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化 遺跡 /문화유산 명승

대구 북구 읍내동 마애불상

초암 정만순 2017. 3. 16. 10:43




대구 북구 읍내동 마애불상


정병훈 기자가 보도합니다.
                             
대구시는 이 문화재가 화강암보다 무른 사암인데다 여래상의 수인 모양 등이 신라 양식에는 없는 것이라 주장하지만 전문가들은 이런 주장이 사실과 다르다고 조목조목 지적합니다.


불상과 탑 승려상 속인상 등 33구의 도상이 새겨진 대구시 북구 읍내동 마애불상군입니다.

대구시는 이 바위가 화강암보다 무른 사암인데다 여래상의 수인이 반대로 표현돼 삼국시대가 아닌 후대에 조성된 것으로 문화재 지정가치가 떨어진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이런 주장이 무지에서 비롯됐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합니다.

먼저 사암이 화강암보다 무르다는 지적에 대해 사암은 화강암보다 경도가 더 높은 가장 단단한 암석의 하나라고 말합니다.

여래좌상의 표면이 선명해 근세 조각으로 의심된다는 주장도 바위의 성질을 잘 알지못해 나온 말이라는 것입니다.

전영권 대구가톨릭대 교수 "석영질 사암으로 됐을 경우에 그것은 강도가 굉장히 강해서 화강암보다 훨씬 강합니다 그래서 침식에 강해서 잘 깨지지 않고 원형이 비교적 잘 보존되는 편이라 볼 수 있습니다."

여래상의 수인이 반대로 표현되고 도상들의 크기 위치 등에도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는 대구시 주장 또한 무지라고 전문가들의 지적입니다.

여래상의 수인이 바뀐 모습은 소형 금동불이나 불국사 금동아미타불, 금동비로자나불 등 고대불상에서 종종 보이는 현상입니다.

읍내동 마애불은 삼국시대 불교조각에 대한 이해없이는 불가능해 통일신라 초기 7세기 후반에 제작됐을 것으로 보인다는 조사의견입니다.

한정호/동국대 교수 "명확한 판단을 위해서는 정밀조사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보여지고요.

만약에 이것이 삼국시대 불교조각품으로 밝혀질 경우에는 국보급에 해당되는 마애불 군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특히 반가상이 3존으로 조각된 것은 국내에서 처음 보이는 것으로 가치가 더 큽니다.

정밀조사 등을 통한 대구 읍내동 마애불의 문화재 지정이 시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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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칠곡중앙대로129길 169-3' 새도로명으로 표시된 마애불상의 정확한 위치다.

보통 안양마을로 통하는 것을 보면 불교유적지와 연관을 지을 수 있는 이름이다.

안양정토(安養淨土)를 줄여 안양이라 일컬으며 극락정토와 같은 뜻이다.

계곡이 제법 넓고 깊다. 농토가 제법 많고 비늘하우스가 즐비하며 마을로 이어지는 도로는 포장길이다.

중앙고속도로 읍내터널이 우측으로 나타난다.

혹시나해서 산불감시초소에서 다시 확인을 하고 마을 가까이 가니 저만치 암벽이 나타난다.

작은 다리를 건너면 석등같이 생긴 조각물 두 개가 일주문 기둥처럼 서서 반겨준다. 


전면에 높이 약 7m, 길이 약 20m되는 화강암벽이 나타나는데 이게 반듯하게 생긴 게 아니다.

병풍을 세우면 나온 부분과 들어간 부분이 있듯이 암벽이 그렇게 생겼고 돌출부 가운데 불상이 시무외인과 여원인을 하고 앉아 있다.

7세기 초의 작품치고는 이목구비가 분명하고 신체가 균형을 유지하고 있으며, 불상높이 약 1m 정도, 좌대 높이 약 70cm 이며 후세에 만들어 세운 표가 그 색깔에서 선명히 드러난다.

나중에 이곳에 초라한 거처를 만들어 이 불상을 돌보는 이보덕 스님을 통해 들은바 14년 전에 좌대를 설치했다는 것이다.

