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사순례 - 진주 호국사

 

산사순례 - 진주 호국사

 

새벽 녘 성문 밖에서 기다리다 성문을 열면 들어오는 신도님들이 고맙고 신심이 납니다

 

성문 밖에서 본 월영산(月影山) 호국사(護國寺) 입구.

변영로 시 ‘논개’의 첫 소절이다. 내가 이 시를 처음 읽었던 때가 중학생이었을 것 같다. 머리가 그렇게 좋은 편은 아닌데도 이 시를 몇 번 읽고 첫 소절을 외었다. 그 무렵 TV에서 ‘논개’에 관한 드라마를 보면서 감명을 받았던 때문이다.

때마침 수학여행을 갔는데, 진주 촉석루도 포함되어 있었다. 논개가 왜장을 안고 강물 속으로 들어가 순절한 의암(義巖) 바위 위에도 올라가봤다. 의암에서 논개도 생각했겠지만, 물에 빠질까 조심하던 기억도 난다.

촉석루에 다시 가봤다. 집도 크지만, 해질녘 남강은 참 아름다웠다. 이렇게 아름다운 풍광에서 400년 전, 제2차 진주성 전투를 떠올리니 마음이 착잡했다. 멍청한 정치인들 때문에 전쟁에 졌기 때문만은 아니다. 복잡한 심사 속에는 호국사에 잠들어 있는 승병이 겹쳐 떠올랐기 때문이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에 참여하여 의롭게 순직한 의승군(義僧軍)을 기념하여 숙종이 ‘호국사(護國寺)’라는 사액을 내렸다. 하지만 호국사에는 의승군을 기념하는 기념비각이나 기록물이 안 보인다. 연유를 물을 것도 없이 지금이라도 관계당국이 나서서 의승군을 기념해야 할 것이다.

주지 스님께 물어 봤다. “스님, 법회 때 신도님들에게 어떤 가르침을 제일 많이 말씀 하십니까?” “뭐, 특별한 것은 없고 그때그때 시점에 맞는 부처님 법문을 대신 말씀해 드리지만, 그래도 ‘화합(和合)’을 제일 많이 강조하는 편입니다.”

그래서 그랬나 보다. 주지 스님은 진주사암연합회장과 진주불교대학 학장을 맡고 있다. 최근에는 문화탐방단을 조직하여 운영하고 있는 데 성공적이라고 한다. 화합을 강조하고 화합을 먼저 실천하는 스님이 중심에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또 물어 봤다. “절이 성안에 있어서 좋은 점도 있고, 불편한 것도 있을 것 같은데요” “불편한 것은 놔두고, 좋은 것은 공원 안에 있으니, 신도님들이 아침에도 오고, 운동하다가도 들르고, 아무 때라도 부담 없이 참배하러 오시니 그것이 좋지요. 특히 새벽에는 새벽기도 오시는 신도님들이 성문 밖에서 기다리다가 성문을 열면 들어오는데, 그 때 신도님들이 참 고맙고, 나 역시도 신심이 납니다.”

날씨가 궂거나, 몸살이 났더라도 성문 밖에서 새벽예불을 기다리는 신도님들을 생각하면 새벽예불을 거를 수 없다고 한다. 멀리 출타했다가도 새벽예불에 안 보이는 스님을 보고 신도들이 실망할까봐 얼른 돌아온다고 한다.

호국사 대웅전 화계에 야자수가 두 그루 있다. 키가 대웅전 용마루까지 올라가는 것으로 봐서는 수령이 30년도 더 넘었을 것 같다. 진주가 남쪽이라서 날씨가 따뜻한 탓도 있을 것이다.

다른 절에서도 파초가 있는 것은 더러 봤지만 내륙에 야자수가 이렇게 의연하게 서 있는 것은 예사롭지가 않다. 야자수에서 신령스러운 기운이 느껴진다. 명부전 언덕배기에서 청청한 기상으로 호국사 마당을 내려다보고 있는 왕대나무들과도 관계가 있는 듯하다.

그 옛날 무고한 백성을 짓밟고 탐욕과 살생의 업을 짓는 못된 무리들에게 대승의 깃발을 높이 들고, 분연히 자리를 떨치고 일어나 살생의 업을 멈추게 했던 승병들의 넋이 떠오른다. 내 전생의 일인가 싶다.

성문 안 호국사 전경.

호국사 주지 성법스님.

진주성내 포신과 사찰.

남장대(南將臺, 남쪽 지휘대 의미로 붙여진 촉석루의 또 다른 명칭)에서 본 진주성 밖 전경.

호국사 대웅전과 당간지주.

논개가 왜장을 끌어안고 투신한 촉석루 의암(義岩), ‘논개바위’로도 불린다