜어내기에 가능한 생태입니다. 점봉산은 해발 1,000m 고지에서도 늘 물이 흐릅니다. 산림 전체가 거대한 천연 저수지인 셈입니다.

해발 1,000m에서 흐르는 계곡해발 1,000m에서 흐르는 계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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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를 타고 오른 노박덩굴나무를 타고 오른 노박덩굴


커다란 나무마다 치렁치렁 덩굴이 감싸고 오르는 모습도 원시림이 보여주는 특징입니다. 마치 한 마리 뱀처럼 나무를 칭칭 감고 올라간 덩굴, 바로 노박덩굴입니다. 다래와 미역줄나무 덩굴도 여기저기서 나뭇가지에 한쪽 팔을 걸친 듯 몸을 길게 늘어뜨리며 타고 오릅니다.

미역줄나무 덩굴미역줄나무 덩굴


전나무에 붙은 다래 덩굴전나무에 붙은 다래 덩굴


덩굴은 나무가 작았을 때부터 함께 붙어서 자랍니다. 수십 미터에 이르는 나무 꼭대기까지 올라갑니다. 나무는 덩굴 잎에 햇빛을 빼앗겨 약해지다가 결국 덩굴 무게를 이기지 못해 쓰러지고 맙니다. 그렇게 덩굴도 나무와 함께 생을 마감합니다.

다래 덩굴과 함께 쓰러진 나무다래 덩굴과 함께 쓰러진 나무


커다란 나무와 덩굴의 죽음은 숲의 또 다른 시작입니다. 거목이 쓰러지면 그 자리에 작은 하늘이 열리고 그 하늘을 향해 다시 어린 나무들이 치열한 생존 경쟁을 벌입니다. 숲 속 여기저기에 넘어진 고사목 위에서 새로운 생명의 역사가 펼쳐집니다.

곰배령 정상 해발 1,100m 위의 초지곰배령 정상 해발 1,100m 위의 초지


■ 1,100 미터 고지에 피어난 야생화의 천국

곰배령은 '야생화의 천국'으로 불립니다. 원래 깊은 숲 속 나무 그늘에는 햇빛이 부족하기 때문에 초본류인 야생화가 잘 자라지 못합니다. 점봉산도 탐방로를 조금만 벗어나 숲 속으로 들어가면 야생화를 보기 힘듭니다. 하지만 특이하게도 곰배령 정상 부위 해발 1,100m 고지에 나무 한 그루 없는 초지가 넓게 펼쳐져 있습니다. 면적이 약 165,290m, 5만 평에 이릅니다.

미나리아재비미나리아재비


금강애기나리금강애기나리


홀아비바람꽃홀아비바람꽃


산철쭉산철쭉


곰배령 정상 초지에서는 각종 야생화가 철마다 피고 집니다. 툭 트인 고지대에 펼쳐진 꽃밭, 그래서 붙여진 이름이 '천상의 화원'입니다. 곰배령 탐방로 주변도 탐방로를 따라 햇빛이 들어오기에 다양한 야생화를 볼 수 있습니다. 금강애기나리와 한계령풀, 벌깨덩굴, 광대수염, 모데미풀, 족두리풀, 얼레지 등 온갖 야생화가 청초한 자태를 드러냅니다. 나이를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커다란 산철쭉도 곳곳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벌깨덩굴벌깨덩굴


광대수염광대수염


노루삼노루삼


얼레지얼레지


물참대물참대


요강나물요강나물


곰배령 정상에 어떻게 그런 넓은 초지가 형성될 수 있는지, 그 원인은 정확하게 설명되지 않습니다. 다만 지형적 요인 때문에 강한 바람이 불어 나무가 잘 자랄 수 없는 환경인 것은 분명합니다. 실제로 곰배령 정상 부위 나무들은 강풍과 눈 때문에 위로 자라지 못하고 옆으로 비틀어진 나무들이 많습니다. 바닥을 기어가듯 틀어 올라간 주목이나 위로 솟지 못하고 옆으로 벌어진 신갈나무가 곰배령 초지 근처에 산재합니다.

가지가 옆으로 자란 주목. 폭설에 주저앉았다가 위로 자란 것으로 보인다.가지가 옆으로 자란 주목. 폭설에 주저앉았다가 위로 자란 것으로 보인다.


강한 바람과 눈 때문에 위로 자라지 못하고 옆으로 휘어진 신갈나무.강한 바람과 눈 때문에 위로 자라지 못하고 옆으로 휘어진 신갈나무.


■ 우리나라 식물종의 20%…유네스코 생물권 보전지역

곰배령 정상에 오르면 북쪽으로 점봉산(1,424m)과 설악산(1,708m) 아래 펼쳐진 숲의 바다가 한눈에 들어옵니다. 헤아릴 수 없는 세월 동안 생명의 역사를 되풀이해 오며 일궈진 원시림의 바다입니다. 그 숲에 서식하는 식물 종이 우리나라 전체 식물종의 20%인 850여 종에 이릅니다. 그 가치를 인정받아 산림유전자원 보호구역과 유네스코 생물권 보전지역으로 지정됐습니다.

곰배령에 펼쳐진 숲의 바다. 점봉산 자락 너머 왼쪽 높은 봉우리가 설악산 대청봉.곰배령에 펼쳐진 숲의 바다. 점봉산 자락 너머 왼쪽 높은 봉우리가 설악산 대청봉.


먼 옛날 한반도의 대부분 숲이 곰배령과 비슷한 온대 활엽수림이었을 겁니다. 그렇다면 왜 점봉산 숲만 그 원형을 유지할 수 있었을까요? 무엇보다 그동안 사람의 접근이 어려웠기 때문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입니다.

아치처럼 휘어진 신갈나무아치처럼 휘어진 신갈나무


곰배령(1,164m) 가는 길은 지금도 쉽지 않습니다. 강원도 인제까지 이어진 국도는 비교적 수월하지만 인제부터 구불구불한 계곡 옆 도로를 한 시간 넘게 들어갑니다. 그러다 진동삼거리에 이르면 이제부터는 비포장입니다. 꿀렁꿀렁한 흙길을 6km 넘게 들어서야 비로소 탐방로 입구에 들어섭니다.

대중교통 역시 불편합니다. 인제에서 버스를 타고 현리에 도착한 뒤 다시 버스를 갈아타야 곰배령 아랫마을 진동2리에 도착합니다. 하루에 세 번 밖에 없는 버스입니다. 버스에서 내리면 한 시간 이상 비포장길을 걸어야 합니다. 전국에 거미줄처럼 도로가 깔린 지금 이 시대에도 이렇게 접근이 힘든데 과거에는 어땠을까요? 예부터 오지 중의 오지였던 점봉산 곰배령, 그래서 지금은 원시림의 보고가 됐습니다.

곰배령 탐방객곰배령 탐방객


■ 개발 압력 속 ‘생태 보고’ 원시림 보존 과제

지금은 그 '생태 보고'를 보기 위해 사람들이 먼 길을 마다 않고 불편을 감수하며 찾아옵니다. 곰배령의 '인기'는 새로운 위기이기도 합니다. 산림청은 탐방예약제와 일일 탐방 인원 제한 제도를 시행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탐방 인원을 늘려달라는 압박은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각종 개발 압력 속에 원시림의 원형을 계속 유지하는 것이 앞으로의 과제입니다.

* 이 기사는 (곰배령 이야기②) '숲이 살아야 사람도 산다'로 이어집니다.

출처 ㅣ kbs 용태영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