이 스님은 6년 전부터 여기에 기거하며 이 자랑스런 마애불과 친구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 흔한 절 이름도 없고 마애불이외에 다른 불상도 모시지 않고 외롭게 이곳을 지키고 있다는데 당신이 오기 전에는 무속인들이 살았고, 그 이전에는 큰 못이 있어서 배를 타고 건너와야 하는 상황이었으며, 지금도 불상 바로 앞에 우물이 있었음을 뚜껑을 열어 보여 주었다.

이분이 기거하면서 마애불의 손상을 막기 위해 암벽 바로위에 있던 큰 나무를 베어내기도 하고, 암반 윗쪽으로 도랑을 내어 빗물이 마애불 쪽으로 흐르는 것을 막으려고 애를 쓰기도 하였지만 세월이 1400년 정도 흘렀고, 풍상풍우를 온몸으로 맞았으니 어찌 온전하기를 바랄 수가 있겠는가.

6.25 전쟁 때는 총탄이 날아와 구멍이 생긴 흔적도 있었는데 여기까지 인민군이 오지는 않았을텐데 약간 의심스럽기는 하다.

마애불을 중심으로 좌우에는 수많은 불상, 보살상, 승려상과 선각9층탑이 새겨져 있다. 집에와서 검색해보니 "위덕대학의 발굴팀에 의하면 모두 33점의 상이 새겨져 있어 지금까지 발견된 29개의 경주남산의 마애조상군(보물 제201호)의 상보다 4개나 많은 국내 최대의 불상군이라는 것이다. 비록 그 크기는 작다지만."

최근들어 신문(2011년 10월 26일 매일신문)에 보도 되는 등 차차 알려지고 있어 문화재관련 기관에서 찾아 온 바도 있으며, 일본의 학자들도 다녀갔다고 한다. 육안으로 봐서도 암반 상층부의 흙이 무너질 듯하고, 수많은 금들이 나면서 바위가 깨어질 위험도 없지 않아 보인다.

더구나 자청해서 이 마애불을 지키는 이보덕 스님(?)은 바위의 조각선이 잘보이게 해주겠다며 마애불에 물을 뿌려준다.

암반을 손상하는 촉진제가 되지는 않을까하여 막으려했지만 이미 물줄기는 바위를 적시고 있었다.

국내에 있는 마애불들이 대부분 문화재로 지정이 되어 나름대로 보호를 받고 있지만 이곳은 사각지대다.

관계당국(문화재청, 시청, 구청)은 하루속히 문화재로 지정하여 더 이상 손상되지 않도록 보존에 만전을 기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칠곡중앙대로(국도5호선)를 따라 칠곡을 벗어나기 조금 전 왼쪽에

이런 이정표가 나온다. 이길을 따라 서쪽으로 가면 된다>

<200m정도 오면 안양마을을 알리는 이정표가 나온다>

<제법 너른 계곡을 따라 포장길로 가면 안양마을이다>

<전봇대가 마애불을 알려준다>

<안양마을 입구에서 본 마애불 전경>

<입구의 표석, 아주 훌륭한 조각품이다. 용도에 맞게 세웠는지는 모르지만 잘 만들었다>



<암반이 고르지 않고 튀어나오고 들어가기도 했다>

<돌출부분에 깎아 만든 마애불상, 마애불의 좌대는 당초에 없었을텐데

필요없는 좌대를 누가 왜 만들었는지 알 수 없다>

<조금 크게 잡은 모습>

<측면에서 본 모습>

<반대쪽에서 본 측면 모습>

<향해서 우측면 보살>

<향해서 좌측면 미륵반가삼존불상(?)>

<맨 좌측에 새겨진 선각9층탑>

<물을 뿌린 후의 선각9층탑, 좀 선명하게 보인다>

<이하 사진이 선명하지 않아 어떤 불상인지 불확실하다>













<현장에 있는 사진을 찍은 것>

<이보덕 스님이 거처하는 집>

<이보덕 스님이 오기 전 청주양씨가 이곳에 머물렀다는 영가좌>

<가운데 구멍이 총탄 자국이라는데>

<큰 나무 그루터기가 보인다. 최근에 바위의 균열을 막기 위해 잘랐다고 한다>

<흙덩이가 곧 흘러내릴 것 같다>

<마애불 앞쪽에 우물,물이 고여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